2031년까지 특허 만료 블록버스터 약 200개
한 달 새 10억달러 이상 규모 M&A 6건 넘어

글로벌 제약업계가 이른바 '특허 절벽'을 앞두고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임박하면서 매출 급감이 예상되자, 대형 제약사들이 성장 둔화를 메우기 위해 신약 파이프라인과 혁신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을 잇달아 인수하며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9월 이후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 규모의 M&A만 6건이 성사됐고, 계약 총액은 약 250억달러(약 26조원)에 달한다.

 

특허 만료 도미노…키트루다 등 블록버스터 약물 약 200개 해당

'특허 절벽'은 제약사가 보유한 블록버스터 제품의 특허 보호가 만료되면서 복제약(제네릭)이나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에 진입해 약가가 급격히 하락하고, 이에 따라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기업 가치가 단기간에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0년 사이에 키트루다, 옵디보, 엘리퀴스 등 연매출 10억~200억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 의약품 약 190개가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화이자, 머크, 암젠 등 글로벌 제약사에 큰 매출 타격이 예상되며, 잠재적 매출 감소 위험액은 약 180억~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빅파마, 공백 메우기 위한 '신약 사냥' 본격화

이 같은 불안 속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후보물질과 혁신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에 나서고 있다. 9월부터 10월 초까지 불과 한 달여 사이에만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 규모의 M&A가 6건 성사됐다. 거래 총액은 약 250억달러(26조원)에 달한다. RNA·대사질환·항암·비만·염증 등 다양한 치료 영역에서 인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은 미국 비상장 바이오텍 '오비탈 테라퓨틱스(이하 오비탈)'를 15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이번 거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 분야에서 RNA 기반 '인비보(in vivo) CAR-T'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이번 인수로 BMS는 오비탈의 핵심 자산인 'OTX-201'를 확보했다. 이는 CD19 표적 CAR을 인코딩하는 원형 RNA로, 지질나노입자(LNP)를 통해 체내에서 발현된다. 환자 몸속에서 직접 CAR-T 세포를 생성하는 접근법으로, 기존 체외 방식 대비 치료 부담을 낮추고 생산 공정을 단순화할 수 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는 9일 미국 MASH(대사성지방간염) 치료제 개발사 '아케로 테라퓨틱스'를 최대 52억달러(약 7조원)에 인수했다. 이는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시장에서의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아케로의 핵심 자산인 섬유아세포 성장인자 21(FGF21) 유사체 '에프룩시페르민(EFX)'은 현재 진행성 간섬유증(F2~F4)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간경변증 환자에게서 섬유증이 유의미하게 개선되는 결과를 보여, 비만 이후 간 대사질환 분야까지 영역 확장이 기대되고 있다.

덴마크의 또 다른 제약사 젠맙은 지난달 29일 네덜란드 항암제 개발사 '메루스'를 80억달러(약 11조원)에 인수했다.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다잘렉스'의 2029년 특허 만료로 로열티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후기 단계 항체 신약 후보물질 확보에 나선 모습이다.

메루스가 개발 중인 두경부암 치료제 '페토셈타맙'은 EGFR과 LGR5를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항체로, 임상 2상에서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젠맙은 해당 후보를 2027년 상용화하고, 2029년까지 연간 10억달러 이상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화이자는 미국의 '멧세라'를 49억달러(약 7조원)에 인수했다. 이번 인수는 화이자가 다시 비만 치료제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화이자는 자체 개발 경구용 비만 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임상 실패 이후, 비만·대사질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파이프라인이 필요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멧세라의 핵심 파이프라인 'MET-097i'는 월 1회 투여를 목표로 하는 장기 지속형 주사제이며, 2a상 임상에서 12주간 주 1회 투여 시 위약 대비 평균 11.3%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화이자는 2026~2027년 중 3상 진입을 계획하고 있다.

로슈 또한 '89바이오'를 최대 35억달러(약 5조원)에 인수하며 MASH 치료제 경쟁에 가세했다. 89바이오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페고자페르민은 FGF21 유사체로, 염증 억제와 섬유증 개선 효과를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중등도 및 중증 MASH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며, 로슈는 이를 통해 심혈관·신장·대사질환(CVRM)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인크레틴 계열 약물과의 복합요법 개발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노바티스는 지난달 초 염증성·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사 '투르말린 바이오'를 약 14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투르말린이 개발 중인 '파시베키투그'는 인터루킨-6(IL-6)을 억제하는 항체로, 염증성 단백질 반응을 차단해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의 위험을 낮추는 기전을 갖는다. 기존의 콜레스테롤 중심 치료제와 달리 염증 경로를 겨냥하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이하 J&J)은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파트너 '프로타고니스트 테라퓨틱스' 인수를 논의 중이다. J&J는 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가 특허 만료를 앞두고 바이오시밀러와의 경쟁이 예상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J&J는 이미 프로타고니스트와 함께 경구용 IL-23 억제제 이코트로킨라(코드명 JNJ-2113)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주사제가 아닌 경구 제형의 IL-23 억제제라는 점에서 건선, 궤양성 대장염 등 염증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옵션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이 외에도 희귀 혈액암 진성적혈구증가증(PV) 치료제 '러스페르타이드'를 일본 다케다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J&J는 해당 후보물질에 대한 권리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미엄 하락·금리, M&A에 유리"…4분기 '딜 시즌' 기대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빅파마의 인수합병이 급증한 배경으로  '프리미엄 하락'과 'CVR(조건부 인수) 거래 확산'을 꼽으며 "빅파마가 M&A를 진행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바이오텍의 투자 심리가 점차 개선되고 있으며,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빅파마의 공격적 파이프라인 확보 전략이 시장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승민 미래에셋 연구원은 "바이오텍은 막대한 비용과 낮은 성공 확률로 인해 자체 상업화까지 가는 사례가 드물다"며 "주요 블록버스터의 특허 만료를 앞두고, 빅파마들의 신약 확보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FOMC가 지난 9월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한 것도 시장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금리 인하 기대감은 바이오 섹터의 밸류에이션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인수자 입장에서는 조달 환경이 한층 유리해졌다. 김 연구원은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선제적 M&A가 더 유리해질 것"이라며 "올해 4분기는 글로벌 바이오텍 딜의 성수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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