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분담계약제 발전방향
재정지속성, 행정부담, 사후관리 개선 등 과제는 남아

9월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과 서영석 의원 공동주최로 '의약품 통상압박 대응과 치료접근성 확보 위한 위험분담계약제 발전방향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약품 가격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한국도 표시가격과 실제가격을 다르게 하는 위험분담제의 환급 유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적으로 드물게 약가를 투명하게 관리해 왔고, 역설적으로 이 투명성이 통상 협상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이 이미 위험분담제 등을 통해 이중약가 체계를 정착시켰고 단일가를 고집하는 것에 대한 경제적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한국도 현행 제한적 운용에서 벗어나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정부도 과도한 투명성으로 발생하는 불합리함을 개선하고, 이중약가 체계나 별도 계약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끝까지 HIT>가 그날의 토론회를 정리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화여자대학교 융합보건학과 안정훈 교수는 "위험분담제는 항암제·희귀질환 치료제에 한정돼 있지만,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도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제도는 신약의 불확실한 효과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가와 환급 조건을 제약사와 정부가 사전에 합의하는 제도로, 2013년 국내에 도입됐다. 안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위험분담 계약 약제는 81개이며, 환급액 규모만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 교수는 한국 위험분담제의 특징은 환급금 일부를 환자에게 돌려준다고 언급했다. 호주처럼 정액제 본인부담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환급액을 보험자 재정으로 전액 귀속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안 교수는 "환급금 공유 방식은 도입 초기 환자 과다 부담 우려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다른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안 교수는 국내 약가는 이미 세계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약품 국제참조가격제(IRP) 체계에서 한국은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2019년 캐나다의 공식 참조국으로 편입되며 영향력이 확대됐고 중국 역시 2018년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한국 약가를 최저가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가 참조하는 A8 국가들의 약가도 실거래가가 아닌 명목가에 가깝다"며 "국내 약가를 단일가로 고집할수록 해외 국가들의 참조 대상으로 활용돼 신약 국내 도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 추진된 '최혜국 대우 약가제도(MFN)'를 예로 들며 "위험분담제가 확대돼 국내 수출 의약품도 이중약가 체계로 운영된다면, 미국 진출 시 불리한 조건을 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환급·가격조정에 따른 리스크 관리 및 컴플라이언스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안 교수는 "투명성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지 글로벌 이중가격 시장에서 혼자 투명하다고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경제학적 관점에서 극명하게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글로벌 제약시장은 가격차별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며 "대외환경 변화를 고려해 위험분담제 확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제도는 환자가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정진향 사무총장은 "국내 신약 접근성에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가 31개에 이르는데, 이는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제가 여전히 제때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환자와 부모들은 여전히 치료제에 대한 희망의 눈을 간절히 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치료제가 도입됐더라도 급여가 제한돼 성인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신경섬유종과 저인산효소증 등은 치료제가 있음에도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총장은 "정부 측에서 위험분담제나 경제성 평가 생략 제도 같은 좋은 제도를 언급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제가 하루빨리 몸에 투여되는 것이 진정한 좋은 제도"라며 "치료제는 단순한 약이 아니라 생명줄"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가 환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 이상 치료제가 있음에도 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위험분담제가 가격 협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환자의 생명 위험을 함께 책임지는 협력의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위험분담제 확대 동의...단, 제도 확대는 환자 중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대표는 "위험분담제 도입 초기에는 제약사 특혜 논란, 약가 투명성 부족 등의 우려가 있었지만, 기존 제도로는 접근할 수 없었던 고가 치료제에 환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제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졸겐스마, 킴리아, 스핀라자 등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부터 최근 중증 아토피 치료제인 듀피젠트에 이르기까지 위험분담제가 적용되면서 환자 접근성이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2013년 환급형과 총액제한형으로 시작된 RSA는 이후 성과 기반형까지 도입되며 제약 범위와 계약 유형이 다양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제도의 한계와 개선 필요성도 지적했다. 이 대표는 "고시 약가와 실제 약가의 차이로 인한 이중가격 구조, 재평가·재계약 불발 시 환자 치료 연속성 문제, 사후 관리 데이터 부족, 행정적 부담 등은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제도를 확대할 때 이러한 문제 해결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험분담제 확대 필요성에는 환자단체도 동의한다. 이미 암 질환 뿐 아니라 중증 질환 치료제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국제 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재정적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하며, 제도의 설계와 확대 과정에서 환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위험분담제는 지난 10년간 환자 치료 기회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환자의 생명과 치료 기회를 지켜내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3년간 위험분담제 운영 노하우로 제도 개선할 때"
KRPIA 최인화 전무는 "미국 최혜국(MFN) 약가 제도는 환자의 신약 접근성과 의약품 공급 안정성 뿐 아니라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기술이전, 임상시험 도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낮은 약가 수준이 국제적으로 참조되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까지 연계된다면 산업 전반이 심각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신약 급여 제도가 낮은 약가와 경직된 경제성 평가로 인해 환자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90% 이상 글로벌 신약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현재 제도로는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는 가치 기반 약가제도 도입이 필요하고, 절차적 경직성을 개선해 환자의 대기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위험분담제와 이중약가제 확대를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 전무는 "지난 12년간 위험분담제 운영 경험을 토대로 정부, 산업계, 환자단체 모두가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현재처럼 특정 질환에만 국한해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국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유연성에 효율적인 시스템 뒷받침 필요"
대웅제약 강희성 실장은 "중국·동남아·브릭스 국가 등은 한국 약가를 참조하고 있다"며 "환급형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국내 신약의 글로벌 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약제 결정 기준 개정으로 만성질환까지 환급형 보험 등재 기반이 마련됐지만 혁신형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으로 한정된 것은 아쉽다. 비혁신형 기업이 도입한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그는 환급형 제도가 확대될 경우 정부와 보험 당국이 환자에게 차액을 환급하는 과정에서 큰 행정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실장은 "현재의 수기 기반 확인·통보 방식을 벗어나 디지털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야 효율성이 담보된다"며 제도 운영의 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국내 제약사의 수출 중심 전략을 언급하며 "국내 시장보다 글로벌 시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급형 제도는 수출 단가를 높여 임상 투자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환급형 제도가 적절히 활용된다면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과 사후관리 수단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며 환자에게는 치료 접근성을, 정부에는 재정 효율성을, 기업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제공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급규모와 재정절감 성과 국민 공개해야"
히트뉴스 허현아 기자는 "위험분담제는 약가 관리 수단을 넘어 치료제의 임상적·경제적 불확실성을 사회가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장치로,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제약사는 시장 진입을, 국가는 산업 경쟁력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적으로도 공개가와 실제가를 달리 적용하는 이중 약가제가 운영되는 만큼 한국도 불가피하게 제도적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도 "이중약가라는 명칭과 투명성 부족 우려가 국민과 환자 입장에서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환급 규모와 재정 절감 성과를 국민에게 주기적으로 공개하거나, 국제 통상 원칙상 세부 공개가 어렵다면 국회나 정부에 비공개 보고하는 절차라도 마련해 성과를 검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행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처음부터 전면적인 정부 주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보다, 기업과 정부가 역할을 분담해 자료 제출·검증을 병행하고 점진적으로 전산화와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기자는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이 제도가 어떤 실익을 주는지가 명확히 설명되어야 한다"며 "치료제 접근성 개선, 비용 절감 효과를 환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민간 협력 채널이나 비공식 경로를 통한 적극적인 설명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나친 투명성으로 불합리한 피해보면 제도 개선"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김연숙 과장은 "건강보험 약제 등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효과적인 약제를 환자에게 적기에 적용하는 것"이라며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2007년 선별등재제도로 전환된 이후 비용효과성 평가를 중심으로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한계가 있어 위험분당제나 경제성 평가 생략 제도 같은 유연한 장치를 병행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MFN(최혜국대우) 약가 정책 등 국제 동향이 국내 제약 산업과 약가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보다 속도감 있게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의 약가 제도가 단일 공적 건강보험 체계와 정률제 본인부담 구조로 인해 투명성이 높지만,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약 접근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지나친 투명성으로 불합리한 피해를 보는 측면도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과장은 "위험분담제, 별도 계약, 이중약가제 등 다양한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향상될 수 있다"며 "투명성, 사후관리, 행정 부담 문제를 최신 기술과 제도 정비로 보완하면서 개선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위험분담제,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고려 개선 논의 필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김형민 부장은 "위험분담제 관련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환자의 신속한 급여 접근과 본인부담 완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환급형 유형은 표시가와 실제가를 달리해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국내 시장 진입과 수출에도 유리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환급형 제도 확대를 검토할 때는 적용할 약제의 우선순위, 선정 기준, 해외 국가와의 비교, 중장기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 과정에서 학계, 환자, 가입자 단체 등과의 사회적 협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환급형 확대 시 효율성 문제와 제도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며 "위험분담제는 도입 초기인 2009년 리펀드 제도부터 시작해 환자 접근성을 넓히는 데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 공동주최 서영석 의원은 "미국은 최혜국 가격(MFN) 제도를 통해 OECD 최저 수준으로 약가를 강제하려 하며,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약가 협상에서 ‘비공개 계약’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약가 체계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약가를 투명하게 관리해 왔고, 역설적으로 이 투명성이 통상 협상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이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치료 접근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가와 제약사가 함께 책임을 나눠 환자가 치료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는 '위험분담계약제(RSA)'가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투명성과 환자 보호,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강조했다.
김윤 의원은 "위험분담제의 발전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급여 이후 재평가 장치를 어떻게 견고히 하고 환자를 보호할지, 성과기반 위험분담제에서 환자별 장기 추적과 환급 절차로 인한 행정적 부담을 어떻게 줄일지, 계약 종료 후 약제가 비급여로 전환될 때 환자 치료가 끊기지 않도록 어떤 보호 장치를 마련할지가 모두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무엇보다도 투명성과 접근성의 균형,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과 산업 경쟁력, 그리고 환자 권리 보장이라는 세 가지 접점을 어떻게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며 "통상 압박 속에서도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 속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국회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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