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유승래 동덕여대 약학대학 교수
의료기술 발달이 가속화되며 기존에는 정확한 진단 및 적절한 치료가 어려웠던 희귀난치성 질환,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해 생존기간 연장과 삶의 질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신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는 단계까지 치료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 기술이 제도권에 수용되기까지는 수많은 검토와 평가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기술 발전이 제도 변화를 이끌어온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앞선 2017년 면역항암제, 2019년 중증 아토피질환 치료제, 2022년 유전자치료제의 유입 시마다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여 제도권에 수용해온 성과가 있는데, 품목 자체는 등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허가된 적응증의 상당수 사용이 제한된 채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즉, 실질적인 의약기술 활용도 및 환자 접근성 측면에서는 품목 자체의 등재를 넘어서 임상시험을 통하여 허가된 적응증에 대하여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도권에서 수용되고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회 청원시스템을 살펴보더라도, 과거에는 특정 품목의 등재 요구 청원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부터, 최근 들어서는 여러 급여확대 청원이 주를 이루며 장기간 계류, 반복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한편, 보험당국 역시 높은 치료제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급여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강정책심의위원회 과거 발표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환자당 약품비가 연간 3억원을 넘는 초고가 의약품이 증가하였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시행 이후, 위험분담제(2014년), 경제성평가특례(2015년) 등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차세대 신약의 유입에 대응하여 다양한 보완이 이루어져 왔지만, 2022년 초고가 원샷치료제 유입을 계기로 다시금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과연 지금의 건강보험 재원 및 건강보험 급여원칙 하에서 계속 유입될 혁신 의료기술 및 의약품들의 제도권 수용이 가능할지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이고,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고민하고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호주, 캐나다를 비롯해서 우리나라가 일찍이 HTA 제도를 벤치마킹한 국가들의 경우에 고가 혁신 신약에 대하여 건강보험 이외 별도기금을 통하여 지원하는 사례가 알려져 있다. 질환 특성으로는 주로 환자 생명을 위협하고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희귀난치성 질환 또는 암 질환이 대상이 되고, 약제 특성으로는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대체약제 또는 치료법이 없는 신의료기술이 대상이 된다.
제도 운영의 관점에서 재원조달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1) 우선 일반약제 급여 재원과는 구분되도록 별도 예산을 할당하여 기금을 운영하는 형태가 대표적인데 호주, 벨기에, 캐나다, 영국, 독일, 뉴질랜드, 이태리 등 사례가 존재한다. (2) 그 외에, 별도 예산을 할당하여 기금을 운영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급여화 이전 한시적으로 환자의 사용을 보장하는 형태로 프랑스와 같은 사례도 존재한다. 재원 구성은 크게 정부 지원, 제약사 펀드 및 혼합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약사 펀드의 대표적 사례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이외에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정부 지원 방식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혁신 신약에 대하여 건강보험 외 별도 재원을 활용하는 외국사례는 의외로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보건의료체계와 급여재원 등의 이질성은 참조에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례로, 영국과 호주처럼 보건의료서비스(NHS) 방식 국가 경우 일반약제 급여재원(일반회계: 조세)과 특별지원 제도의 재원이 큰 틀에서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재정을 별도 주머니로 관리하며 급여재원 기여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다른 부문에 범용하는 국가 일반회계(세금)를 별도기금에 투입하여 신규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동등한 상황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사회보험(SHI) 방식 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전국민 단일보험/단일보험자 기구로 운영 중인 우리나라와 달리, 보험자 기구가 다수 존재하며 직장 가입자·지역 가입자 구분 외에도 직업, 직능, 연령 등 구분 유형에 따라 보험료 납부와 급여/사용 등의 기준이 다양하다. 큰 틀의 재정운영 체계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으로 재원 구성비가 보험료 수입 85.1%, 정부(국고)지원 12.6% 정도인 것과 비교하여 프랑스와 벨기에는 보험료 수입 비중이 각각 33.1%와 3.4%로 나머지 사회보장 분담금과 정부지원금 비중이 현저히 높은 특징을 보인다(프랑스 62.4%, 벨기에 93.9%). 이처럼 급여재원으로서 건강보험 이외 별도의 정부재원 투입 비중이 큰 것은 그만큼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공적 개입과 기여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수용도가 높고 일정 합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숙의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국외 사례를 참조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 간 채택하여온 방안들이 앞으로도 대비책으로서 충분할 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7년 '약제비적정화방안'이 도입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경제성평가를 통한 비용효과성 판단기준(ICER)은 (사실상) 국민 1인당 GDP 수준으로 임계값이 설정되었기 때문에, 다수 중증질환 치료제들의 비급여 사례가 불가피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나 위험분담제와 경제성평가특례 등 개편이 단행되며, HTA 제도의 기본적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환자 보장성을 강화하는 큰 성과를 거두어 왔다.
최근 급여권에 등장한 킴리아와 졸겐스마를 비롯한 초고가 원샷 치료제는, 이제까지 업계와 정부가 적정 선에서 분담하여 왔던 비용-효과성 평가의 불확실성이, 재정투입 규모와 사후관리 시스템에 전례없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된다. 위험분담제도 도입 이전부터 해외 별도기금과 유사한 재원조달 방안이 국내에서도 개정 법률안 발의 등으로 시도된 바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정책적 제안들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 관리주체, 재원사용 및 조달방안 등 보다 구체적 영역에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해외 별도기금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대상이 된 질환/약제에 대하여 국내 보건의료 부문 재정지출/재원조달 현황을 1차적으로 집계하고, 더 나아가 향후 추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의 지출규모 및 이에 대응하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재원에 대한 정보들을 주기적으로 확인 점검할 수 있다면, 현실적 대안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의료기술의 유입이 당면한 재정 부담과 각종 우려를 극복하고, 환자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며 동시에 제도 발전을 이끌어내는 마중물로써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보건의료 관점에서는 궁극적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기사
- 비대면 투약, 즉 약 배달은 누구의 몫인가?
- 바이오 기업에 유리한 회계 처리 방안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 "함께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건보 약제관리 제도"
- "2차 건보종합계획, 마련된 정책의 혜택 돌아가도록 해야"
- 보험약가·제약산업·의약품 전문가 9명 '핫 칼럼 연재'
- 규제 공무원과 헛심 빼지 않고 대화 잘하는 비결 'DOs&DONTs'
- 약평위 재상정 '일라리스', 경제성 평가 유예 첫 약제 될까 '관심'
- "K개량신약의 성공은 환자와 국가를 위한 소중한 자산"
- "허가특허 연계제도와 급여제도의 합리적 공존 필요하다"
- 천연물신약, 이렇게 스러지도록 내버려 둬도 됩니까?
- 단독 | 팁스(TIPS) 중단 사태... '시험비용+인건비+지적재산권'까지 위태로운 벤처기업들
- TIPS Payment Suspension Crisis Hits Biotech Industry
- "해외약가 재평가는 통합적 사후관리 기전 속에서 안착 필요"
- "독일과 프랑스처럼... 국산 신약 가치평가 세분화는 꼭 필요"
- "중국 국가급여의약품목록(NRDL),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 관찰해야"
- "선험국, MEA로 신약 급여 체계적 관리+ 의료 예산 효율성 증진"
- "프랑스의 각성... 약 품절 잦자 제조기업 분산, 원자재 수급 다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