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오정자 애스크알브이 대표
"잘 키운 제약사 하나, 덴마크를 먹여 살린다." 이는 지난해 유럽 기업가치 1위를 기록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를 뉴스로 다루며, 신약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간 경제지의 헤드라인이다.
이제는 신약개발이 인류의 건강증진 뿐만 아닌, 국가의 주요 미래 먹거리가 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 이에 발맞춘 다수의 기업과 연구자들이 속속 신약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대기업에서도 제약산업에 진출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고자 한다. 국가 역시 최근 10년 동안 정부 R&D 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고 있다.
신약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대학이나 연구소 실험실에서의 기초연구 성과가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 신진연구자, 신약개발 스타트업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이 봄을 맞이한 초목처럼 싹을 틔우고, 신약의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봉우리들로 맺어지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다.
연구자들이 신약개발을 성공하여 신약의 시판승인을 받거나, 다른 기업에 Licensing out을 하고자 한다면,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제약산업은 규제산업이다. 그 역사는 잘 알려진 탈리도마이드 사건 등 의약품의 사용으로 인한 안전성 이슈에서 출발이 되어, 과학적 지식과 사회적 요구사항이 많아진 오늘날에 이르러 복잡한 규제로 발전하였다. 규제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그 규제를 어렵게 극복한 소수에게는 큰 혜택이 주어진다. 이러한 가치를 알기에 대부분의 제약산업 종사자들은 규제를 준수하고자 성실하게 연구 자료의 준비에 임하며 인내할 줄 아는 것 같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나 기초연구에서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신약개발의 궤도에 막 진입한 개발자들에게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부모들이 아이의 어린시절 우리 아이는 남과 다른 천재인 줄 착각하는 시기가 있다. 신약개발자들에게도 이러한 시기는 있기 마련이다. 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열정과 몰입으로 나만의 First in class의 신약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를 세상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험을 통과하고 경쟁을 감내해야 하듯, 신약개발 세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빨리 우리 아이가 저 넓은 세상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인재가 되었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지만, 생각보다 해야 할 일, 했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학술 논문을 통하여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험으로 입증하라고 한다. 연구에 몰두하는 사이 새로운 안전성 문제, 과학적 지식의 발달로 추가적인 시험이 요구된다. 혹은 그사이 표준치료제가 바뀌어 대조군을 다시 고려해야 하기도 한다.
제약 바이오 생태계에 많은 인재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들에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아마도 수많은 규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나는 규제기관과의 의사소통일 것이다. 신약개발과정에서 논문을 투고하고, 국가 또는 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하기 위해 화려하고 성공적인 문서를 수없이 작성해 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특허를 비롯한 특허 자료 작성에도 참여하여 나름 성공가도를 달려온 연구자들도 많다. 그런데 규제기관의 심사자와 대면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소위 지적이 많다. 안된다는 것이 많다. 시약이 달라지고, 기구가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다시 시험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박사학위가 있는 나름 지식인인데, 심사자의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는 CRO에 근무하면서 임상 IND를 위해 찾아오는 고객사와 경험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 황당한 경우도 있다. 규제기관과의 상담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질문을 광범위하게 하면, 답변 또한 모호하다. 그런데, 연구자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다. 규제기관은 대화 또는 서면에서 "IF" 절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아직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보니 "~ 한다면", "~라는 전제 하에" 와 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연구자료와 함께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상세한 답변과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즉, 올바른 질문을 해야 올바른 답변이나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규정이 많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 겪는 것은 아니다. 신약개발 강국인 미국에서도 기초연구에서 개발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우리도 그 과정에 있을 뿐이다. 규제와 관련된 의사소통에서의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자 또는 제약산업 신입생들이 겪는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많이 거치면서 규제기관과의 의사소통 경력자들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럼 경력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미래를 예측하고, 사전에 준비하여 목표를 제시간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약개발 생태계에도 규제적 의사소통에 능한 경력자들이 많아 지길 바란다.

규제적 의사소통 신입생들이 빨리 경력직이 되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적어 보았다.
① TPP를 활용하자
규제적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도구는 TPP(Target Product Profile, 최종목표 신약 프로파일)이다. 프로젝트팀이 도달해야 하는 최소한의 특징과 속성을 적은 것으로, 목표로 하는 신약의 최종 허가사항(label)과 유사하다. TPP를 기반으로 외부협력사들도 이에 맞추어 의사소통을 하고 업무를 진행한다. TPP를 물으면 "허가된 혹은 개발 중인 OOO사의 XXX약과 개발목표가 같아요." 라고 답한다. 시간도 없는데 꼭 문서로 해야 하냐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럼 그 약의 label과 동일하게 한다는 것인가요? 결국은 아니다. Target indication과 시장에서의 목표를 혼동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규제기관에 제출하는 문서와 의사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자는 TPP에서 적혀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재능이 있는데, 이를 담지 못한 TPP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TPP에 없는 나의 소중한 보물에 대한 자랑을 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간다. 심사자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다 보니, 모호하게 답변한다. 물론, 개발 과정을 수정해야 한다면 과감히 수정하고 새로운 TPP로 새로운 개발전략과 의사소통을 시작하면 된다.
② 질문은 구체적으로 하자
개발과정에서 수행해야 하는 시험에 대해 문의하거나 상담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질문을 구체적으로 해야 답변도 정확히 받을 수 있다. 또한, 선행연구가 있다면 미리 정리해 여기에서 인용한 부분이나 해당 내용이 현재의 연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후 이것으로 갈음할 수 있는지 또는 추가되어야 하는 시험은 무엇인지 문의하는 것이 좋다. 심사자가 모든 분야를 사전에 업데이트하기는 어렵다. 또는 시험과정에서 기술적인 한계 등으로 다른 시험으로 대체하거나 시험조건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OO 시험을 꼭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 보다는 "최근 OOO한 경향성 및 OOO로 알려진 사실을 근거로 갈음하고자 한다. 또는 대체 시험법으로 변경하고자 하는데 동의하시나요? 우려되는 사항이 있으신가요?"와 같이 구체적으로 질문해 보자.
식약처도 "의료제품 개발상담 사례집"을 통해 안내를 하기도 한다. 이를 참고하는 것을 권장하며, 다만 공개를 위해 일반화 하다 보니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한다. 이에 더해 개발 중인 특이적 상황을 추가하여 질문을 해보면 좋겠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우리의 사전상담 제도와 유사한 Scientific Advice(SA)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질문의 형태를 잘 제시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③ 경청하자
개발자와 규제기관이 특정 이슈를 가지고 대치하는 경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는 심사자가 우려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안되는 이유가 모호하다면 구체적으로 질문하여 재확인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하라. 그래도 안 된다면 대안을 제시해보아라. 규제기관과 우리는 동반자이다.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에게 영향력(influencing)을 주고, 대안(alternative)을 통한 협상(negotiation)도 시도해 볼 만하다.
규제기관 또한 오랫동안 고민을 해 온 것 같다.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도 하고, 밀착 상담도 했는데 고객들의 불만은 줄어들지 않아 보인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고심 끝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8월 공포되고 2024년 2월 시행된 “식품ㆍ의약품 등의 안전 및 제품화 지원에 관한 규제과학혁신법 (약칭: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이 그것이다. 법이 공포되면서 "규제과학혁신정책 추진단"이 업무를 시작하였고, 추진단이 혁신제품 규제지원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정합성 검토 제도화”를 추진 전략으로 정하고 있다(2024년 2월 28일 식약처 발표자료).
정합성(Consistency)이란 서로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신약 개발의 초기단계에 만들어지는 자료들이 규제정합성 검토를 통해 이후의 IND 또는 NDA 신청자료로 이어지는 일치성을 확립하고자 마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동안 연구자들은 IND/NDA 심사를 담당자와 소통을 해야 하다 보니 부담이 되기도 하고, 요구수준이 높을 수 있다. 추진단이 IND 이전 단계의 개발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원활한 규제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도곁에 찾아온 봄과 함께 신약개발의 꽃을 피워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