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유승래 동덕여대 약학대학 교수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다가올 가을철 태풍의 위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급여 의약품 분야에서는, 연초부터 계속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사안으로 해외약가 재평가 제도를 빼놓기가 어려울 듯 하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 간 협의체 활동 및 여러 쟁점 사항들이 상세히 알려지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 제도가 자리잡고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약가 재평가 제도의 도입은 이미 2019년 5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수립 당시 예고된 바 있었다. 최초에 수립된 연차별 시행계획과 비교하여 제도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그만큼 제도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준비와 검토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5년여 만에 2024년 2월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 비교적 명확한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되었는데, 이후 참조국가와 참조방법 등 세부 적용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선택지가 거론되며 각 조합마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졌고, 그 결과 약효군마다 가격 인하될 약제(제약사)들 간의 형평성 문제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약가 재평가 제도의 작동원리가 되는 외부참조가격(ERP, External Reference Pricing) 방식도 국가들마다 세부 방법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 적용대상과 활용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어느정도 보편화 되어 있는 사항이 있기 때문에 국내 논의 중인 방식은 특수한 사례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ERP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고 계속 발전시켜 온 유럽 국가들을 비롯하여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HTA(신의료기술평가) 방식 운영 국가들의 대다수가 ERP를 특허유지/신약에 한하여 적용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독립적인 약가산정 방법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ERP 작동원리상 개별국가로서는 유사성을 지닌 소수 국가들만 참조하더라도, 참조 국가들 간에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재참조되면서 이질성과 불확실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국가별 저소득-고소득 편차, 국민 1인당 GDP와 의료비, 약제비 지출 편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자국에 최적인 가격을 판단하는 것은 복잡한 계산공식을 넘어선 가치 판단의 문제이다. 이와 같은 ERP 방식의 한계로 의료보장 및 보건의료 제도가 발달한 국가들은 경제성평가, 재정영향분석 등 HTA 방식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ERP는 평가·협상 과정에 최대 인정가격(ceiling) 또는 최소 보장가격(protection) 기준으로 보완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Positive List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외국약가를 신약 가격 산정과 특허만료 약제 가격 조정에 활용한 바 있었지만, 경제성 평가를 비롯한 HTA 방식을 채택한 이후로 외국약가는 신약의 최대 인정가격 기준 위주로 활용되고 있어 외국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허만료 약제의 경우에도 기등재 약제 목록정비 및 동일성분-동일가 정책을 통해 Positive List 제도 도입 전후의 균형을 맞췄기 때문에, 기존 해외약가 재평가 제도는 실효성 문제와 더불어 사실상 trade-off 개념으로 폐지된 측면이 있다. 약가 인하폭만 놓고보면 기존의 해외약가 재평가 인하율을 훨씬 상회하는 제네릭 약가 제도로 개편되었고, 2019년 말에는 차등약가 방식으로 더욱 고도화되는 등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하여 정부와 업계가 모두 힘겹고도 신중하게 합의점을 찾아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특허만료/제네릭약에 대한 ERP 적용 사례가 드물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및 일부 동유럽 국가) 약가 계산공식 또한 국가들마다 다양하므로,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식도 여러 방법론 중의 하나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2007년 Positive List 및 HTA 제도 도입을 계기로 해외약가를 참조하는 대상 약제와 구체적 방법에 대하여 전면 재설정하였고 이를 대신하여 보다 실효성있고 합리적인 방안들을 계속 마련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기존에 도입되어 존속 중인 다른 사후관리 제도들과의 관계와 적용 시점, 중복 또는 연속 적용 시에 대한 부분도 미리 고려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선험국 사례에서도 ERP 방식은 공통적으로, 약제 급여와 가격 결정에 있어 협의와 조정을 위하여 보완적으로 참조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우리나라도 현재 신약 등재 시 외국약가를 하나의 참조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듯이, 기등재 약제 사후관리 시에도 기존의 다른 제도들과 상호 영향을 고려하며 협의와 조정을 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 적용 대상과 세부 방안에 대한 논란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느 일방의 결정을 다른 일방이 그대로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어렵게 고안한 제도가 실효성을 갖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도 '특허만료 약제 재평가' 사업 항목보다 윗단에 '중장기 전략 수립 방안'으로 현재 분절적인 약가 상한금액 조정 기전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방침이 언급되어 있다. 새로운 공적 제도의 도입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이 클수록, 최종 결과(약가)에 영향을 주고받는 다른 사후관리 제도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공존 방안을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수용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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