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칼럼 |
일단락된 정부 약가개편의 씁쓸한 복기(復棋)

기업은 웬만해선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못한다. 허약체질로 저평가 되면 기업은 물론 주주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외형이 부족하면 사업다각화로 채우고, 내실이 문제되면 비용을 줄여 어떻게든 맞춘다.

2012년 기등재 보험의약품 일괄약가인하도 그렇게 버티면 새순을 틔웠다. 당시 정부는 1조7000억 인하금액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기 등재 의약품 전 품목에 대해 14%씩 깎아 금액을 맞췄다. 그 해부터 기업들의 매출성장률이 이전 두 자릿수에서 '0%대'에 수렴하고, 이익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쳤다.

기업들은 역성장은 안 된다는 각오로 사업다각화, 외국 오리지널 제품 도입, 비급여 의약품 판매, 져렴한 원료의약품 사용 등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매출을 채웠고, 마케팅 비용 절감부터 심지어 인원조정까지 감행하며 손실을 메꿨다. 그렇게 5년여를 버틴 끝에 경영정상화에 근접했지만 제약 기업들에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잃어버린 5년' 이었고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도 성장 모멘텀을 잃었다. 

이 같은 질적 변화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정부는 '다 죽는다더니 아무도 안 죽었다'며 '엄살 부린 것 아니냐'는 식으로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왔다. 지난해 11월28일 불거져 5개월 가까운 논란 끝에 최근 얼개가 잡힌 이른바 '11.28 정부 약가개편안'은 제약기업들에게 그 때의 악몽을 소환하고 있다.

산업에 대한 폄하나 의심이 그 출발점이 되었음직한 제도개선 명분이나, 협의과정을 건너뛴 강압적 행태, 산업계의 맷집을 시험하는 듯한 대규모 일괄약가인하 등 그 결과까지 2012년 당시와 영락없는 데자뷔라는 것이 산업계의 볼멘소리다.

약가개편안 진행기간 비장한 태도를 보였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사진=제약바이오협회 제공.
약가개편안 진행기간 비장한 태도를 보였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사진=제약바이오협회 제공.

지난달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약가제도 개편안'에 따른 기 등재 의약품 약가인하액은 정부 쪽 추산으로도 최대 2조4000억 원이다. 정부는 처음엔 인하대상을 2012년 이전 등재 제네릭으로 한정한다더니, 모든 제네릭으로 확대했고, 특허만료 오리지널도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인하금액 추정액도 처음 1조에서 2조4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특허만료 오리지널의 국내 판매처는 대부분 토종 제약으로, 결국 인하액 모두 국내 제약이 안아야 할 몫이다.

특히 정부는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에 대해 긴급한 처방을 요하는 '골든타임'에 접어 들었다는 진단아래 체질개선 방안으로 혁신형 우대를 제시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낳으며 설득력을 못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개발 투자 및 실적을 기준으로 기존 혁신형 기업에 준 혁신형 기업을 새로 지정해 약가인하 시기를 늦춰주는 등 특혜를 줌으로써 신약개발 분위기를 띄운다는 것인데, 수혜 기업은 늘고 혜택은 줄어든 새로운 제도가 '조건 맞추기'의 꼼수를 양산할지언정 실질적인 연구개발 분위기 유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외자사 오리지널 의약품은 약가인하 대상에서 제외되며 국내 제약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발을 샀는데 산업계 일각에선 토종 제약 쌈지돈으로 부자 외자사 배를 불린 개편안이라는 혹평도 나왔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최대 2조4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약가인하가 10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져 산업계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이다. 산업계가 한정된 여건에서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끌어낸 결과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그래도 선방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정부와 접촉을 통해 제네릭에서 얻은 수익을 캐시카우로 신약개발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격인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도 산업계의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아래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산업계 역시 이번을 계기로 정부 측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한 산업계는 예전에도 그랬듯 생존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연구개발비 줄이고, 인원 감축도 생각해봐야 할 수 있다. 또 다시 오리지널 의약품 도입 및 비 보험 의약품 생산, 사업다각화 등으로 외형을 유지하려 들 것이다.

그래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면 정부는 또 가격인하를 윽박지르며 엄살부리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제약기업들의 속마음은 타들어 간다. 큰 곳이나, 중하위권 이나 그 마음은 큰 차이는 없다. 기업이 버틴다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아남는 방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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