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자들 연구
중증질환 부담 커지는데 약품비 지출 '경증ㆍ제네릭' 집중에 주목

국내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고가 치료제의 등장에도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는 속도는 느리고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구조 역시 중증도가 높은 질환보다 경증질환과 제네릭 품목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정부가 약가제도 개편을 예고했지만 신약 투자 여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환자 접근성 개선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히트뉴스>는 국내 약품비 지출 구조의 현황과 질병부담의 불일치를 짚고, 신약 투자 확대가 왜 필요한지, 건강보험 재정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돼야 하는지 살펴봤다.

질병부담은 '중증질환' 중심… 지출은 '경증·제네릭'에 쏠린 구조

국내 질병부담은 명확히 중증질환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암·심혈관질환·희귀난치성 질환과 같은 고위험·고비용 질환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경증질환은 의료기술 발달과 자기관리 증가로 부담 증가세가 제한적이다. 

질병부담을 나타내는 DALY(장애보정손실연수) 지표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상위 질환군 대부분이 사망률과 합병증 위험이 높은, 사회적 비용 규모 역시 중증질환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중증질환의 치료 접근성이 낮아질 경우 생존율 저하, 장기 의료비 증가, 생산성 손실 등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게 확대된다는 점에서 부담 대비 지출 구조는 정책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 재정이 투입되는 건강보험 지출 구조는 이러한 질병부담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동덕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유승래 교수의 '신약의 치료군별 약품비 지출구조 현황 분석 및 합리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약품비에서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13.5%로 OECD 평균의 절반 이하이며 반대로 제네릭 의약품은 지출 비중을 계속 확대해 왔다. 오리지널 대비 95% 수준에서 책정되는 높은 제네릭 약가와 과잉 중복된 제네릭 제품 수는 자연스럽게 재정의 흐름을 경증질환 치료제와 고비용 구조의 제네릭 시장으로 몰리게 했다. 실제로 유 교수 연구에서는 '현 지출 구조는 질병부담과 무관하게 약제 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약품비 지출의 구조적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권용진 교수팀의 '중증질환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 효율화 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A8)과 비교해 전체 보건의료비 지출은 적지만 보건의료비 중 약품비(23~24%수준)에 대한 지출이 유독 높다. A8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총 의료비 대비 약품비 비중이 높은 국가는 없었으며(캐나다 14.9%, 프랑스 12.9%, 독일 13.7%, 이탈리아 17.5%, 일본 17.6%, 스위스 12.1%, 영국 9.7%, 미국 12.4%) 보고서 작성 시점에서 2023년 데이터를 보고한 OECD 국가 중에서는 그리스, 헝가리,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만이 우리보다 약품비 비중이 높았다. 특히 영국 약품비 비중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25). 

우리나라의 약품비 비중이 높은 것은 높은 제네릭 약가와 높은 의료기관 방문 빈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권 교수는 지출 왜곡이 단순한 약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환자 조사 결과,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삶의 질 만족도는 48점에 불과했으며 경제적 취약성과 치료 접근 지연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건강보험 지출은 여전히 경증질환과 반복 처방 중심의 영역에 집중돼 있어, 실제 치료 절박성이 높은 환자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희귀·난치·중증질환의 경우 치료제 가격은 높지만 치료 효과가 명확해 조기 치료를 통해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신약 접근 지연으로 인해 오히려 장기 비용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권 교수는 등재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단순 의료비를 넘어 장기 요양비, 생산성 손실, 보호자 돌봄 부담 등으로 확장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질병부담이 크고 대체 치료제가 없는 질환일수록 지출 우선순위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의 건보재정 지출 구조는 실제 국민의 건강 위험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네릭 공급체계와 등재 절차, 경증질환 중심의 보편적 보장 구조 등 제도적 요인에 의해 움직여 왔으며 그 결과 중증질환의 질병부담 증가 속도와 지출 증가 속도 간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보편적 보장'에서 '필요 기반 보장'으로...국민 인식 변화

권용진 교수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국민이 건강보험 재정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미 구조적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설문 응답 수준을 넘어 재정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성숙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국민 76.9%는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조건에서 질병의 유형에 따라 보장성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기존 건강보험이 유지해온 보편적 보장 원칙에서 벗어나 한정된 재원을 필요가 큰 환자에게 우선 배분해야 한다는 선택적 보장 구조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도 수용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증질환 보장 강화를 위해 경증질환 보장을 축소할 수 있다' 응답도 46.7%에 달했으며 희귀난치성질환 보장을 위해서는 52.7%가 ‘경증 보장 감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변해 질환의 중증도에 따른 우선순위 조정 정책 수용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선호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DCE(선택실험) 조사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됐다. 응답자들은 보장 결정 시 고려해야 할 요소 중 △질환의 유형(중증 여부)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선택했으며 중요도는 51.1%로 과반을 넘어섰다. 이어 △환자의 연령(23.4%)과 △치료 효과’(14.1%)가 뒤를 이었는데, 특히 치료 효과 항목에서는 생존율 증가 가치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 국민이 건강보험의 본질적 역할을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에서는 특히 이 모든 응답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에는 국민 스스로가 ‘경증질환은 일정 수준의 본인부담 조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국민 52.9%가 경증질환 의료이용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를 '본인부담 비용'이라고 답했으며 적정한 본인부담금 수준은 '1만 원 전후'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경증질환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을 중증질환 치료 접근성 강화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사실상 동의한 것이다. 권 교수는 연구에서 "한국 사회는 이미 중증질환 중심의 건강보험 재정 운영이라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받아들일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중증·고위험·치료효과 중심'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기준

OECD 주요국의 건강보험 및 약제비 재정 배분 구조는 공통적으로 중증질환·고위험 환자·치료 효과가 명확한 영역에 재정을 우선 투입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유승래 교수와 권용진 교수 연구는 이 같은 흐름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유 교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2018~2023년 약품비 지출은 2180억 달러(약 321조원) 증가했으며, 신약과 특허 보호 의약품이 주요 기여 요인이었다. 향후 특허 만료 의약품의 지출은 줄어들지만 신약과 특허 보호 의약품의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 주요 5개국(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재정지출은 2018-2023년 동안 약 650억달러(약 95조원) 증가했다. 신약 지출이 크게 증가했으며 제네릭 의약품 사용 확대가 재정 부담을 일부 상쇄한 것으로 분석됐다. 

권 교수는 실제 OECD국가가 어떻게 재정을 재배분하는지 분석했다. 프랑스의 경우 '중증질환 보장제도(ALD: Affectionde Longue Durée)'가 있어 장기 ·고액 질환을 30개 지정해 이들 질환군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한다. 이는 건강보험 재원을 실제 의료적 필요가 큰 집단에 집중시키는 구조로 경증질환은 기본 본인부담을 유지하거나 소폭 인상하면서 중증질환에 예산을 몰아주는 재정 재배분 전략의 대표적 모델로 평가된다. 

또한 프랑스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제네릭 약가를 공장도가 대비 약 40% 수준으로 규제해 약제비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고, 이렇게 확보된 재정을 혁신 신약과 중증질환 치료 영역에 재 투입한다. 

노르웨이는 '질환의 중증도'를 급여 기준의 최우선 원칙으로 적용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의약품 급여 여부를 평가할 때 비용효과성 뿐 아니라 질환으로 인해 상실되는 QALY(삶의 질 보정 생존연수) 규모를 반영해 질병 부담이 높은 환자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가중치 기반 평가'를 도입했다. 그 결과 같은 비용으로 같은 효과를 내는 약제라고 해도 중증질환 치료제는 더 높은 수용성을 갖는다. 권용진 교수는 이를 국민의 직관적 인식과 동일한 철학 구조라고 평가했다.

영국 NICE 역시 재정 우선순위를 중증 및 고위험 질환에 두고 있다. 영국은 혁신 치료제의 비용이 높더라도 생존율을 유의하게 향상시키거나 기존 치료 대비 혁신성을 입증한 경우에는 'Cancer Drugs Fund(CDF)'와 같은 별도 재정을 활용해 신속한 환자 접근을 보장한다. 이는 등재 비용을 단일 건강보험 재정에서 모두 감당하지 않고 고위험·중증질환 치료에 특화된 재정을 별도 운영하는 방식으로 재정 지속가능성과 환자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모델이다. 

호주는 희귀질환 및 중증질환 신약에 대해 '특례 접근 프로그램(SAP)'을 운영한다. 이는 허가 이전 단계에서도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에게 약제 접근을 허용하는 제도로 치료 절박성을 재정 배분 원칙보다 우선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처럼 OECD 다수 국가는 재정 배분의 중심축을 중증도, 치료 절박성, 생존율 개선 효과, 혁신성에 두고 있으며 경증질환은 본인부담 구조를 설계하거나 제네릭 시장 경쟁을 강화해 지출을 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결국 해외 사례는 건강보험은 모든 영역에 똑같이 쓰는 제도가 아닌 위험이 가장 큰 곳에 재정이 먼저 배분돼야 한다는 기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정 재배분 요구 속 13년 만에 약가개편이 움직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대대적인 약가제도 개편이 예고됐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선안을 보고했다. 2012년 약가 일괄인하 이후 13년만에 나온 대규모 약가제도 개편으로, 복지부는 신약개발 생태계 조성,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약가관리 체계 정비를 골자로 제도 전반을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제고와 중증·난치질환 치료제의 비용효과성 평가 고도화, 약가 유연계약제 도입, 사후관리 정비, 제네릭 산정기준 재편 등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급여적정성 평가와 협상 절차를 간소화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 등재를 추진한다. 기존 최대 240일이 걸리던 급여 절차를 100일 이내로 단축하기 위해 심평원의 급여기준 설정, 공단 협상, 복지부 건정심 의결을 각각 1개월 안에 처리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비용효과성 평가에서도 변화가 예고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획기적인 치료성과를 보이는 혁신 신약의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신속등재–후 평가·조정 트랙'을 마련해 기존 평가 체계를 보완할 방침이다. 약가 유연계약제는 이르면 2026년 2월 시행될 예정이다.  표시가격은 A8 조정 최고가 범위 내에서 산정하되, 실제 가격은 별도 협상과 계약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제네릭 산정률 역시 기존 대비 대폭 조정돼 오리지널의 40% 수준으로 낮아진다. 

사실상 이번 개편안은 연구자들이 제안해 온 재정 재배분 원칙인 중증·희귀질환 우선 투자, 제네릭 약가 구조 조정, 신속등재 경로 마련, 비용효과성 평가의 탄력화 등이 다층적으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신약 접근성 제고 방안이 제도 설계 단계에서 비교적 폭넓게 포함됐다는 점 역시 일정 수준 기대를 낳는다. 

그러나 실제 지출 구조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손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건강보험 재정 운용의 세 가지 축, 즉 △현재 재정 범위 안에서의 사용 효율화 △경증·제네릭 중심에서 중증·희귀 중심으로의 지출 구조 전환 △건강보험료 외 별도 재원을 포함한 신규 재원 확충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여기에 글로벌 정책 환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의 MFN 참조국 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17개 제약사가 개별적으로 비공개 협상을 진행하며 국가별 참조 방식과 실제 가격(net price) 기준 등을 논의하고 있어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글로벌 제약 본사들은 한국 가격이 다시 비용 절감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여전히 가격 승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 역시 낮은 약가와 혁신 보상 부족 문제를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국적 제약사 약가 담당 관계자는 "제네릭 중심 구조를 일부 조정해 절감 재원을 중증·희귀질환 치료에 우선 투입하겠다는 방향은 국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며 "문제는 실제 재정이 신약으로 얼마나 이동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얼마나 명확하게 설정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글로벌 제약사 임원은 "ICER 임계값은 건강보험이 혁신 신약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에 정해진 답을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희귀·소수 환자 치료제 특성을 반영한 탄력적 기준이 도입돼야 제도가 실효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개편 방향이 업계가 요구해 온 재정 재배분과 우선순위 조정이라는 흐름과 맞닿아 있는 만큼 시행에 앞서 근거 기반 논의와 재정운영 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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