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CHECK | 바이오 투자 시장 ⑧
올해 상반기 섹터별 자금 조달액 백중세…투자 혹한기 1년 만에 급변
자금 조달 '톱픽'도 헬스케어 업체 첫 차지…생태계 변화 서막 신호탄?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대한 투자 트렌드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바이오=신약개발'이라는 인식 아래 혁신신약 개발사에 몰리던 투자금은 급감하고 '헬스케어' 업체들은 비교적 자금 조달에서 선전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의 경우 직전 3년간 신약 연구개발(R&D) 바이오 벤처가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톱픽(Top-pick·최선호주)을 헬스케어 업체가 차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같은 투자 트렌드 변화는 곧 국내 바이오 벤처 투자 생태계의 변화도 의미하는 것이어서 업계에서도 이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23일 히트뉴스가 2023년 상반기 자금 조달을 마무리한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현황(6월 30일 주금 납입 완료 기준)을 '섹터별'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금 조달에 성공한 37곳 업체 가운데, 헬스케어 섹터에 해당하는 업체는 15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해당 기간 자금 조달에 성공한 국내 전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약 41%를 차지하는 수치다.

2020년 이후 각 상·하반기 전체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업체의 투자 유치 내역을 살펴볼 때, 올해 상반기에 처음으로 자금 조달을 마친 헬스케어 업체 수가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 수를 앞선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는 13곳(35.1%)이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헬스케어 섹터보다 처음으로 자금 조달 성공 기업 수가 뒤처졌다. 이밖에 커머스 및 위탁생산업체, 진단 및 기타 업체 등이 자리했다.

자금 조달 규모로 비교하면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가 근소한 차이로 헬스케어 업체의 조달액을 앞섰다. 올해 상반기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의 자금 조달 규모는 총 1284억원이었고, 헬스케어 업체의 투자 유치 금액은 1212억원이다. 커머스 및 위탁생산업체들은 437억원, 진단 및 기타 섹터에서는 291억원을 모았다.

안쪽 작은 원이 2023년 상반기. 바깥쪽 작은 원이 2022년 상반기 / 자료=히트뉴스 자체 집계 및 재구성
안쪽 원은 섹터별 자금 조달액. 바깥쪽 원은 섹터별 자금 조달 성공 업체 수 / 자료=히트뉴스 자체 집계 및 재구성

이는 직전 3년간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가 헬스케어 업체보다 자금 조달 총액에서 줄곧 압도적 우위에 섰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작년 상반기의 경우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로 향한 금액은 총 자금 조달액(1조3107억원)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8618억원이었다. 반면 헬스케어 기업으로는 전체 자금 조달 규모의 15%인 1993억원이 유입됐다.

시장 관계자는 "최근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의 경우 자금 조달 과정에서 조기에 달성 가능한 수익 모델을 내놓지 않으면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긴 기간의 R&D를 지탱할 투자금이 모이지 않고 있는 데다, 혁신신약의 장밋빛 청사진을 투자자들이 맹신하지 않게 된 점 등이 올해 상반기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가장 주목을 받은 업체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는 '톱픽'의 영예는 처음으로 헬스케어 업체로 돌아갔다. 올해 상반기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앱) '캐시워크'를 서비스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넛지헬스케어가 300억원을 모은 결과였다.

넛지헬스케어는 시리즈 A에서 대규모 자금을 모았다. 일반적으로 시드 및 시리즈 A 등의 초기 투자 단계에서는 투자 유치 규모가 적다는 통념도 깼다. 넛지헬스케어가 보유한 캐시워크는 확실한 수익 모델을 평가를 받아 추후 사업 확장 국면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대규모 투자 유치 성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직전 3년간을 반기 단위로 살펴봤을 때 신약 개발 업체들은 기간별 자금 조달 규모에 있어서 톱픽 자리를 한 차례도 놓치지 않았다. 그간 자금 조달 시장이 사실상 신약 개발업체를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이번 넛지헬스케어의 톱픽 선정으로 추후 시장의 투자 및 자금 조달 트렌드가 변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0년 상반기에는 항암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지아이이노베이션(시리즈 C, 300억원)이, 2020년 하반기에는 중추신경계질환(CNS) 치료제 개발사 콘테라파마(시리즈 B, 510억원)가 톱픽을 차지했다. 2021년 상반기에는 자금 조달을 마무리한 지 1년 만에 프리 IPO(Pre-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성사하며 본격적인 상장 채비를 갖췄던 지아이이노베이션(프리 IPO, 1603억원)이, 하반기에는 중국에서 전략적투자자(SI)를 맞이한 보툴리눔 톡신 개발업체 휴온스바이오파마(1544억원)가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중 톱픽이었다.

투자 시장이 본격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작년에도 상·하반기 자금 조달 규모에 있어서 최대어 타이틀은 역시 신약 개발 업체의 몫이었다. 2022년 상반기에는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사 아리바이오(프리 IPO, 1345억원)가, 하반기엔 항암신약 개발사 아이디언스(시리즈 B, 300억원)가 이름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투자에서 헬스케어 업체가 조달 최상위 자리에 올라선 것 외에도 초기 투자 라운드 기업이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한 것도 눈길을 끈다"며 "더불어 어려운 시기에 자금 조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침체된 바이오 투자 시장에서 냉혹한 옥석 가리기를 버텨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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