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행복하고 즐길 수 있는 캔서테이너 활동
암 환자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는 '인생 선배'

 암? 난, 너에게 절대 주눅들지 않아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널리 전파하는 암 환자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캔서테이너'다. 캔서테이너란 '암(Cancer)'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합쳐 만든 용어다. 본인의 재능을 기부하는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캔서테이너. 히트뉴스는 가지각색의 캔서테이너를 만난다. 편집자 

① 사회적 기업 '박피디와 황배우'를 이끄는 박지연-황서윤 대표
②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수빈 씨

어린 아들에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캔서테이너 김수빈(39세) 씨. 열한 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4년 전 자궁경부암 1기 말 판정을 받았다. 항암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골반 림프절로 전이돼 림프절 절개를 다 했다. 지금 4년 차 인데 내년까지 꾸준히 치료할 예정이며, 완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아프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암 환자라는 게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배려를 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니 암 환자들이 정말 주눅들지 않았으면 한다. (암 환자인) 엄마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캔서테이너 김수빈 씨.
캔서테이너 김수빈 씨.

 

진단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많이 억울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결과로 암 판정을 받아서 말이다. 보통 자궁경부암 치료 과정에서 자궁을 적출하는 경우가 드물다. (저는) 암 종양이 너무 커서 이미 자궁내막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적출을 해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상실감이 컸다.

둘째 아이를 못 가진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아쉬웠다. 남편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첫째 아이라도 잘 키우자고 격려해줬다. (자궁경부암) 수술 치료 후 퇴원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시 아들이 7살이었는데 어린 아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죄책감도 들었고, 여러모로 마음이 불안했다.

스스로 당당해지려고 노력을 많이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집착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암 치료 같은 경우)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이젠 더 이상 무서울 게 없고,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혹시 '암밍아웃' 같은 책이나 에세이가 투병할 때 도움이 됐나?

사실 그런 책을 안 읽었다(웃음). 아팠을 당시에는 그런 책이 많지도 않았고, 굳이 그런 정보를 얻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행 도서를 주로 즐겨봤다. 읽고 싶었던 잡지도 종종 읽었다. 특히 고난이나 시련을 겪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긴 도서를 많이 봤다. 암 치료가 다 끝나면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 잡지를 많이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시나.

투병 후, 무엇이 가장 달라진 점인가.

투병 전이나 투병 후에도 하는 일은 똑같았다. 투병 전, 축제 행사의 콘텐츠 제작 PD 업무를 담당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현장 일이 거의 없어서 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는 디렉터 일을 수행하고 있다. 직장의 개념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예전에 인천관광공사에서 잠깐 동안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업무 도중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회사 측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서 (수술 후) 복귀할 때까지 대체 인력을 뽑지 않고 저를 기다려줬다. 

퇴사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현재는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1인 기업이기 때문에 혼자서 업무를 하고 있다.

투병 전에는 '목숨 걸고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일 자체를 너무 좋아했고 항상 파이팅이 넘쳤다. 목숨 걸고 하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투병 이후 이런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은 일의 업무량을 조절하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제는 과거처럼 나의 일에 대해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일이 힘들어도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좀 못하면 어때,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아!" 이런 마음가짐이 생겼다.

 

캔서테이너, 생소하다.

'박피디와 황배우' 회사의 두 대표님이 원래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분이다. 박피디는 저와 같은 회사에서 한 번 일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황배우는 배우로 일하다가 두 분이 같은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게 원래 알고 지내다가 각자 암이 걸렸고, 우연히 서로 연락이 닿았는 데 둘 다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무렵, 나도 암 판정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암 동지'가 된 셈이다. 일터에서 동료였고, (암 판정을 받은 후) 암 전우회도 생겼다.

조금이라도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같이 일하게 됐다. 캔서테이너라는 단어 자체가 암과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다.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암 환자에게 캔서테이너 명칭을 붙였다.

사실 암 환자라고 하면 우울증에 빠져있는 고착화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 캔서테이너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임에 참석한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토크콘서트 활동(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수빈 씨).
토크콘서트 활동(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수빈 씨).

'토크콘서트'를 꼽고 싶다. 토크콘서트를 처음 진행했을 때, 숨겨왔던 내 이야기를 말하면 청중들이 다 같이 공감했다. 그런 활동이 주로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뭘 해줄 게 없어 암 환자를 보는 시선이 편하지 않다.

캔서테이너로 활동하며 어려운 점이 있을 텐데.

그렇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어렵거나 불편한 점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암 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장벽이라고 생각 안 하기 때문이다.

 

캔서테이너로 4년 간 활동했다. 앞으로 목표는.

암에 걸린 여성들 특히 (자식이 있는) 엄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다같이 참여해서 서로 즐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원래 했던 일이 축제를 기획하는 업무였기 때문에 행사를 연출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축제 기획 PD 일을 하기 전에 댄서로 잠깐 활동했다. 그렇기에 암 환자에게 춤을 가르쳐 그분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앞장서고 싶다.

 

나 역시 큰 계획없이 사는데, 계획을 물어보게 된다.

아들을 잘 키우는 게 목표다. (웃음) 일을 하는 데 있어 암 환자였던 엄마도 멋지게 일을 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당당히 보여주고 싶다. 일단 끝까지 버티는 게 제일 큰 목표다.

한번 아픈 이후, 계획의 의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한 때 '계획병'이 심했던 사람이었다. (과거에는) 항상 다이어리에 해야할 일을 적고, 계획을 철저히 진행하는 편이었다. 계획대로 일이 안 풀리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암 치료를 진행한 후, 오늘이 끝이 아니라 매일을 '생일'인 것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의 여유를 가질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여행은 누구와 가고 싶나.

완치 후 계획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이판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남편이 아들과 함께 사이판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나아진다면 사이판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고 싶다.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캔서테이너 김수빈 씨는 암 환자에게 '당당하자'는 메시지를 항상 강조한다.
캔서테이너 김수빈 씨는 암 환자에게 '당당하자'는 메시지를 항상 강조한다.

요즘에는 암이라는 게 우리 일상에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주위 가족, 친구, 지인들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서로 다르지 않다는 시선에서 바라봤으면 좋을 것 같다.

영혼 없는 위로보다 그냥 공감했으면 좋겠다. 완치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한다. 암도 하나의 '자격증'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 하나의 자격을 더 부여 받았다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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