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규제 불일치가 공급망 부담 키워"
공급망 안정화 해법은 'Reliance'와 'Convergence'

백신과 바이오의약품의 길은 환자에게 닿기까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각국의 다른 규제 탓에 제조와 시험, 허가 절차가 꼬이면서 공급이 지연되고 환자들의 접근성도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서울에서 열린 2025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 중 '바이오의약품 공급망 포럼'에서 심포지엄에서 벤 톰슨(Ben Thompson) GSK CMC 규제 담당 부사장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국제적 조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국·브라질·일본 등 나라마다 규제 달라

GSK는 매년 15억파운드 규모의 의약품과 4억도즈 이상의 백신을 공급한다. 전 세계 40여개 거점과 2만6천여 명의 인력이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도 2500개 이상의 제품 포장이 공장에서 환자를 향해 출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 제품이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보통 1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톰슨 부사장은 "합성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세포를 활용하기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바이오의약품 공급망은 다국적 규제와 얽혀 운영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바이오의약품 공급을 복잡하게 하는 주 원인으로 '각국의 제각각인 규제 요건'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원료와 완제를 동시에 국내에서 혹은 모두 국외에서만 제조해야 하며, 혼합 생산이 불가능하다. 브라질은 특수 콜드체인 검증 패키지를 요구하고, 일본은 펩타이드 맵 시험을 의무화한다. 그는 "이처럼 국가별로 요구 조건이 달라 하나의 생산 로트가 세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반복 시험을 거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일치는 초기 허가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톰슨 부사장은 "우리는 ICH 가이드라인에 맞춰 허가 자료를 준비하지만, 각국은 이를 기본으로 삼아 추가 조건을 덧붙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단순한 냉장 보관 검증을 넘어, 공장에서 출하해 현지 창고에 이르기까지 전 구간의 운송 과정까지 세밀하게 입증하도록 추가적으로 요구한다. 초기 허가용 파일조차 시장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판 후에도 이어지는 규제 딜레마

제품이 출시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자재 공급업체 변경, 제조 공정 개선, 비용 절감은 기업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지만, 각국 규제기관의 승인 속도는 크게 다르다. 톰슨 부사장은 "한 회사의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국가는 최신 제조 방식이 적용된 제품을 쓰고, 다른 국가는 예전 버전 제품을 쓰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시판 후 변경 관리 원칙을 담은 ICH Q12 가이드라인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톰슨 부사장은 "산업계에서 공급망 안정성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원칙이지만, 국가마다 가이드라인 도입 속도가 달라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는 여전히 기존 방식에 머물러 있어 공급망 복잡성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Reliance'와 'Convergence'

톰슨 부사장은 바이오의약품의 공급 복잡성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규제 신뢰(Regulatory reliance)'와 '규제 수렴(Regulatory convergence)'을 제시했다.

'Regulatory reliance'한 국가의 규제기관이 다른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심사 결과나 평가 자료를 참고해 자국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다. 실무 능력이 비슷한 기관끼리 심사 자료를 공유·공동 평가하는 방식과, 자원이 부족한 기관이 선진국 규제기관 결과를 참고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최근 WHO와 아시아·아프리카 규제기관들은 이러한 프레임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그는 이를 활용해 평소라면 18개월 이상 걸리던 심사가 규제 신뢰 절차를 통해 몇 달 만에 끝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Regulatory convergence'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는 각국 규제기관이 평가 기준, 기술 가이드라인, 문서 양식 등을 점진적으로 조화시켜 가는 흐름이다. 법률을 똑같이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ICH Q10·Q12와 같은 국제 가이드라인을 채택해 유사한 심사 수준과 절차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WHO, APEC, ICMRA 등이 이를 위한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동심사·데이터 공유 등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ICH Q12는 제조공정이나 품질 변경 관리와 관련한 국제 기준을 제시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핵심 역할을 한다. 각국의 심사·승인 기간 차이를 줄여 생산 지연이나 재고 과잉 위험을 완화하고, 보다 예측 가능한 공급망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Reliance와 Convergence, 두 전략이 함께 추진된다면 공급망의 복잡성은 지금보다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은 전 세계 환자들에게 필요한 기본 조건"이라며 "산업계와 규제당국이 협력해 국제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당부했다. 이어 "ICH Q12 원칙이 글로벌 차원에서 충실히 적용된다면 공급망 안정성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