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이종욱 ㈜나위 대표
故 약수(若水) 백우현(白于玹) 박사님의 소천을 애도하며

우리나라 제약산업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거인, 故 약수(若水) 백우현(白于玹) 박사님께서 2주전에 타계하셨다. 7월 20일 이었다.
고인은 공사다망하게 바쁘신 중에도 자주 짬을 내어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가까운 사당동 일대의 맛집에 한참이나 미진한 이 후배를 호출하여 여러 화제로 의견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곤 하셨다.
고인의 소천을 알리는 부고를 접하고 멍해진 머리로, 최근들어 백 박사님을 모시는 기회를 자주 가지지 못하여, 그저 안타깝고 막막한 소회가 가슴을 메우고 있다.
고인은 제주도 애월에서 태어나셨고(1939년), 서울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시고, 중앙대학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영득하셨다. 이후 제약산업 기술분야인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및 연구 부문에서 크게 활약하셨는데, 국내 상위 제약기업들인 동화약품, 종근당, 한국GSK 및 보령제약에서 활동하면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고도 깊이 있는 큰 성과를 이루셨다.
특히 한국제약 기술분야의 발전과정에서 GMP제도의 도입 및 발전에 기여한 업적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고인은 우리나라 보건당국에서 GMP제도에 관심을 가지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에 선진국 보건당국인 FDA, EFTA, 영국, WHO 및 일본제약공업협회 등의 GMP 기준들을 비교 정리하여, 당시 근무하던 종근당에서 '우수의약품 제조지침(CKD GMP)'을 편집 발간하여(1973년 7월) 우수의약품 제조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며, 우리나라 보사부 및 제약기업 공장분야에 GMP를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셨다.
이후 보사부에서도 GMP제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고인에게 의뢰하여 'KGMP 초안'을 작성케 요청하였으며, 중앙약사심의의원회 GMP 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GMP인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 (보사부 예규 제373호, 1977년 3월) (KGMP의 최초명칭)이 공포되었다.
KGMP제도는 발전을 거듭하여, 약사법 시행규책 제22조의 <별표 4>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으로 규정되면서(1992년 7월), 의약품 제조업과 품목 허가요건으로 규정되었고, KGMP는 이때부터 자율권장 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식약청은 KGMP 규정에 밸리데이션 규정을 포함시키는 선진화 방침을 가지고, '21세기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KGMP 기준의 선진모델에 관한 연구'라는 용역과제를 공모했고, 백우현(보령제약 중앙연구소장) 보령제약 생산본부장이 주관연구책임자로 이 과제를 맡았다. 연구팀은 WHO-GMP, EU-GMP 및 FDA cGMP를 참고자료로 활용하여 밸리데이션은 물론 연간품질평가, 변경관리 등 새로운 개념의 규정들을 포함시켜 선진국 GMP와 대등한 수준의 GMP 모델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식약청은 이 보고서를 근간으로 하여, 15개 항으로 된 KGMP에 비해 40개 항으로 항목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항목들을 상세하게 규정한 개정 GMP를 약사법 시행규칙 [별표 2]로 공포하였다.(2008년 4월)
고인은 우리나라 제약업체들이 밸리데이션을 성공적으로 도입,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교육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GMP-제약기술에 대한 전문교육기관으로 '한국제약기술교육원'(원장 백우현)을 설립하였다. (2007년 2월) 이에 공감하여 보건복지부가 후원하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제약산업 종사자 재교육 지원사업’에서 위탁교육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KGMP 제도의 도입발전 및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의 설립과 아울러, 고인은 GMP 관련 자료집 발간에도 큰 힘을 쏟았다. 예를 들자면, 미국cGMP 해설서, 밸리데이션 해설서, 원료의약품 GMP 해설서 등 뿐만 아니라, GMP-제약기술을 망라한 '의약용어사전'까지 당신이 손수 편집하여 편찬하였다.(2011년 5월) 최근에는 이 용어사전을 디지털화하여 전자사전으로도 발간하였다.(2024년, 교보문고)
최근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성과들이 다수 출현하며, 글로벌 제약시장에 우리나라 신약기술 및 신약후보물질이 문제없이 수출하게 된 바탕에는, 국제적 수준의 GMP를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만든 고인의 공헌덕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필자는 백 박사님을 GMP분야의 거성으로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보령제약 연구소장 겸 공장장 직을 겸직하시던 고인과 연구활동을 통하여 가깝게 지낼 기회를 가지면서, 고인으로부터 삶의 모범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독자적 신약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마침 국가과학기술수준의 선진화를 위한 과기부의 '국가선도기술개발사업(일명 G7 사업 또는 HAN Projet)'에 신약연구개발분야가 포함되었다.(1991년)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을 주관기관으로 하여 이 후배가 총괄기획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당시 보령제약의 연구소장직을 겸임하시던 고인과 기획활동을 함께 할 행운을 가졌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재미 한인 제약ㆍ바이오분야 전문가들과 국내 제약연구소장 및 정부출연연구소 고위 연구원들과 함께 설립한 'Society of Biomedical Research'(SBR, 1991~2017)가 미국 Washing D.C.에서 매년 개최하던 SBR Annual Conference에 함께 참가하면서 잦은 교류기회를 가졌다. 특히 고인의 인자한 미소와 항상 모범적인 삶의 자세에 감동하여, 그때부터 후배로서 큰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그러한 귀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인자한 미소가 더욱 그리울 따름이다.
고인의 빈소 문상시 유족들과(두 아드님과 따님) 애도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고인을 닮아서 인상들이 아주 좋았다. 다시한번 유족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백우현 박사님, 이제 이승에서의 그 바빴던 일들을 모두 뒤로 던지고, 평안하게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