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종근당 원료의약품 생산시설 FDA 실사 통과시켜

고 백우현 박사
고 백우현 박사

한국제약산업 GMP 도입부터 발전까지 '인생 커리어 전체'를 우수의약품 생산위해 노력해온 백우현 박사가 20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1970년대 GMP 도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GMP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는 인물이자 50년 가까이 규정 하나 하나 다듬어 온 전문지식인으로 그를 'GMP 산증인'으로 부르는데 부족함이 없다.

미국이 1963년 GMP 관련 법을 제정 공포한 뒤 세계보건기구(WHO)가 1969년, 일본이 1974년 공포했는데, 고 백우현 박사는 종근당에 근무할 때 GMP를 만났다.

 

"1973년 종근당 서울 구로동 공장 생산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 종근당은 당시 클로람페니콜 원료항생물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해 미국 시장에 팔려고 하다보니까 GMP가 필요했어요. 공장 목표관리제도(MBO)도입을 주도하던 1973년 어느 날 윗분이 불러 갔더니 GMP 한번 연구해봐 하시는 거죠. GMP가 뭔데요?라고 물었죠. 국내 제약업계 조차 GMP와 GNP(국민총생산)를 헷갈려하던 시절인데, 회사의 오더(Order)니 안할 재간이 없었죠. 운명일까요? 조항, 규정을 쓰는 일이 적성에 맞더군요. 소질을 재발견 한 것이죠. 일본어는 자신이 있었는데 일본이 GMP 도입에 앞서 미국과 유럽에 조사단을 파견해 자료를 꼼꼼히 정리해 놓았더군요." 

2013년 7월 인터뷰에서

종근당은 결국 CKD-GMP 기준을 작성하고 사설을 개조해 클로람페니콜과 관련해 인스펙션을 받고 FDA 실사를 통과했다. 원료의약품에 관한한 '종근당 리즈시절'이기도 했다.

정부가 그를 불렀다.

"종근당 성과를 보고 정부가 부르데요. 1974년 보사부 약무제도과 품질관리계 의뢰로 KGMP 초안 작성에 참여하게 된 거죠. 사실상 제가 초안을 만들었어요. 초안은 당시 중앙약심에 올라가 항목별로 이의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하는 축조 심의를 가졌는데, 사실상 혼자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당시엔 실상 저 말고 전문가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초안은 1977년 3월 15일 보사부 장관이름으로 KGMP 기준이 공포됐습니다." 2013년 7월 인터뷰에서

제주가 고향인 고 백우현 박사는 2003년 현행 GMP 기준의 모태가 된 KGMP 선진모델연구 식약청 과제의 주관연구책임자로 일했으며, 밸리데이션(Validation)의 이론과 실제라는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2007년 국내 최초로 제약기술·GMP교육 전문기관인 '한국제약기술교육원'을 협력업체와 함께 창립하는데 참여해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듬해 국내 처음으로 제약기술·GMP 전문지인 팜텍을 창간했다. 2011년 원료의약품 GMP해설서를 발간했다. 1973년 GMP와 첫 인연을 맺은 이후 50년 넘게 'GMP의 남자'로 살았다.

그는 국제제약기술단체인 PDA 한국지사를 창립했으며, 12년 노력 끝에 3만3263개의 보건의약계 용어를 1664페이지에 담아 정리한 '종합 실용 의약용어사전(서울대 출판문화원)'도 냈다.

백우현 박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며 발인은 22일 오전 5시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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