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신약개발연구 1세대 이종욱 박사의 연구와 세렌디피티

'15소년 표류기'를 읽으며 가슴 뜨거웠던 소년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유한양행 연구원으로 걸어 들어간 이래 신약개발 연구자로 살고 있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신약 연구개발 1세대 이종욱(우정바이오 회장) 박사는 자신의 삶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연속으로 고백한다.
이 이야기는 신약연구 개발이란 꿈을 가슴에 품은 이종욱 박사의 1985년 이후 신약연구개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가 가꿔온 신약 연구개발이란 화단에서 레바넥스와 펙수클루정, 두 송이 꽃만 똑 따왔다. 편집자
① 1985년 미충족 의학적 수요는 소화기 궤양치료
② 레바프라잔과 펙수프라잔 연구, 결국 신약으로
③ 세렌디피티를 맞는 신약개발연구자들의 조건은 [끝]
"Mike Parsons 박사와 두 차례 행운의 만남 그리고 터닝포인트"
이미 언급하였듯이 필자가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약리안전성연구실장으로 재직하던 1991년에 새로운 작용기전의 가역적 위산펌프 억제 신약탐색 과제 수행을 제안하고, 연구팀을 구성하여 신약후보물질 탐색에 착수하였다.
탐색연구팀에서 신물질들을 합성하여 약리효능검색을 시작하였으며, 가장 먼저 시험관내 생화학적 효능검색 시험을 수행하기 위하여 신선한 돼지 위장을 구득하고(서울 독산동 도축장) 위벽세포막에 transmembrane enzyme으로 존재하는 H+-K+-ATPase(proton pump)를 differential centrifugation 방법으로 추출한 다음, 시험물질의 효소(프로톤 펌프) 억제 측정시험을 수행하여, 양호한 활성을 보이는 물질을 선별하고 sencondary screening 단계 시험에 진입하였다.
Secondary 효능검색 단계에서는 실험동물(rat 및 비글견)에서 in vivo 효능시험을 수행하는데, 대표적으로 lumen perfused rat model 및 Heidenhain pouch dog model이 활용된다. Perfused rat model은 문헌에 기술된 방법을 따라 하기에 크게 어렵지 않으나, Heidenhain pouch dog model은 섬세한 수술 skill이 있어야 하고 또 특수한 device도 필요하므로, 연구팀에서 이를 스스로 해결하여 숙련상태에 이르려면 적어도 1년 남짓한 기간이 소요될 듯하였다.
Heidenhain pouch dog model의 개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실험동물인 beagle dog을 마취하에 수술하여 위강을 두 개의 주머니(pouch)로 분리하고, 한 주머니에서는 식도로부터 들어오는 사료가 통과할 때 위산이 분비되어 정상적인 소화활동을 받은 다음 pylorus를 통하여 십이지장으로 이송되게 하고, 다른 한 주머니는 폐쇄상태로서 사료가 다른 주머니를 통과할 때, 폐쇄상태의 주머니에서도 위산이 분비되므로, 분비된 위산을 cannula를 통하여 체외로 배출하여 분비액의 산도와 부피를 측정함으로서, 위산분비 정도를 평가하는 동물모델이다. (그림-01 참조) 실제로 위산분비 차단효능 시험에서는 사료섭취에 의한 위산분비를 유도하지 않고, histamine solutiion을 정맥내 infusion 투여하여 위산분비를 유도하면서, 시험약물의 위산분비 억제작용을 측정한다.
① Dr. Mike Parsons와 첫번째 행운의 만남
고심 끝에 당시 SB(SmithKlein Beecham) 연구소의 소화성궤양 치료신약 연구를 지휘하던 약리학자인 Dr. Mike Parsons를 초빙하여 Heidenhain pouch dog 모델 제작에 대한 워크숍을 개최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초청서한을 우송하였다. 거의 성사되기 어려운 초청이라고 생각했지만 시험기간을 9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는 사안이라 성사 여부는 운에 맡기고 초청서신을 보내 본 것이다. 약 2주일 지나 회신을 받았는데, 뜻밖의 행운이... 우리 연구소의 워크숍 초청을 수락하겠다는 펄쩍 뛸 정도로 기쁜 소식이었다. Dr. Parsons가 1992년 9월에 입국하자마자 필자가 한 질문은 어떻게 타 제약기업 연구소에 방문하여 기술전수를 할 수 있는가? 였다. 사연은 이러하였다. SB사에서는 자사의 세계1위 블록버스터 신약이었던 히스타민-2 수용체차단 신약인 타가메트(성분 시메티딘)의 차세대 신약개발을 위하여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15년 이상의 개발기간을 투입하였으나 성공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동 프로젝트를 포기하여 연구팀을 해체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Dr. Parsons는 Hertfordshire 대학교 (런던 근교 소재)의 교수로 전직 예정이라 부담없이 워크숍 초청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Heidenhain pouch dog 모델을 제작에 사용하는 cannular 등 여러 소중한 device까지 가지고 와서 더욱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행운으로 가지게 된 수일간의 워크숍에 우리 연구원들만 참여할 경우, 섬세한 수술방법을 충분하게 전수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대한약리학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연세대 의대 약리학교실의 김경환 주임교수(소화기 약리전공)께 워크숍 참관을 요청하였는데, 마침 미국연수 시절에 Heidenhain pouch dog을 다루어 본 경험을 가진 세브란스병원 외과의 김충배 교수와 함께 참관하여 소중한 수술방법의 예기치 못한 소실을 예방할 수 있게 된 행운도 덤으로 얻었다. Dr. Mike Parsons의 워크숍 덕분에 우리 연구팀은 약 1년이 소요될 시험 숙련기간을 거의 10개월이나 단축하여 2개월에 완료하게 되었으니 행운이 넝쿨째 들어온 기분이었다.

② Professor Mike Parsons와 두 번째 만남
Professor Parsons의 워크숍 개최이후 약 6년 후에 신약후보물질인 revaprazan에 대한 임상1상시험(시험책임자 서울의대 임상약리학교실 신상구 교수)에서 우수한 위산분비 억제효능을 관찰하였고, 그동안의 연구자료를 곧 바로 정리하여 영국 런던 근교 Stevenage 소재 SB 연구소에 라이센싱 목적의 소개발표를 위하여 연구동료인 이봉용 박사(현 넥스트젠바이오 대표)와 라이센싱을 도우던 Jeffry Oh 변호사(당시 Wall Street에서 investment banker로 활동하던 오석우 교포 변호사)와 함께 3명이 방문하였다. 연구소 정문 경비실에서 방문자 출입증을 발부받기 위하여 대기하던 중, 밤색 가죽가방을 들고 버버리 코트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그리 낯설지 않은 사람이 역시 방문자 출입증을 받으려고 경비실로 들어왔다.
"낯이 익은데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며 내 소개를 하니, "와우, 내가 귀 연구소에서 워크숍 기회를 가졌던 Dr. Parsons입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여기에 웬 일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어떤 회사 연구소에서 소화성궤양치료 신약후보물질을 소개하려고 SB연구소를 방문하는데, 내가 심의위원장 자격으로 초청받아 온 겁니다" 라고 답한다. 또 이런 행운이!!! "내가 바로 그 소개를 하러 온 겁니다" 하고 함께 발표 장소로 이동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SB사는 이미 6년전에 소화성궤양 신약 연구개발을 중단하여서, 연구소 내부에는 그 분야 신약후보물질 평가를 지휘할 역량을 가진 과학자가 없었기에 대학교수로 전직한 Professor Parsons에게 심사를 부탁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과거 소화성궤양 탐색연구팀에 속하였으나, 과제 중단 이후 다른 연구팀으로 전보되었던 Dr. Sanger 등 여러 연구자들이 평가위원으로 다시모여 발표장소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심시위원들은 화학분야, 특허법률분야, biology분야(생화학, 약리, DMPK 등), 안전성평가 분야, 및 제제개발 분야 등에 걸쳐 모두 약 15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준비해 간 연구개발 경과에 대한 약 30분간의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상당히 깊은 수준의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개중에는 대답하기에 조심스러운 질문도 꽤 있었다. 영어도 그리 능숙하지 못한데다가 혹시나 말 실수로 라이센싱에 영향을 미칠까 보아 뜸을 들여가며 신중하게 대답하는 과정에서, Professor Parsons가 까다로운 질문에 대하여 오히려 필자 대신 답하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필자가 “Professor Parsons께서는 그쪽에 앉아 있지 말고, 우리쪽에 앉아서 대답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지니 모든 심사위원들이 손뼉을 치며 웃게 되었고, 분위기가 아주 우호적으로 전환되었다.
필자가 짐작하기로는, 그들이 과거에 탐색과제를 타의에 의하여 중단하였던 안타까움이 그때까지도 마음에 남아있었는데, Dr. Parsons가 방한하여 한수 가르쳐 준 연구소에서 3년여 만에 후보물질을 발굴힌 이후, 유망한 임상1상시험 결과까지 들고와서 발표하니, 자신들도 시간을 좀 더 썼으면 우수한 후보물질을 찾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모두 우리를 응원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 심사평가는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진행되어 곧 바로 scientific due diligence 일정을 잡게 되었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에서 가진 3차례(discovery/안전평가/제제개발-CMC평가)의 scientific due diligence 과정에서도 우호적 분위기가 지속되어 아무 지적사항 없이 통과하였고, 이후 BD licensing 과정에서도 양사가 예상한 미래 가치(예상 매출액 규모 등) 산정에 거의 차이가 없어서 신속하게 합의에 도달하였다.
동 신약연구개발 과제는 과기부 주도로 시행하였던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를 망라한 초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인 G7 프로젝트(일명 국가선도기술개발사업 또는 Han Project)의 '신약개발지원사업' 중 '소화성궤양 치료신약 개발과제(과제책임자 이종욱, 1992~)' 및 '국가중점기술연구개발사업' 중 '신약제품화 사업단(사업단장 이종욱, 1995~)'의 지원대상과제로 선정되어 국가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수행되었기에, 과기부 김선빈 과장(후일 과기정책국장, 과천 국립과학관장 역임)과 협의하여 과기부 출입기자단실에서 언론사들의 대대적인 취재열기를 받으며 라이센싱계약 체결행사를 가졌다.

신약연구개발 과정에서 만난 세렌디피티와 습득한 교훈
세렌디피티의 대표적 사례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이다. 과학사에서는 이러한 우연에 의한 발견 사례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발명, 뢴트겐의 X선 발견, 제너의 종두법, 그리고 케쿨레의 벤젠의 분자구조 발견 등이 대표적인 과학사적 세렌디피티의 사례이다.
세렌디피티와 관련하여 루이 파스퇴르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라고 하였다. 즉 세렌디피티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준비되고 열린 마음(prepared and open mind)'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세렌디피티를 맞이하기 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해 본다면 누구나 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아래 두가지 길을 애써 찾아보았다. 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그들로부터 가능한대로 많이 배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세상에는 정말로 배울 게 많은 데, 예상과 달리 굳이 배우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②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늦었다고, 또는 불가능하다고 예단하지 말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부딪쳐 보면 어려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세렌디피티를 더 많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얀센 연구재단의 Paul Janssen 회장은 1990년 얀센연구소에서 중추신경계 약물 탐색체계를 배우던 기간 중 면담에서 "나는 신약을 연구개발에 종사한 일생동안 수많은 세렌디피티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신약연구를 갓 시작한 귀하도 앞으로 많은 세렌디피티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오."라는 축언을 해주었다. 그 말씀 덕분에 필자는 신약연구개발 과정에서, 항상 '나는 serendipity를 많이 받고 있다'는 낙관적 자세를 가지고 살아왔고, 실제로 많은 세렌디피티를 맞이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신약개발 1세 연구자 중의 한명인 필자는 오늘, 신약을 연구개발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과학자들에게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폴 얀센 회장의 귀한 말씀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졸필을 마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