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이 인생 목표였던 김완주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 출간

"이 이야기는 내 삶의 궤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밀화학-신약-바이오벤처 개화에 관한 대서사시와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서막에 줄곧 서 있었다." One Pill, One Dream에서
기존 항생제보다 100배 이상 항균력을 지닌 2세대 퀴놀론계 항생제 KR10664를 개발해 1989년 3월22일 MBC 뉴스테스크를 장식했던 김완주 박사(당시 한국화학연구소 의약연구부장)가 최근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One Pill, One Dream... 어느 약학자의 60년"을 푸블리우스(PUBLIUS PUBLISHING)에서 출간했다.
신약개발에 관한 중요성은 높아졌지만, 신약기술 수출은 전무했던 1980년대 나왔던 이 신약 후보물질은 4년간 만든 664종의 화합물 가운데 최종 선택받은 것으로 2100만 달러(현재 기준 280억원)라는 기술료와 함께 우리 기술이 선진국에 수출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1969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약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신약개발에 매진했던 마흔 일곱의 김완주 박사는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들고 다니던 일반 상식책에 이름과 성과가 소개될만큼 국민적 스타덤에 오른 과학자였다.
"나는 신약개발을 필생의 목표로 삼은 약학자다. 82세가 된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하다"며 "신약개발은 밀어올리면 굴러 떨어지고, 또다시 밀어올리면 역시 굴러 떨어지고 마는 시시포스의 돌덩이와 같다. 다만 그것이 형벌이 아닌 사명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 김완주 박사는 작년 정호철 박사외 함께 바이오벤처 ㈜바이온리퀴드를 공동 창업했다.
'이온성 액체 약물 전달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바이온리퀴드의 창업은 60년간 신약 개발 외길만 걸어온 여든 약학자에게 "또 한번의 항해"인데, 그는 "이온성 액체를 활용한 신소재, 전해질, 바이오 촉매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및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김완주 박사와 정호철 대표는 약학을 전공한 신약개발 과학자인데 전공은 김 박사가 화학, 정 대표가 분자 생물학이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은 두 창업자는 이 책에서 대담을 했는데, 정 대표는 "존경심을 빼고도, 김 박사님은 최고의 (신약개발) 파트너"라고 칭송했다.
김완주 박사가 평생 존경한 사람은 얀센제약을 창업한 벨기에의 폴 얀센(Paul Janssen, 1926~2003) 회장과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회장(柳一韓, 1895~1971) 두 사람이다. 그는 "얀센 회장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타계하기 전까지 30년간 80여 종의 신약을 개발하며 평생을 혁신신약 개발에 바쳤다"고 책에 썼다. 또 "유일한 회장은 제대로된 근대 제약회사가 없던 시절 제약기업을 세우고 전 재산을 교육기관에 기증하는 등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제약회사를 이끌었는데 바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이라고 흠모했다.
"어느 덧 만남을 가졌던 때의 얀센 박사보다 더 노인이 되었다"는 김 박사는 "맞잡았던 그의 손에서 느껴지던 맥박은 아직도 가슴에 살아 숨쉬는 듯하다"며 "그 때나 지금이나 내 꿈은 변함없이 한국의 폴얀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완주 박사의 폴 얀센과 만남 기억
"서른 즈음 무작정 벨기에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연인을 만나러 가는 듯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얀센의 연구실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한창 몰입해 있었다. 노크를 하려다 멈칫했다. 머리가 하얀 분이 그보다 더 새하얀 가운을 입고 칠판에 글씨를 적고 있는 모습. 그의 손끝에서 끝없이 화학방정식이 이어졌다. 한참을 기다렸다. 흠모하던 상대를 한 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그 황홀한 시간,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한 느낌과 생생한 지적 자극을 동시에 받았던.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One Pill, One Dream에서
1942년 생으로 60년간 신약개발을 향해 달려온 김완주 박사의 에세이처럼 부드럽게 기술한 이야기들은 대한민국 신약개발사와 맞닿아 있다. 채영복 박사와 물질특허 이야기,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자와 만남, 한미약품 부사장 겸 한미정밀 대표이사가 된 이야기, 창업해 21년간 경영한 벤처 씨트리에 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읽힌다. 3만5000원.
나의 역할은 CCO(Chief Creative Officer)
나는 지금도 출근한다. 바이오리퀴드 역시 내가 없어도 '최초의 바이오 이온성 액체' 개발에 성공한 회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 성공으로 말미암아 다시한번 많은 것들이 이어지고, 가슴 벅찬 희망이 생기리라. 세계적인 국산 약을 내 손으로 만드는 그날까지 나는 꿈을 꿀 것이다. One Pill, One Dream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