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신약개발연구 1세대 이종욱 박사의 연구와 세렌디피티

'15소년 표류기'를 읽으며 가슴 뜨거웠던 소년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유한양행 연구원으로 걸어 들어간 이래 신약개발 연구자로 살고 있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신약 연구개발 1세대 이종욱(우정바이오 회장) 박사는 자신의 삶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연속으로 고백한다.

이 이야기는 신약연구 개발이란 꿈을 가슴에 품은 이종욱 박사의 1985년 이후 신약연구개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가 가꿔온 신약 연구개발이란 화단에서 레바넥스와 펙수클루정, 두 송이 꽃만 똑 따왔다. 편집자

① 1985년 미충족 의학적 수요는 소화기 궤양치료

신약연구개발 인생 목표의 설정 

국내 독자적인 신약개발이라는 꿈을 품고 필자가 신약연구개발을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7년 전인 1985년부터였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물질특허제도가 아닌 제법특허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기에, 해외 선진 제약기업들이 장기간 개발한 신약이라도 국내에서는 주성분의 제조방법을 달리하여 만든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의 제조, 판매가 가능하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의약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함에 따라, 구미 제약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물질특허제도를 시행하도록 통상압박을 가하였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물질특허제도를 1987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예고하면서, KIST, KRICT 등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신물질 창출 연구를 수행하며 이에 대비하기 시작하였다. 또 국내 제약기업들도 항차 제약선진국에의 기술적 예속을 벗어나려고 신물질 신약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신약개발을 목표로 삼고, 국내 제1세대 신약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내 최초 혁신신약 연구개발 성과와 행운(세렌디피티, serendipity) 

필자가 수행하기 시작한 신약탐색 과제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하나 둘씩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신약개발이라는 같은 희망을 품고 열정으로 뭉쳐 동고동락한 동료 연구개발자들과 함께 맞이한 행운(serendipity) 덕분이었다. 

특히 APA(Acid Pump Antagonist, P-CAB(Potassium Competitive Blocker와 동일한 의미) 작용기전의 가역적 위산분비 길항제이며 소화성 궤양 및 역류성식도염 치료제로서, 국내 최초의 혁신신약인 레바넥스 정(유한양행, 성분명; 레바프라잔) 및 동일기전 약물 중 best in class 신약을 목표로 개발한 펙수클루 정(대웅제약, 성분명; 펙수프라잔)을 연구개발하면서 다양한 세렌디피티를 경험하였다. 

필자에게 가장 의미가 큰 세렌디피티는 열정으로 무장하고 죽음의 계곡을 넘어 함께 성공을 경험한 양사의 신약연구개발자들과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독자적 신약개발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전폭적인 중장기투자 지원의지가 강했던 유한양행의 최고경영자(연만희 회장, 김태훈 사장, 및 김선진 사장)들과, 대웅제약의 최고경영자(故윤영환 명예회장, 윤재승 회장) 등과의 만남도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실험동물(찰스리버 랫드, 마우스 및 마샬 비글견 등)의 국내 공급사업 및 글로벌 비임상시험 위탁시험 기관(CRO)인 IRDC(후일 MPI를 거쳐 현재 Charles River Laboratories)의 agent사업에 착수하여 국내 신약연구 수행이 원활하도록 지원하여 성공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한 우정바이오의 천병년 대표와의 만남도 빼 놓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또 1980년대 후반 및 '90년대 초반에 선진 제약기업인 미국 Schering Plough 연구소(당시 연구인력 2000여 명, 2009년에 Merck & Co.,와 합병) 및 벨기에의 얀센 연구소(당시 약 1500여 명의 연구인력 보유)에서 각각 심장순환계 및 중추신경계 신약 탐색체계를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행운 등, 필요할 때마다 내게 다가왔던 행운이 상당수에 이르는데, 이들 모두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소중하게 기억하는 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차세대 신약 연구개발자들이 더욱 의미있는 세렌디피티를 경험하기를 기원한다. 

소화기 궤양 치료 및 역류성 식도염 치료약물의 진화 역사 

소화성궤양 및 역류성식도염 치료제의 진화과정에 대하여 간단하게 정리하면, 1970년대까지는 소화기 궤양을 치료할 우수한 의약품이 거의 없어서 세계적으로 많은 환자들의 증상이 위천공 상태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빈발하였다. 이 환자들은 입원과 수술치료가 불가피하여 건강과 경제적 손실이 지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건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의료비 비중 또한 상당한 수준에 달하여 social & medical unmet need가 가장 큰 신약개발 대상 분야였다. 

'7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 SK&F 연구소의 블랙 박사(Dr. James Whyte Black, 1924~2010) 팀이 혁신신약으로서 위벽세포의 히스타민-2 수용체에 대한 선택적 길항제인 시메티딘(상품 타가메트)을 발명한 덕분에 위궤양의 근본적 치료가 가능해 짐으로써 위천공 수술사례가 90% 이상 격감하게 되었다. 타가메트는 미국 FDA의 신약승인 후 약 10여 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의약품이 되었으며, 세계적으로 보건의료비의 획기적인 절감효과도 거두었다. 약리학자인 블랙 박사는 약리작용기전 기반 신약설계(mechanism based drug design) 기법을 신약탐색 과정에 처음으로 접목하여 시메티딘 뿐만 아니라, 고혈압치료에 획기적 신약으로 등장하였던 심근세포의 에피네프린(epinephrine) 베타수용체 차단제(beta-blocker)인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 상표명 인데랄)을 연구개발한 공적도 함께 인정받아 1988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스웨덴의 아스트라(현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한 로섹(Losec/Prelosec, 성분명 오메프라졸)이 1980년대 중반에 발매되어 임상에서 처방이 급증하였다. 오메프라졸은 위벽세포막에 존재하는 프로톤펌프(proton pump(acid pump)인 H+-K+-ATPase의 기능을 비가역적으로 차단하여 위산분비 억제작용을 아주 강하게 발현하는 혁신신약으로서, 타가메트나 잔탁 등의 히스타민-2 수용체 선택적 길항약물로서는 치료효능이 다소 미흡하였던 역류성식도염의 치료 신약으로 임상에서 기대가 큰 약물로 등장하였다. 오메프라졸은 잇따라 개발된 동일한 작용기전의 PPIs(proton pump inhibitors)인 판토프라졸(빅굴덴), 란소프라졸(다께다제약) 및 라베프라졸(얀센) 등과 함께 역류성식도염 치료를 위하여 아직도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다. 

비가역적 프로톤펌프 차단제는 치료가 어려웠던 역류성식도염 치료에 만족스러운 효능을 발현하였지만, 비가역적 작용기전에 기인한 단점과 부작용이 우려되었는데, 실제로 오랫동안의 처방 경험을 통하여 여러 단점과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대표적인 단점은 위벽세포(parietal cell) 막에 존재하는 프로톤펌프가 PPI계 약물과 비가역적으로 결합하면 사멸되므로, 프로톤펌프의 생합성(de novo synthesis)이 필요하고, 프로톤펌프의 사멸과 생합성 간의 평형상태(equilibrium)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소요되어, 바람직한 수준의 효능발현에 이르는 시간, 소위 drug onset time이 3일 이상 소요되는 점이다(Aliment. Pharmacol. Ther., 23 (Suppl.2), 2–8.).

또 PPI계 약물의 주 대사효소인 cytochrome P450 2C19 활성의 개체차가 크므로 환자마다 약물대사속도의 개체차(individual pharmacokinetic variation) 때문에 효능발현 차이가 큰 단점도 보고되었다(Drug Metab. Dispos., 41:1414–1424, July 2013). 또한 위산분비 차단작용이 지나치게 강하므로 무산증이 초래되어 음식물 소화에 영향을 주는 사례뿐만 아니라 유해균의 소화기내 감염사례도 보고되었다(J.Neurogastro- enterology and Motility, 2014; 20(1): 6-16), 그 외에도 장기간 복약 시 골다공증 유발에 따른 골절사례도 있으며(JAMA., 2006; 296(24): 2947-2953), 치매발병과 관련된다는 보고사례도 있다(Eur. Arch. Psychiatry Clin. Neurosci., 2015, 265(5):419-28). 

이러한 프로톤펌프를 비가역적 차단제의 잠재적 부작용 발현 가능성을 우려하여 선진 제약기업 연구소들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이미 차세대 신약으로서 가역적 프로톤펌프 길항제 개발 경쟁을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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