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HIT |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근절, 사라졌나

6살때였나. 의원에서 '딸기약'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진짜 '딸기맛'이 아니라서 실망했지만, 우쭈쭈 해주는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먹고나니 순식간에 아픔이 사라졌던 기억은 강렬하다.

'약'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약에 대한 신기함과 대단함이라는 감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약에 대한 존경스러운 감정은 자연스럽게 약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제약회사와 바이오기업으로 연결됐다. 6살 나에게 제약바이오기업이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고, 지금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 일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좀 허무하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는 직장 내 괴롭힘부터 갑질 등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렇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으며, 현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고 있다.

다만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돼 4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라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폭언부터 업무에 있어서 강압적인 분위기, 부당한 업무 지시, 인격 모독, 성희롱 등은 모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제약바이오기업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나 업계가 좁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다. 피해 당사자가 회사를 그만둔 경우부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알 수 없는 케이스가 여기에 속한다. 신뢰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자정 능력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 업계에서 전문인력 구인난이 심화됐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퍼진 사실이다. 실제로 한 대형 바이오기업은 인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인력 유인 활동을 중지해달라고 후발주자인 다른 바이오기업에 내용 증명을 발송한 바 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형 바이오기업은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지난해 11~12월 근로 감독을 실시한 곳이다. 최근 근로 감독 실시 결과가 발표됐는데,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사례가 다수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바이오기업에서 사람이란 단순 영업기밀일까. 노동자에게 직장은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할애하는 공간이다. 시대가 발전해 직업과 근무 환경도 다양해졌지만, 아직까지 직장은 개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즉 직장 내 괴롭힘은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부정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사전적 의미로 약(藥)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해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을 말한다.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만드는 약. 생명을 살리는 약을 만드는 회사가 직원의 생명줄을 줄여 가는 건 용납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만든 약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최근 국내 굴지의 대형 바이오기업에 대한 근로 감독 실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다수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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