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허들 낮고 저분자 화합물 형태, "글로벌 잠재력 갖춰"

유한양행이 고셔병 치료 후보물질을 중심으로 첫 희귀질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나서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희귀질환의 특성상 규제기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초기 임상 장벽이 낮아 신약 개발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혈뇌장벽 투과(BBB 투과)가 가능한 저분자 화합물 형태이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할 경우 '넥스트 렉라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한양행은 2015년부터 집중적인 R&D 자금 투자로 NASH,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등 다수의 후보물질을 확보한 이후 신약 개발에 몰두했다. 이는 일종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다.
내부 역량만으로는 신약 개발 경쟁에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외부에서 개발 중이거나 완성된 후보물질을 도입해 자체 파이프라인에 내재화하는 형태로 신약을 개발하는 전략이다.
국내 첫 폐암 신약 '렉라자'의 성공도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과다. 유한양행은 2015년 미국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에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을 도입하고 임상 1상을 진행하다가 존슨앤존슨 자회사 얀센에 1조 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그 이후 렉라자는 '리브리반트(성분 아미반타맙)'와 병용요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이어 유럽의약품청(EMA)에서 허가를 획득했다. 유한향행은 지금까지 마일스톤 1억 7500만달러(우리돈 2500억원)을 수령했다.
이는 유한양행이 최근 공개한 올해 2분기 IR 자료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유한양행 신약 파이프라인은 총 11종으로 대부분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들여온 물질이다.

그러나 렉라자를 제외하고 임상 3상 등 상업화 단계를 목전에 둔 후보 물질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YH14618은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기술수출해 2024년 미국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했지만 최근 임상 실패 소식이 전해졌다.
유한양행이 '제2렉라자'를 찾기 위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중대형 제약사의 한 임원은 "유한양행은 한때 20여개에 달하는 물질을 들여와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토대로 신약 개발에 집중했다"며 "그 결과 렉라자를 만들어 대한민국 신약 역사를 바꿨다. 하지만 이제는 포스트 렉라자를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업계는 유한양행 '고셔병' 치료제 파이프라인 'YH35995'을 주목한다. 'YH35995'은 유한양행이 2018년 GC녹십자로부터 기술 도입한 고셔병 치료 후보물질로 작년 3월 'YH35995'의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았는데 유한양행이 처음으로 희귀질환 치료 신약에 승부수를 걸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유한양행의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희귀질환 승부수를 던진 배경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시선이다.
국내 중대형 제약사 항암제 개발본부 관계자는 "항암제는 글로벌 빅파마의 각축이 치열하고 임상 비용이 상당히 드는 분야"라며 "각 항암제 마다 적응증을 세분화해도 이미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빅파마들의 치료제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한양행이 국내 기업 최초로 폐암 신약 역사를 개척하면서 독자적인 항암제 개발 노하우를 갖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포화 상태인 항암 시장에 모든 파이프라인을 집중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각축전에 뛰어들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국내사 개발본부 임원은 "희귀질환은 초기 임상 진입의 허들이 상대적으로 항암제보다 낮다"며 "우리나라 식약처 뿐 아니라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신속심사, 임상설계 유연성 등에 수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특히 미국은 일반적인 신약 임상에서는 두 개의 대조군 임상시험이 요구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경우 단일 임상시험(원스터디)만으로 임상을 승인하는 경우도 많다"며 "상대적으로 진입이 수월하다"고 밝혔다.
희귀질환 치료 신약에 뛰어든 배경을 묻는 질문에 유한양행 측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30일 유한양행 관계자는 "희귀의약품(Orphan Drug)으로 지정되면 임상 개발 단계에서 규제기관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며 "패스트트랙(Fast Track) 등의 지정을 통해서는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제도적 혜택은 개발 가속화 측면에서 장점을 제공하며, 비용 부담도 다소 완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RA 전문가들은 유한양행 'YH35995'이 3형 고셔병을 타깃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제약사 출신 RA 전문가는 "고셔병은 글루코세레브로시데이즈라는 효소의 유전적 결핍으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1형,2형,3형으로 나뉜다"며 "1형은 효소대체요법(ERT)으로 쓰이는 사노피 젠자임의 세레자임이라는 대표적인 치료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2형과 3형은 표준으로 자리잡은 치료제가 없는데다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돼 환자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유한양행의 후보물질은 고셔병 3형을 타깃으로 하는데 약물 특성상 신경학적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YH35995는 고셔병에서 축적되는 글루코실세라마이드(GL1)의 생성을 원천적으로 억제하는 저분자화합물이다. GCS(Glucosylceramide Synthase) 효소를 선택적으로 저해해 병의 원인인 '쓰레기 지질'인 GL1의 합성을 줄이는 기전을 갖췄다.
리소좀은 노폐물과 오래된 세포 성분을 분해하는 일종의 '청소부' 역할을 담당하는데 YH35995은 리소좀에 부담이 되는 기질 축적 자체를 줄여 병의 악화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결핍된 효소를 외부에서 보충하는 기존의 주사제(ERT)와는 기전이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도 "ERT는 결핍된 효소를 외부에서 생산해 환자에게 주입함으로써 효소 기능을 보완하는 치료법"이라며 "하지만 효소와 같은 단백질 치료제는 분자량이 크고 극성이 높아 BBB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YH35995는 효소 대비 분자량이 매우 작은 저분자 화합물 형태의 경구용 물질로 분자 물성을 정밀하게 설계하여 BBB 투과가 용이하다"며 "현재 개발 중인 경쟁 고셔병 치료제들도 BBB를 통과하도록 설계됐지만 YH35995는 전임상 연구에서 BBB 투과 효율과 효력(Potency)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임상1상에 도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회사 측 설명 대로, 사노피 역시 경구용 기질감소치료제(SRT) 고셔병 제3형 치료제 개발을 위해 글로벌 2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고셔병 3형은 BBB 투과의 가능성 자체가 중요한 분야로 유한양행이 개발에 성공할 경우 렉라자의 뒤를 이어 글로벌 무대를 정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들리고 있다.
제약사 임상연구팀 관계자는 "경쟁상대가 앞서있지만 고셔병 3형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미충족 수요가 강한 영역"이라며 "글로벌 빅마마들이 치료제 개발에 정복하지 못했다. BBB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의미에서 유한양행의 도전은 의미가 크다"며 "더구나 유한양행은 렉라자를 통해 글로벌 임상, 영업 등 수많은 노하우를 갖췄기 때문에 고셔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경우 고셔병 치료 신약을 렉라자처럼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한양행의 후보물질 YH35995는 전임상 연구에서 훨씬 우수한 BBB 투과 효율과 효력(Potency)을 확인했다"며 "경쟁물질 대비 개발 시점은 다소 늦지만 약효와 BBB 투과 특성을 기반으로 임상 단계에서 의미 있는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경형(Type 3) 고셔병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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