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 과학의 산물인 의약품, 비과학적 인간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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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이맘때 일이다. 10월 초 9호선 신목동역에서 내리자 서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계단을 올라 서울식약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무개 넘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진 브리핑실은 바깥 한기와 달리 후끈했는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매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식약처 측은 정식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환자에게는 제품의 유의성이 위험성보다 높다며 환자를 전수조사하고 모니터링하는 조건으로 폐암치료제 '올리타'의 사용을 허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업계 안팎 상황은 '엄청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9월 30일 올리타 임상 수행 과정에서 중증 피부반응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의약 전문가 및 소비자단체에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임상 중 일어나는 심각한 이상반응인 독성표피괴사용해,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이 각각 3건 일어났고 그 중 두 명이 사망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과 2015년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 이후 개발 중단 통보로 받기로 했던 총 8500억원 상당의 마일스톤 중 반환의무가 없었던 업프런트 680억원만 받았다. '베링거가 이런 상황을 알아서 계약을 해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식약처는 결국 며칠 뒤 이같은 브리핑을 열어 진화에 나섰다. 앞서 나온 유의성 관련 내용과 함께 심각한 수준의 이상반응 역시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기자들은 한미약품이 결국 이를 알면서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이어갔다. 지금처럼 제약바이오가 제품을 개발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약의 심각한 부작용은 단순 부작용이 아닌 음모론과 맞물리기 쉬운 시절이기도 했다.

결국 한미약품은 제품을 취하했다. 폐암 치료제 시장의 슈퍼스타 '타그리소'와 싸워볼 만 했던 국산 폐암 치료제는 그렇게 퇴장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당시 올리타 개발에 참여한 이와 우연히 '그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약을 두고 '부작용 문제로 빛을 보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출처=백악관 홈페이지
출처=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타이레놀 임산부 자폐 유발 가능성 발표'는 과학의 산물인 의약품이 가장 비과학적 논리와 감정에 갇히는 역설적인 순간으로 역사에 박제될 대표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타이레놀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출시 후 60년간 안전한 해열진통제로 자리매김했다. 전세계 의료계가 아세트아미노펜을 임산부의 통증 및 해열 효과 등에 1차적으로 고려한다. 수많은 메타분석들 사이에서도 아세트아미노펜은 이 때 복용할 안전한 제제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주장은 곧바로 전세계 의료계로부터 탄핵됐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라는 것이다. 발표 직후 미국 의료계 주요 인사들은 '근거를 가져오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 와중 미국 정부는 식품의약국(FDA)을 통해 경고 문서에 정부의 발표 내용을 넣는다고 밝혔고 국립보건원(NIH)에 관련 근거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피스트라 부르는 극렬 지지세력이 1989년 발표됐으나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MMR 백신 접종시 아동이 자폐가 된다'는 연구 결과를 신봉하고 있어 '타이레놀로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해당 연구자는 이미 영국 당국에서 윤리 문제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했음에도 과학적 산물인 백신을 비과학적 근거로 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리타 사례도 타이레놀 사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얼마나 비과학적 사실에 취약한지 알려주는 대표적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인과관계 없음'이라는 과학적 해명은 '신약 임상 중 사망자 발생'이라는 충격적인 헤드라인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올리타는 시장에서 철수했다. 불을 붙인 주체는 다르지만 과학적 성과가 대중의 불안과 불신이라는 비과학적 논리에 갇혀 좌절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국을 비롯해 우리 업계도 그 반응이 달랐다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의학적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면에 소개됐다. 언론도 그 주장에 '인과관계'는 보이지 않음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아주 오랜 기간 사람들이 먹어오며 알아온 '안전'이라는 가치는 아세트아미노펜에 그대로 투영됐다.

그 안에는 산업계 바깥의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한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주가방어든 혹은 또다른 문제로 키우지 않기 위한 것이든 업계는 허가 실패, 임상 실패 등을 말하고 대안이 있음을 밝힌다. 그것이 주주나 일반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최소한 우리 업계가 10년동안 이뤄온 소통의 힘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씁쓸한 올리타 사례가 내게 준 것은 '과학 앞에 선 비과학'이라는 대명제였다. 국내 첫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에서 국내 허가 취하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는 '인보사'가 그랬고, 수 번의 중앙약심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과 결과를 낳은 '조인트스템'이 그렇다. 과학적 사실과 비과학적 견해의 충돌에서 고민을 이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타이레놀 사태는 단순한 정치인의 발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학의 총아로 불리는 의약품이 대중의 비과학적 불안을 이겨내고 어떻게 신뢰를 쌓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미약품은 올리타 이후 '매출 1조 클럽'과 또다른 기술수출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또 어떤 곳은 주가로 높은 가치를 주며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비과학적 감정을 누르기 위한 제약바이오업계의 첫 단계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힘'에 달려있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우리 제약바이오업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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