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법·제도 정비 속 국내 상용화 촉진법 계류...R&D 예산도 부족

정부가 바이오헬스 육성의 일환으로 첨단재생의료 실용화를 지원하고 있지만, 과도한 규제와 소극적 투자로 진전을 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대만 등이 축적된 재생의료 실시 경험을 토대로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는 반면, 국내 입법과 투자는 지연되며 산업 성과를 더 늦출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재생의료, 유전자세포치료제 등을 포함한 첨단바이오 분야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행력을 뒷받침할 입법과 예산 투자는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 시행 및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협소한 재생의료 적용 범위와 투자 비효율이 약점으로 꼽힌다. 

 

22대 국회에서 첨생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했지만 법안 심사가 지연되며 '병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첨생법 개정안 5건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들은 발의된지 1개월에서 1년 가량 경과돼 국회 심사 절차를 모두 밟으려면 연내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치료제가 없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희귀·난치질환 관련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예산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확대 지원하도록 하는 첨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작년 12월 초 이 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올해 8월에야 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던 작년 9월,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제조 기반 확충을 골자로 한 상용화 촉진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상임위 회부 당시 부처 이견이 제기되며 후속 심사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외교통상위원회)은 세포유전자치료 중 현행법에서 제외하고 있는 인체세포 등의 정의에 '유전물질 및 핵신물질'을 추가해 임상연구를 활성화하도록 하는 첨생법 개정안을 지난 6월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범부처 차원에서 첨단재생의료 기술 개발과 임상연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의 규모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유전자가위 및 유전자교정치료제가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임상연구와 관련 사업을 효율적,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은 지역 간 첨단재생의료 접근성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첨생법 개정안을 지난 7월 발의했다. 2025년 5월 기준 보건복지부의 첨단재생의료 연구계획 적합·승인 현황에 따르면 총 45건의 연구계획 적합·승인 중 비수도권지역 의료기관의 연구계획 적합·승인은 5건에 그치고 있다. 현행법에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태조사 근거가 없는 점을 개선해, 국가가 실태조사 등을 근거로 첨단재생의료 접근성을 확보하도록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법안의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첨생법을 시행했으며, 5년 만인 올해 2월에 첨단재생의료 치료 제도 도입을 통해 임상연구 및 상용화 기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치료 제도 도입으로 그동안 희귀·난치질환에 국한했던 임상연구 대상이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고 심사·관리체계를 정비하는 등 진전이 있었으나,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재생의료진흥재단이 분석한 '국내외 첨단재생의료 법/제도 비교·고찰'에 따르면 일본은 2013년 11월, 세계 최초로 '재생의료안전법'을 제정해 전국 116개 (특정)인정 재생의료위원회를 통해 접근성을 확대해 왔고, 재생의료 실용화에 대응해 안전성을 강화하는 법 개정(2024.6.7)을 추진했다. 대만은 2018년 재생의료 특별 규정을 마련해 정부가 인증한 6개 치료기술을 환자에게 제공했으며, 작년 6월 '세포'에 국한했던 재생의료 적용 범위를 '유전자', '세포 및 그 파생물'까지 확대한 재생의료법을 별도로 제정해 정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회 심사 절차를 고려할 때 첨단생의료 및 치료제 접근성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법 개정안들이 연내 통과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최대한 내년 2월까지라도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용화와 직결된 예산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 관계자는 "내년 국가 R&D 예산안이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됐다고 하지만 인공지능(AI)에 편중돼 다른 주요 R&D 중요 예산들은 반영되지 못하거나 증액 효가가 미미하다"며 "첨단바이오특화연구나 유전자세포치료 전략사업을 위한 관계부처 예산들도 모두 좌초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년 예산안에서 범부처(복지부, 질병청, 과기부, 산업부)가 참여하는 첨단바이오 R&D 예산은 전년 대비 1164억원 증가한 2668억원으로 증액됐다. 보건복지부 R&D 통합 시행계획에 반영된 '첨단재생의료 분야 임상 진입 등 실용화 촉진' 예산도 전년 대비 155억원 증액된 733억원으로 반영됐지만, 재생의료 원천기술 개발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전주기를 지원하는 범부처 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예산은 오히려 감액됐다. 

정부는 첨단재생의료, 유전자·세포치료제, mRNA 백신 등을 포함한 첨단바이오 분야를 성장 전망이 높고 안보적 가치가 큰 '게임 체인저' 기술로 지정해 예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상용화와 직결된 예산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면서 11월 국회 증액을 발판으로 불씨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는 환자단체 관계자는 "이번 정부가 현장 중심 기조를 내세우고 있는데 일부 행정은 공급자 중심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환자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해 세포유전자치료 특성을 고려한 예산과 입법 지원이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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