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사에 '최혜국 약가' 요구 서한 발송
전문가 "법적 강제력 없어 실현 가능성 낮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제약사에 60일 내 약가를 인하하라는 요구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업계 및 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각) 화이자, 머크, 존슨앤드존슨, 암젠, GSK 등 17개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서한을 보내, 자사 약가를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이는 동일 의약품에 대해 해외 주요국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미국 내에도 동일한 수준의 약가를 적용하라는 요구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서명한 행정명령의 연장선이다. 해당 명령은 미 보건복지부(HHS)에 대해 30일 내 가격 기준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제약사들이 미국 환자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제시된 대부분의 제안은 책임 회피와 산업계 지원 요청에 불과했다"며 "이제 미국 가계에 즉각적인 가격 인하 효과를 주는 약속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업계가 응하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경고했다.
행정명령에는 HHS를 통한 약가 규제 규칙 도입, 의약품 수입 확대, 수출 통제, FDA 승인 취소 검토 등의 대응 방안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베다 파트너스의 스펜서 펄만 정책연구 디렉터는 "대통령이 제약사에 특정 가격을 강제할 법적 권한이나 규제 수단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에서의 '시범사업' 형태로 이를 시도할 가능성은 있지만, 법적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레이먼드 제임스의 크리스 미킨스 보건정책 총괄은 "대통령은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제약사에 공개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가격 인하 효과 없이 제약사들을 정치적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번 조치로 약값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제약협회(PhRMA)의 알렉스 슈라이버 수석부사장은 "외국의 가격 통제를 미국에 도입하는 것은 환자와 일자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약가 차이를 줄이려면 유통구조의 중간 마진을 조정하고, 외국 정부가 혁신적 의약품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날 관련 제약사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머크, 일라이 릴리, 암젠 등은 1.5~5%가량 주가가 떨어졌으며, S&P 제약지수도 약 3% 하락 마감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시도했던 '최혜국 약가’' 정책보다도 강도가 높다. 당시 정책은 메디케어 일부 의약품에만 적용했으나, 이번에는 메디케이드 및 상업 보험까지 포함해 신약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해외 수익을 미국 내 약가 인하에 사용하라는 요구, 그리고 특정 약물에 대해 ‘직판’ 방식으로 약가를 조정하라는 요구도 함께 제시했다.
업계는 해외 정부의 가격 통제 요구와 자국 시장 진입 조건이 이번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다른 수단으로 의약품 수입품에 대해 관세 부과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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