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제약사 수익구조 악화... 흔들리는 글로벌 스탠다드

 HIT 기획  새판짜는 미국, 질주하는 중국... K바이오 어디로 가나

① 바이오 패권 움켜쥐는 미국 "약은 미국에서"
② 생산공장? 신약강국으로 변신 중인 중국
③ 아고라 | 미중 고래싸움을 대하는 한국의 자세

[끝까지 HIT 14호] 미국과 중국이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고 주도권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제조·약가·규제 구조를 전면 개편하며 산업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기술 수출과 신약 개발을 통해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기술력, 자본, 정책지원 측면에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K-바이오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중장기적 전략 재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끝까지 HIT>는 글로벌 바이오 산업 재편의 흐름을 조망하고, 한국 산업의 현실과 전략적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며 글로벌 제약 산업은 일제 히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고 강도 높은 정책 변화가 예고됐고 불과 몇 달 만에 수입 관세 부과, 약가 인하 정책 부활, 미국 식품의약국(FDA) 구조조정이라는 세 갈래의 거대한 흐름이 실체화됐다.

FDA를 비롯한 규제기관은 심사 일정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고, 글로벌 빅파마들은 생산 거점을 미국 내로 옮기기 위한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최혜국 약가인하 정책도 발표되며, 미국 중심의 약가·제조·규제 전반에 걸친 구조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의약품의 자국 내 생산을 강력히 촉구해 왔다.

그는 올해 초 공개 석상에서 "의약품은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고 강조 하며, 제조업의 본국 회귀를 핵심 정책으로 천명했다. 이는 이전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보건·경제정책 방향으로, 의약품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는 메시지였다. 이어 4월 2일 백악관은 의약품을 포함한 광범위한 수입품에 최대 48%의 차등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행정명령으로 즉시 발효됐으며, 트럼프 대 통령은 이를 '미국의 경제적 독립 선언'으로 규정했다.

한국은 25% 고정 세율의 적용 대상국에 포함됐다. 2025년 4월 관세 조치가 공식화되자 주요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 확대에 나섰다.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향후 5년간 270억달러(약 36조7200억원)를 투자해 인디애나,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등에 4개 생산시설을 신설할 계획을 알렸다.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은 550억달러(약 74조8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에 착수했으며, 노바티스(Norvatis)도 230억달러(약 31조2800억원)를 투입해 미국 내 10개 부지에 서의 신설 및 확장을 추진 중이라 밝혔다. 

이들 세 기업만 추려도 투자 총액은 1050억달러(약 142조8000억원)에 이르며, 바이든 행정부 4년간 바이오 제조 투자 총합의 약 4.5배에 달한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를 넘어, 관세와 통상 리스크를 회피 하기 위한 전략적 재편으로 해석된다.

업계는 관세가 단기적 손익보다 중장기 공급 망 구조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공급망의 일원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 와 산업 중심의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발언에는 제조업 보호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는 의도도 반영돼 있다.

일부 제약사는 미국 내 대규모 생산 설비 이전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고환율, 설비투자비(CAPEX), 고임금 구조, cGMP 허가 등 높은 고정비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4년 단위로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최혜국 약가' 전면 도입… 글로벌 제약사 수익구조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처방약 가격을 대폭 인하하겠다는 강경한 정책 기조를 공식화하며, 이른바 '최혜국 약가 정책(Most Favored Nation's Policy, MFN)' 도입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5월 11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은 더 이상 제약회사의 '봉(sucker)'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약가를 최대 80%까지 낮추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발표 했다.

MFN 정책은 미국에서 유통되는 처방약의 가격을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 으로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약물이 유럽이나 캐나다에서는 훨씬 더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으며, 심지어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약조차 미국에 선 5배에서 10배 더 비싸다"며 "이러한 현실은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부끄러운 상 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책은 단순한 약가 조정을 넘어, 글로벌 제약사의 수익 모델과 R&D 투자 구조 전반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MFN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제안된 바 있으나, 당시 업계 반발과 법 적 제약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폐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이를 간소화된 행정명령 형태로 재추진하며 실행력을 높였다. 보건복지 부(HHS)와 산하 기관이 직접 정책 집행을 맡아 약가 개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정책의 또 다른 축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의 약가 협상 권한 확대다. CMS는 기존에는 약국 조제 의약품인 파트D에 한해 협상권을 가졌으나, 이번에는 병원 투여형 고가 주사제인 파트B까지 포함됐다. 항암제, 면역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고가 바이오의약품이 중심인 파트B는 그간 의료행위와 결합되어 있어 가격 협상이 어려웠던 영역이다. 그러나 이번 지침은 이러한 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지침을 보면 CMS는 2026년까지 파트B 또는 파트D 품목 중 최대 15개 약물에 대해 3차 협상을 진행하고, 2028년부터는 협상된 가격(MFP)을 강제 적용할 계획이다. 적용 품목은 매년 갱신되며, 적응증 확대나 경쟁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존 약물도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구조가 시행 되면 신약일수록, 고가일수록 가격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MFN 정책이 고가 신약에 대한 수익성을 심각하게 훼손 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CAR-T, 유전자치료제, 정밀항암제 등 파트B 의약품은 투여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며, 글로벌 제약사 매출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파이프라인에 해당 한다.

이들 약물의 약가가 통제되면, R&D 재투자 여력이 약화되고, 궁극적으로 혁신 유인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제약사들은 MFN 적용으로 미국 내 가격을 낮추는 대신, 타국가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검토 중 이다. 이는 글로벌 약가의 '상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MFN 정책이 단지 국내 의료비 절감에 그치지 않고 외교·무역 갈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PhRMA는 약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제약사가 아니라, 중간 유통마진을 가져가는 처방관리회사(PBM)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정책이 진정한 개혁이 되려면 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파마, MFN 정책 실효성·불확실성에 신중 대응

이 같은 강도 높은 가격 규제 정책에 대해 글로벌 제약사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내 놓았다. 화이자(Pfizer)의 앨버트 불라(Al bert Bourla) 대표는 "현 정부는 MFN 정책을 모든 신약에 적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제약산업 전체를 붕괴시키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와 해결책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무부, 무역대표부, 재무부 등과의 고위급 대화에서 '업계와의 조율 가능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도 설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보건복지부가 메디케어 약가에 MFN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행정 절차법 위반으로 무산된 바 있으며, 이번 에도 의회의 입법 추진 동력은 매우 약하다는 것이 제퍼리스(Jefferies) 애널리스트 들의 진단이다. 현재로선 메디케어·메디케이드 혁신센터(CMMI)를 통한 파일럿 프로그램이 유력한 도입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일부 약물과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선 MFN과 관세 압박이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협상 카드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머크, 릴리, BMS 등 은 최근 수년간 미국 내 대규모 투자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화이자는 "정책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확장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불라 대표는 "관세와 MFN이 병행될 경우 미국 내 추가 투자는 어렵다"며, "우리는 사업가이고, 사업가는 환경을 본다"고 말했다.

일라이 릴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루카스 몬타르체(Lucas Montarce)는 "개혁이 언제 마무리될지는 전혀 가늠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도 공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머크의 최고경영자 로버트 데이비스(Robert Davis) 역시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나,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해외 국가들과의 약가 분담 방식에 대해 정부와 협의했으나, "이런 논의가 단기적으로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릴리와 머크 측은 이번 개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규제 변경이나 정부 간 협력 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애브비(AbbVie) 역시 "약가 개혁이 합의에 도달하기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전반적으로 업계는 이번 MFN 정책이 단기간 내 실현되기보다는 복잡한 입법 절차 또는 시범사업(CMMI)을 통한 제한적 적용 등 다양한 변수가 병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기업과의 회의를 시작했지만, 현재로선 '아이디어 교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바이오업계는 MFN 정책이 약가 현실화라는 궁극적 목표와는 별개로, 미국 내 제조업 유치와 해외 시장 규제 강화라는 양면적 전략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투자 확대 또는 사업 철수 결정은 '정책의 구체성'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무너지는 FDA, 흔들리는 글로벌 스탠다드… '엑스-USA'도

제약사들이 가격 정책에 불만을 표하는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관련해서 도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보건복지 부 구조조정과 백신·유전자치료 규제 강화, 그리고 심사 체계의 디지털 전환까지, 규제기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변화가 한 꺼번에 몰아치고 있다.

미국 바이오업계는 "천천히 무너지는 재앙(slow-moving catastrophe)"이라는 우드콕 전 국장의 경고에 동조하며, '엑스-USA 전략' 등 새로 운 생존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생물의약품 평가연구센터(CBER)를 이끌던 피터 막스 (Peter Marks)의 전격 사임은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산업 전반에 중대한 불확실성을 던졌다. 특히 그가 주도해 온 가속승인 체계와 과학 기반의 유연한 규제 철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 다.

업계는 막스가 백신 정책을 둘러싼 보건복지부(HHS)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와의 갈등속에 사실상 해임 압박을 받고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직 서한에서 "진실과 투명성이 아닌, 거짓과 허위 정보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고 장관을 정면 비판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백신 안전성 홍보를 추진하던 중, 백신 음모론에 기울어 있는 현 정부로부터 거듭된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복수 외신은 그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해임될 수 있다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고 보도했다. 막스는 2016년 CBER 국장에 임명된 이후 세포·유전자 치료제 심사 체계를 전면 혁신해왔다.

노바티스(Novartis)의 '킴리아(Kymriah)', 로슈(Roche)의 '럭스터나 (Luxturna)',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의 '카스게비(Casgevy)', 이오밴스 바이오테라퓨틱스(Iovance Bio therapeutics)의 '암태그비(Amtagvi)' 등 혁신적 제품들이 그의 리더십 아래 승인되며 CGT 산업의 지평이 열렸다. 하지만 막스의 퇴진과 동시에 FDA는 대규모 감원에 직면했다.

HHS는 총 1만 명 규모의 구조 조정을 단행했고, 이 중 FDA 직원 약 3500 명이 감축 대상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사용자 수수료 협상, 정책·커뮤니케이션 부서 등 업계와의 접점 역할을 해온 부서들이 해체되면서, 초기 상담과 심사 조율 기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백신과 유전자치료 규제를 총괄해온 막스 박사의 뒤를 이은 인물은 임상시험 및 의료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지녀온 비나이 프라사드(Vinay Prasad)였다. 그는 FDA 의 가속승인 제도, 항암제 생존효과 미입증 승인, 코로나 백신 정책 등 기존 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해온 인물로, 그의 임명은 업계 전반에 우려를 낳았다.

실제로 S&P 바이오테크 ETF는 프라사드 임명 당일 하루 만에 5% 이상 하락했다. CBER은 유전자치료제,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을 심사하는 핵심 조직이다. 프라사드는 과거부터 "신약 승인 수는 줄더라도 과학적 근거는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그의 기조는 향후 규제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정치적 시각이 과학 적 판단을 앞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FDA 내부의 기능도 일부 정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심사국(CDER)을 포함한 주요 부서에서 고위 인사 다수가 이탈했고, 실제로 일부 백신과 희귀질환 치료제의 승인 일정은 지연됐다. 

GSK의 누칼라(Nucala) 적응증 확대 심사, 노바백스 (Novavax)의 코로나 백신 완전 승인, 스텔스 바이오테라퓨틱스의 유전질환 치료제 승인 등도 모두 당초 일정이 미뤄졌다. FDA는 공식적으로 조직 개편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승인팀 담당자의 이탈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은 지속되고 있다.

FDA 현장에서는 혼란이 현실로 체감되고 있다. 한 미국 바이오텍 대표는 "FDA 의 인력 감축과 승인 지연은 실제로 우리의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유럽 임상 준비에 약 100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 것"라며 "이것이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조에 역행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는 자사의 희귀질환 치료제의 초기 임상을 심사 중인 FDA 심사팀 8명 중 2명이 퇴사 한 이후, 임상 심사 지연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복지부 구조조정과 백신·유전자치료 규제 강화, 심사체계의 디지털 전환까지, 규제기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변화가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다.

FDA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인공지능 도입을 꺼내 들었다. 지난 6월부터 FDA는 생성형 AI 도구 '엘사(Elsa)'를 본격 가동하고 있다. 엘사는 문서 요약, 임상 시험 자료 검토, 안전성 보고 분석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며, 심사자의 반복 작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계됐다.

이 시스템은 6월 말까지 전면 도입될 예정이며, 향후 심사 전반에 AI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확대 될 가능성도 있다. 마카리 국장은 "예산 내에서 계획보다 앞당겨 도입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AI 도입은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지만, 사람이 빠진 자리를 기술로 메울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승인 시스템의 재정 기반인 사용자 수수료법(PDUFA) 재 승인 협상팀마저 해고되면서, 2027년까지 예정된 수수료 갱신 일정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승인 지연이 반복될 경우, FDA의 '신속심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FDA는 여전히 '골드 스탠다드'로 평가 받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과 리 더십 교체, 규제 기조의 급변이 이어진다면 미국 내 바이오산업의 주도권은 더이상 보장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유럽의약품청(EMA)과 조기 협의를 선택하거나, 호주에서 임상을 먼저 시작하려는 '엑스-USA 전략'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RA 캐피털의 파트너 피터 콜친스키(Peter Kolchinsky) 는 "최근 FDA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미국 외 지역을 먼저 선택할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 파마(ProPharma Group)의 매튜 와인버그(Matthew Weinberg)도 "유럽의약품청(EMA)와의 조기 협의에 대한 문의가 증가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건 당국 전반의 개편 흐름은 질병통 제예방센터(CDC) 산하 위원회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Robert F. Kennedy Jr.) 미국 보건복지부 (HHS) 장관은 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 원회(ACIP)의 기존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한지 이틀 만에, 새 위원 8명을 임명했다. 케네디 장관은 이번 조치가 "공공의 신뢰 회복을 우선시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ACIP는 미국 내 백신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 예방접종 일정을 권고하는 기구로, 의료기관의 백신 접종 기준 뿐 아니라 보험 적용 여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임명된 위원 중 다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의 공중보건 조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들로, 백신 회의론적 시각을 가진 인물들도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사협회(AMA) 회장 바비 무카말라 박사는 성명을 통해 이번 인선 과정의 투명성과 전문성 부족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ACIP는 수십 년 동안 미국 의료진이 백신 접종 권고를 내리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며, "백신 전문가로 구성된 기존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한 것 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미국 국민 모두가 백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즉각 항소… "정당한 국가 대응 무시한 판결"

행정부의 전방위적 개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법부에서는 이를 견제하는 판단이 나왔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연방 국제무역법원(U.S. Court of International Trade)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비상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 cy Economic Powers Act, IEEPA)'을 근거로 주요 무역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수입 관세를 부과한 조치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위법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중 하나로 추진됐던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의 법적 정당성에 처음으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 연방 법원의 판단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보복성 관세 명령은 IEEPA가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다"며, "대통령은 이 법률을 근거로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명령들은 국가안보 또는 외교 정책에 대한 구체적 위협과 직접적으로 관 련돼 있지 않으며, 법적 근거 역시 불충분 하다"고 판단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법으로, 대통령 이 '국가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경우 외국과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테러자금 동결, 제재 조치, 특정 국가와의 금융 거래 제한 등에 활용돼 왔으며, 관세 부과에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번 판결은 해당 법이 세율 결정 방식과 같은 통상 정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첫 사법적 판단이다. 이번 소송은 초당적 비영리 법률단체 리버티 저스티스 센터(Liberty Justice Center)가 미국 중소 수입업체 다섯 곳을 대리해 제기한 것으로, 원고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인해 중대한 무역 손실을 입었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을 직접 겨냥한 첫 연방 소송이며, 이 외에도 현재 미국 내 13개 주와 중소기업 단체들이 제기한 유사 소송 6건이 계류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국가적 무역 위기'를 선포하며 중국, 유럽연합, 한 국, 멕시코, 캐나다 등 주요 무역국 전반에 대해 전면적인 수입 관세 조치를 발표 했다. 최고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가 포함된 이 조치는 국내 제조업 부활, 재정 적 자 축소, 전략적 독립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개입에 대응해 사법부는 이를 견제하는 판단을 내놨다.

그는 외국 정부가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협 상의 수단으로 관세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통해 법원은 헌법 상 외국과의 통상 권한은 의회가 보유하며, 대통령의 비상경제 권한은 이를 대체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세율을 결정하거나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판결 직후 백악관은 항소 방침을 공식화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백악관 대변인 쿠 쉬 데사이(Kush Desai)는 성명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뒤처지게 하며, 국가 안보의 기반인 국방 산업까지 위협하는 국가적 비상사태"라며 "법원도 이러한 사실 자체는 부인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경제적 위협에 대한 정당한 국가 대응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4월 관세 조치 발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변동을 겪었으 며, 일부 조치는 외국 정부와의 협상 과정 에서 철회되거나 완화된 바 있다. 유럽연 합과의 협상 일정 역시 연기되거나 조건 조정이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외교 협상의 주요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이 법적 제약에 직면하면서, 향후 경제 및 통상 정책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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