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의 CLUE|
제자리 걸음 중인 신약의 혁신가치 반영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자스타프라잔 성분의 자큐보정이 2024년 4월 24일 허가되면서 위식도역류질환 분야의 새 트렌드인 P-CAB(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 국내 시장은 국산신약들이 두터운 아성을 쌓으며 독주하는 모양새가 됐다. 위식도역류질환 분야 2세대 약물인 PPI의 단점을 개선했다는 P-CAB 제제는 일본의 글로벌 제약회사 다케다제약이 2015년 내놓은 보노프라잔 성분의 보신티정이 첫 장을 열었지만 HK이노엔의 테고프라잔(케이캡정), 대웅제약의 펙수프라잔(펙수클루정),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스타프라잔(자큐보정)이 연이어 허가되면서 글로벌 2, 3, 5번째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을 모두 대한민국 제약회사가 5년여 짧은 기간 안에 내놓는 생소한 광경이 연출됐다. 게다가 국산신약이라는 상징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시장 성과를 HK이노엔, 대웅제약 등 선발 P-CAB 주자들이 국내외에서 보여줬다는 점은 더욱 고무적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의 50%를 이미 P-CAB으로 채웠고, 글로벌 수출 계약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2022년 아이큐비아 데이터를 기준으로 위식도역류질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1조원에 달한다니, 제약강국(製藥强國)의 단초 중 하나를 전 세계 5개 중 3개를 보유한 대한민국 P-CAB이 열지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 본다.

1999년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에서 시작된 국산신약의 역사는 25년만인 2024년 P-CAB 자큐보정을 37번째로 내놓았다. 하지만 국산신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성과를 국내외에서 내놓은 품목은 △렉라자정(폐암/유한양행) △카나브정(고혈압/보령) △제미글로정(당뇨/LG화학) △듀비에정(당뇨/종근당) 등 일부에 그친다. 개발도 어렵지만 허가 이후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발 빠른 개발과 시장성이라는 신약 생존의 절대 조건에 비교적 가깝게 다가선 P-CAB 현상은 그래서 정책적으로 세심하게 관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결실은 정책 덕에 태어나기도, 정책 때문에 죽기도 한다. 부가 염을 바꿔 제네릭 보다 먼저 오리지널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으로 2000년 초 돌풍을 일으킨 한국형 개량신약 전략은 2008년 허가 및 약가 산정에 대한 법률적 규정이 명문화되면서 양적,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2008년 이전 연 평균 4.2개 허가됐던 개량신약은 2009~2022년 사이 9.6개로 2.3배 이상 늘었다. 정책의 방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개량신약이 이럴진대, 신약 개발의 성과와 정책적 지원의 연관 관계는 두 말할 필요 조차 없는 절실하고 명징한 과제이다.
제약바이오의 변방, 대한민국에서 신약을 화두로 고군분투 중인 신약 개발 기업들은 작년 12월 정부가 내놓은 ‘신약의 혁신가치 반영 및 보건 안보를 위한 약가제도 개선 방안’에 환호했다. 신약 개발 기업들의 혁신 성장 노력에 대한 제도적 보상 안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성에 대한 기대감인 셈이다. 특히 시판허가 단계에 근접한 신약 파이프라인 보유 기업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발표한 개선 방안은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 약가 우대 △국내개발 신약 수출지원을 위한 가격산정 방식 개선 △국산 원료 사용시 약가 가산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을 뒷받침할 구체적 실행 로드맵인 고시 등 후속 절차는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게다가 주무부서장인 보험약제과장까지 최근 보건복지부 하반기 정기인사로 교체되면서 ‘혁신-보상’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당장 2024년 허가된 유일한 국산신약 자스타프라잔(자큐보정)이 약가산정 절차 중이지만, 현행 규정 하에서는 동일 계열 3번째 주자의 신분으로 협상 절차를 마무리할 우려가 있다. 국내개발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정책은 P-CAB 첫 주자인 테고프라잔(케이캡정) 이후 국제 통상 시비 우려로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펙수프라잔(펙수클루정)에 이어 자스타프라잔(자큐보정)까지 우산 없이 빗길로 내모는 것은 혁신-보상이나 지속가능 생태계 등 이미 내놓은 정책의 큰 그림을 정부 스스로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 세계 P-CAB 5개 중 3개가 국산신약이라는, 흔히 않은 기회 앞에서 팔은 당연히 안으로 굽어야 한다. 작년 12월 발표된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행정예고 작업을 복지부가 현재 밟고 있다는 소식은 늦었지만 반갑다. 기업이 피땀으로 내놓은 혁신 성과를 두고 왜 벌써 나왔냐고 타박할 수는 없지 않은가. 12월의 청사진이 옳았다면, 다사다망(多事多忙) 중에도 후속 로드맵의 속도를 높이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련기사
- 한국산 세 번째 P-CAB 베일 벗었다… 온코닉 '자큐보' 허가
- 혁신가치 반영 약가제도 고시 임박했나... 제약계, 기대감 커져
- 특허분쟁 안 끝났는데... X제약사, 1200억 '케이캡' 제네릭 허가신청
- Generic Approval for $88mn K-CAB Sought Amid Patent Disputes
- 사업 목적에 '연구 개발업' 추가한 제약사들의 R&D 현황보니
- 제일약품, 국산 37호 신약 자큐보 본격 마케팅 활동
- Great & Global 이뤘다, 유한 렉라자 국산 항암제 첫 미국 허가
- 자큐보, 글로벌 상용화 '순항'…美 소화기 학술지에 임상결과 게재
- 하나둘 경쟁자 사라지는 항궤양주사, P-CAB도 관심
- 미국 FDA 문턱 넘은 국내 최초 항암제, 렉라자2 언제 나와요?
- P-CAB 3번째 국산신약 '자큐보', 이번주 약평위 상정 예상
- Ja Q Bo Nears Global Market: Clinical Results Published in U.S. Journal
- P-CAB 제네릭 많아질까? 후발업체들 염변경 카드 만지작
- P-CAB 3파전 만들 '자큐보', 제일약품-동아ST 연합전선 구축
- "의약품 수출 발목잡는 가중평균가, 정답은 '이중약가제' 도입"
- 국산 37호 신약 자큐보, 멕시코에 기술수출 계약 체결
- 펙수클루 4쌍둥이 4분기 PVA 모니터링 대상 선정
- 제일약품 자큐보 출시 '고생 끝, 매출 시작' 기대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