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사업 분야·투자 회수 움직임에 불었던 소문 가능성
업계선 '특수한 업계 상황 및 회사 장악력 강화 방안 등 선결과제 산적

최근 국내 대형 의약품 유통업체 지오영 인수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스위스계 의약품 유통사 쥴릭파마가 인수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오영 측도 '사실무근'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의약품 유통업계 역시 '신빙성이 없다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오영을 인수하기까지 인수 주체(지오영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 업체)가 풀어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일 쥴릭파마코리아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이른바 지오영 인수설에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일부 언론 등을 통해 쥴릭파마 본사가 블랙스톤이 보유하고 있는 지오영 지분을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 지 수 일 만의 일이다. 이같은 소문의 배경에는 쥴릭파마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위스계 유통 및 임상 의약품 물류회사로 지오영과 사업 분야가 동일한 데다 최근 들어 지오영을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매출 3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유통업계 1위 업체인 지오영의 지배구조는 '조선혜지와이홀딩스(지오영 지분 99.17% 보유)→지오영→지오영 네트워크(대전지오영 등 지오영 자회사 19곳)'으로 구성돼 있다. 지오영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조선혜지와이홀딩스는 지오영 공동 창업주인 조선혜 회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조선혜 회장의 조선혜지와이홀딩스 지분은 실제 65만주, 약 21.99%에 불과하다. 211여만주를 보유해 71.25%의 지분율을 가진 'SHC Golden L.P'가 최대주주다. 지오영의 또 다른 공동 창업주인 이희구 회장도 6.7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조선혜지와이홀딩스는 비록 조선혜 회장의 이름을 땄지만 업계 내에서는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블랙스톤 그룹 매니지먼트 LLC(Blackstone Group Management LLC)'가 최상위 지배기업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오영그룹 지배구조는 '블랙스톤 측→조선혜지와이홀딩스→지오영→지오영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런 가운데 지오영그룹이 지난 6월 국내 유통업계 매출 2위 업체인 백제약품의 지분 25%를 사들이기로 결정한 데 이어 7월에는 블랙스톤이 지오영의 매각을 위해 주요 자문사에 주관사 선정 입찰 제안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누가 과연 지오영을 인수할 지 관심이 쏠렸었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 지오영 매각 규모를 1조8000억~2조원 수준으로 바라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블랙스톤이 홍콩계 사모펀드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보유한 지오영 지분 46%를 인수할 당시 이 회사 지분 100%의 평가가치를 1조원에 육박했다. 그만큼 덩치가 컸기 때문에 당시 국내사 중에서는 함부로 인수전에 뛰어들 만한 회사가 없었다.
올해 들어 지오영의 인수설이 잇따라 제기된 가운데 소리는 요란했지만 쥴릭파마 측이 공식적으로 인수설에 대해 사실 무근 의사를 밝히며 다시 지오영 인수 관련 건은 수면 아래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빙성은 있는데, 가능성이 낮아요"
업계가 보는 지오영 인수 위한 조건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지오영 인수설이 실제 사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이는 지오영 인수를 추진하려는 업체가 넘어야 할 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첫 번째는 국내 의약품 유통업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에서 나온다.
업계의 말을 모아보면 국내 의약품 유통구조가 해외의 유통구조와 다른 점은 이해당사자와의 관계성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드럭스토어나 체인 약국이 있는 아시아 혹은 북미권 국가와는 달리 약국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영세할 뿐만 아니라 약가 인하 기전이 강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국내 의약품 유통업계가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약품을 취급하는 드럭스토어나 체인 약국 등의 경우 물량을 선점하고 이를 협상하는 식으로 제약사와 드럭스토어 등의 가교 역할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과정이 여의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차원에서 이른바 선진 물류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어도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선례만 보더라도 과거 '복산나이스'가 2016년 일본 유수의 의약품 유통사인 '스즈켄'으로부터 52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선진 물류를 도입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이를 적용하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이번 인수설의 주인공인 쥴릭파마 역시 2014년 업계에서 이름 높던 유통사 '경동사'를 인수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만큼 해외의 시스템이 도입돼도 한국에서는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만약 해당 회사가 사업을 위해 지오영을 인수한 뒤에도 지오영 내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오영을 필두로 한 지오영의 2022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오영이 투자한 회사 중 100% 지분을 보유한 곳 △지오영네트웍스 △호남지오영 △대전지오영 △영남지오영 △로뎀유통 △크레소티 등이다.
반면 △강원지오영(지분율 60%) △케어캠프(86.49%) △제주지오영(43.00%) △지오엠디코리아(40.00%) △팜페이몰(65.72%) △사이프러스(55.73%) △사이프러스 광주(55.73%) △사이프러스 천안(55.73%) △엔에스스마트(81.00%) △듀켐바이오(52.94%) △지오영경동(50.61%) 등은 지오영이 100% 지분을 가지지 못한 회사들이다.
그나마 의약품 유통 외 타 기업의 경우 지오영의 '관리'가 가능하지만, 일부 지역 의약품 유통업체의 경우 중앙화된 체계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오랜 시간동안 흘러나왔다. 특히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 역시 지오영의 입김을 100% 받지는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는 지오영 나름의 '업계 존중'이라는 인수 콘셉트와도 관련이 있다.
지역명이 붙은 지오영의 경우 지오영이 과거 해당 지역 내 맹주라고 불리는 회사(지역 유통업체)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사례들이다. 100%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대전지오영만 해도 지역에서 깊게 뿌리를 박은 '대동약품'을 인수한 사례다. 물론 대표는 조선혜 회장이지만 인수 초기에는 당시 송호준 대표가 경영을 맡았던 사례가 있다. 지오영은 지역 내에서 서울의 입김이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경영을 안정화시키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그만큼 지역명이 붙은 지오영 회사들은 지오영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부 구성원들이 꾸준히 주가 돼 운영됐던 만큼 유통업체의 집중도가 세지는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그룹의 입김이 100% 반영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인수 기업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오영그룹은 중앙화와 지역화 사이의 경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기회는 있지만 지오영의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인수자의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는 부분이다. 실제 지오영의 경우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률이 2% 수준에 그친다. 낮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줄이고 혁신을 도모해야 하는데, 국내 유통업계 정서상 쉽지 않을 뿐더러 변화의 속도 역시 급격하게 맞출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업계 일각에서는 지오영 인수와 관련해 '바람을 넣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부터 대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면서 투자 5년차를 맞은 블랙스톤이 조금씩 투자금을 빼기 위한 기업공개(IPO) 수순을 위한 밑작업을 그리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한 의약품 유통업계 관계자는 "쥴릭파마의 지오영 인수는 신빙성은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단순 엑시트가 아닌 사업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