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곧이곧대로 [5]
레지던트의 월초 골수검사, 백혈병 환자는 왜, 꺼리나
백혈병·혈액암 환자는 확진을 위해 골수검사가 필수적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골수검사 받는 환자가 고함을 지르며 통증을 호소하는 장면을 보고 나면 누구나 골수검사에 대한 공포가 생긴다. 그런데 동네의원에서 백혈병·혈액암이 의심되어 상급종합병원에서 골수검사를 받는 환자 중에서 실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는 경우는 10번 중 2~3번에 불과하다. 다수의 환자는 참을만하다는 반응이다.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골수검사 하는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환자가 겪는 통증이 다르기 때문이다.
백혈병·혈액암 환자는 월초 1일~3일 사이 골수검사 받는 것을 꺼린다. 월초 1일에 1년차 레지던트의 수련 진료과가 바뀌기 때문이다. 혈액(종양)내과 1년차 레지던트는 월초 1일~3일까지는 골수검사 경험이 없거나 적어서 환자는 미숙련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다. 1년차 레지던트가 첫 번째 골수검사에 실패하더라도 전문의가 곧바로 와서 골수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1년차 레지던트가 하거나 연차가 조금 더 높은 레지던트가 와서 두 번째 골수검사를 한다. 이때에도 실패하면 전문의가 와서 골수검사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이전보다 더 높은 연차의 레지던트가 오는 경우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강력히 항의하면 그때야 전문의가 와서 순식간에 골수검사를 끝낸다.
자신도 모르게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대상이 된 환자들
환자는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최상의 검사와 치료를 기대하고 상급종합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만나는 상당수의 의사가 임상 경험이 많은 배테랑 전문의가 아닌 ‘주치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레지던트 전공의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백혈병·혈액암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대부분의 의료행위는 전문의가 아닌 ‘인턴’와 ‘레지던트’로 불리는 ‘전공의’가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급종합병원은 모두 수련병원인데, 여기서는 환자를 대상으로 전공의가 직접 치료도 하고 수련도 받는 것이다. 환자는 치료받고 있는 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인지 알지도 못했고, 전공의의 수련 대상이 되겠다고 동의한 적도 없다. 환자는 전문의가 검사와 치료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더 많은 의료비를 지불하고 상급종합병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은 해당 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수련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전문의에게 치료받아야 하는 의료비’를 지불하고 숙련도가 덜한 전공의에게 치료받는 결과가 되고, 자신의 병든 몸을 전공의를 더 우수한 전문의가 되도록 수련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병원과 전공의는 수련의 대상이 된 환자에게 제약사가 임상시험할 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알권리와 프라이버시권·선택권은 보장해야 한다.

수련 대상이 된 환자들이 전공의 수련에 동의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수련병원을 찾은 환자가 전공의 수련에 진정성 있게 동의하고 참여하게 만들려면 첫째, 수련병원 “정문에 큼지막하게 수련병원이라는 간판이나 표지판을 세워“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수련이 이루어지는 장소 중에서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중요한 진료실, 검사실, 수술실 등의 “출입구에는 현재 전공의 수련이 이루어지고 있고, 환자는 전공의 수련 대상이 될 수 있고, 수련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의료진에게 알려 달라는 안내문을 게시해” 놓아야 한다. 셋째, 수련 대상이 되는 “환자가 전문의 혼자서 의료행위를 받을 때보다 전공의와 지도전문의가 함께 참여할 때 더 안전하고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환자는 우수한 의사 인력 양성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동의하고 비용을 더 지불하면서도 자기 몸을 전공의의 수련 대상으로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 249개 수련병원 중에서 “해당 병원이 수련병원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거나 수련 대상인 “환자의 알권리와 프라이버시권·선택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수련병원은 거의 없다.
중증질환 환자들의 눈에 비친 불쌍한 전공의, 불안한 전공의, 불통 전공의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전공의법 시행 이전에는 중증질환 환자나 간병하는 보호자에게 강하게 인식된 전공의의 3가지 모습이 있다. ⑴ 잠이 늘 부족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담당 교수에게 호되게 혼나는 불쌍한 전공의 모습, ⑵ 수련 과정에 있어서 검사·시술 등이 아직은 미숙해 중증질환 환자를 종종 불안하게 만드는 전공의 모습, ⑶ 중증질환 환자가 수술·항암치료·이식을 받을 때 주치의인 전공의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대답하는 소통이 잘 안 되는 전공의 모습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불쌍한, 불안한, 불통의 전공의가 아니라 안심되고 믿을 수 있고 소통이 잘 되는 전공의가 되기를 원했고, 지금도 원한다. 전공의는 수련병원 직원이 아니라 교육생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에 집중하기를 환자와 보호자는 누구보다 더 원한다. 그것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도 좋기 때문이다.
전공의의 근무환경 개선과 권리 보호를 견인한 전공의법
전공의의 권리를 보호하고 환자안전과 우수한 의료인력의 양성을 위해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내용으로 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이 제정되어 2016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주당 수련시간이 80시간을 넘지 않게 되었고, 36시간 이상 초과 수련이 금지되고, 응급실 수련은 1회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되었고, 야간 당직도 주당 3회를 초과할 수 없고, 주당 평균 1회 이상 유급휴일을 부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전공의의 절대적 근무시간이 줄어들어 과도한 근무 피로로 인한 의료사고 우려는 감소했다. 전공의의 수련 및 지도·감독 과정에서 전공의에 대한 폭행·폭언·성희롱·성폭력 등을 예방하고 발생한 경우 신속한 처리와 피해 전공의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전공의의 권리 보호도 대폭 증진되었다. 환자 입장에서도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숙련도가 더 좋은 전문의에게 치료받을 기회가 많아졌고, 전공의의 피로감으로 인한 환자안전사고 발생 위험도 줄어들었다.
전공의법 시행 5년이 남긴 숙제
전공의법 시행의 부작용도 있다. 이전에 전공의가 감당했던 빈자리를 펠로우와 교수가 대신 메우게 되면서 이들의 업무 과중과 피로로 인한 의료사고 위험은 오히려 증가했다. 정부는 수련병원에서의 전공의 의료공백을 ‘입원전담전문의’ 신설을 통해 보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16년 9월부터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을 시행해 2021년 1월부터 본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현재 입원전담전문의 지원자가 적어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법 시행이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 피로로 인한 환자안전사고는 감소하였을지 모르나 입원전담전문의 미정착, 펠로우와 교수의 업무 피로로 인한 환자안전사고 발생 우려는 오히려 증가시켰을지 모른다. 이처럼 전공의법 시행이 ‘환자안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전공의법 총 19개 조항 중에서 ‘환자안전’ 관련한 내용은 거의 없다. 따라서 제1조(목적)에 규정된 ‘환자안전’ 문구는 삭제하거나 전공의법 개정을 통해 ‘환자안전’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만큼 강력한 우군이 없다.
2023년 전국 249개 수련병원에서는 인턴 3,258명, 레지던트 3,465명 총 6,723명 전공의가 새롭게 수련을 시작한다. 올해에도 ‘대한전공의협의회’ 중심으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수련비용 지원 요구를 정부에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공의가 좋은 수련을 받고 싶은 만큼 환자도 좋은 치료를 받고 싶다. 그렇다면 수련병원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수련비용 지원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수련 대상이 된 환자가 비 수련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도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전공의들이 더 많이 관심 가져 주기를 바란다.
의료현장에서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것에 있어서 ‘환자’만큼 강력한 우군(友軍)이 없다. 환자는 의료현장에서 전공의가 그동안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생생한 목격자다. 환자는 전공의가 수련병원 근무자가 아니라 양질의 수련을 받아 우수한 전문의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응원자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우수한 전문의가 미래의 우리 환자의 생명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