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곧이곧대로 [8]
환자-중계 플랫폼 사이에 놓인 비대면 진료 법제화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의료법상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 간에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는 2003년 3월부터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는 현재까지도 의료법상 법적 근거가 없어서 허용되지 않고 있다.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후 대유행 상황으로 악화하자 정부는 2020년 2월 24일부터 법적 근거 없이 한시적 비대면 전화 상담 및 처방을 허용했다. 감염병 위기 단계가 심각 단계 이상일 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감염병예방법 규정은 이로부터 10개월이 지난 2020년 12월 15일 신설되었다.

오는 5월경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감염병 위기 단계를 하향할 것으로 예상되고,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증장애인 등과 같이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의료서비스 접근권의 심각한 제한과 이용 불편을 겪을 것이다. 지난 3년 이상 비대면 진료를 받았던 거동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 3년 이전처럼 대면진료를 강제하며 환자와 가족에게 고통과 불편을 주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다.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 허용 여부를 놓고 의료계·시민단체·노동단체와 정부·산업계는 의료 영리화, 오진 위험,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의 쟁점을 놓고 지난 10년 이상 격한 찬반 논쟁과 갈등을 이어왔다. 그런 가운데 비대면 진료 관련해 여러 쟁점이 해소되지 않았고 법적 근거도 미약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유행 직격탄을 맞았고, 정부는 2020년 2월 24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2020년 2월 24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2만 5697개 의료기관에서 1379만 명의 환자가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국민 4명 중 1명이 비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의 허용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제는 의사가 비대면 진료를 어떻게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잘 활용할 것인지와 부작용이나 예상되는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비대면 진료 허용을 위한 네 개의 의료법 개정안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최혜영·신현영 의원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네 건의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들이 병합되어 심사받고 있다. 네 개의 법안 내용을 비교하면 “대상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강병원 의원은 “관찰, 상담 등의 원격 모니터링”만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신현영 의원은 “진단 및 처방까지 포함”하고, 최혜영·이종성 의원은 “진단 및 처방에 교육까지 포함”하고 있다. “대상 의료기관”은 강병원·신현영 의원은 병원급을 제외한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최혜영·이종성 의원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면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허용”하고 있다. 강병원·최혜영·신현영·이종성 의원 모두 초진은 불허하고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 강병원 의원은 대면 진료의 보조적 방법으로 규정했고, 최혜영·이종성 의원은 대면(對面) 진료 원칙을 명시했고, 신현영 의원은 비대면 의료만 하는 의료기관으로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최혜영 의원은 비대면 진료 허용 비율을 제한하고 있다. 신현영 의원은 비대면 의료를 “대면 진료와 동일하게 보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강병원·최혜영·이종성 의원은 “고혈압·당뇨·부정맥 등, 섬·벽지(僻地) 등, 국외 거주자, 장애인, 교정시설 수용자, 현역 복무자 등, 대리수령자에 의한 처방전 수령이 가능한 환자,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 등” 일정한 요건에 해당할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강병원·최혜영·신현영·이종성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네 건의 의료법 개정안들은 지난 3년 이상의 한시적 비대면 진료 경험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수준의 입법내용이다. 다만, 환자단체는 그동안 비대면 진료 대상 관련해 “도서·산간·벽지 등과 같이 지리적 의료취약지 환자와 중증장애인 등과 같이 신체적으로 거동이 매우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환자가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반복적인 처방을 받는 환자와 수술·항암치료·이식 등 치료가 종료되어 정기적으로 추적관찰을 하거나 검사 결과의 단순 통보가 필요한 중증질환 환자도 비대면 진료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나 이는 시범사업이나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를 통해 그 결과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와 동일하게 보편적으로 허용”하는 신현영 의원의 법안에 찬성하기 힘들다. 대상 의료행위를 “진단 및 처방을 빼고 관찰, 상담 등의 원격 모니터링”만으로 제한한 강병원 의원의 법안도 찬성할 수 없다. 최혜영·이종성 의원 법안과 같이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그 대상을 점차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안이다.

재외국민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진행하고 있는 의료진. 
재외국민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진행하고 있는 의료진. 

국회 상임위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표류

지난 3월 21일 개최된 제1법안심사소위에서는 오는 5월로 예상되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 종료가 현실화하면 그동안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관련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관련 산업계의 상황보다는 비대면 진료가 국내 보건의료 체계 전반에 미칠 큰 변화, 의료 영리화에 대한 사회적 우려, 의료계가 요구하는 높은 비대면 진료 수가의 적절성 여부, 비대면 진료 허용에 따른 후속 논란인 약사법상 약 배송 허용 여부 등 여러 쟁점으로 법안심사소위 여당·야당 거의 대다수 위원이 신중론 의견을 제시해 보류 결정이 났다.

이번 법안심사소위에서 보류 결정이 난 주요 원인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 관련해 여러 쟁점에 대해 정부가 위원들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의 눈에도 정부가 "환자를 위해서"라기보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 종료로 피해가 예상되는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산업계를 위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의료기관이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을 이용해 비대면 진료를 할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나 질병정보가 유출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보호 장치가 있고 2022년 7월 18일 보건복지부가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도 마련해 발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산업계가 과잉진료를 유도하거나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정부의 추가적인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환자 관점에서 추진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보장보다 산업 육성에 치중해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뼈아픈 역사적 경험이 있다. 정부는 사회적 논란이 없는 "도서·산간·벽지 등의 거주자나 중증장애인 등과 같은 거동 불가능자로 대상 범위를 제한해 우선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법제화부터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전 정부들은 산업 육성 차원에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와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까지 대상으로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고집하다가 결국 지난 10년 이상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입법 공백 상태에 놓이게 했다.

제1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네 건의 법안은 모두 '초진'을 비대면 진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도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산업계에서는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실을 상대로 '초진'을 대상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행태는 의료 영리화를 부추긴다는 비판과 함께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수가가 대면 진료의 1.5배~2배가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회는 비대면 진료 대상에서의 초진 포함 여부, 대면 진료보다 높은 의료수가 문제, 약 배송 허용 여부 등에 대한 논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이후로 미루고 지금은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국회는 산업계·의료계·약사계의 이해가 아니라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신속하게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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