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편집인의 "제약바이오, 사람이 전부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_랜선(LAN線) 인터뷰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5>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에게 작년 11월 글로벌 한국인, 랜선 인터뷰 제안을 이메일로 보냈다. 고 대표를 인터뷰이로 추천한 김호원 박사에게 확인을 요청한 이후 한참을 잊고 있었다. 메일 홍수로 수신이 늦었다는 고 대표와 인터뷰는 해가 바뀌고 서야 속도가 났다. 그러다 국산신약 31호 렉라자정(레이저티닙) 허가 소식이 들려왔다. 아! 업계 말로 그가 '레이저티닙의 아버지’'아닌가. 히트뉴스에 그를 불러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보스턴 시간 새벽 4시 30분, 수정 원고와 추가 질문을 메일로 보내고 혹시 몰라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넣어 버렸다. "잠에서 깨지 않기를 기원한다"는 양해를 붙여. 그런데… 곧바로 카톡이 울렸다. '고요한 새벽에 도도히 앉아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고 대표로부터.
안녕하세요? 대표님! 축하부터 드릴게요. 제노스코가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신약 레이저티닙이 국내에서 시판허가를 받았어요. 국산신약 31호 렉라자정으로요.
"고통받는 폐암환자 분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점에서 과학자로서 매우 기쁘고 감사할 일이라 생각해요. 이번 렉라자 허가로 신약개발이 아이디어 경제라는 점을 작은 인원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 신약개발은 단계별로 전문 집단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친구 하나 없는 추운 보스턴에 와서 어려울 때마다 격려해 준 아내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어 특히 기뻐요."

레이저티닙은 2016년 유한양행, 2018년 얀센에 기술수출되며 화제를 모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한국 허가로 신약개발 성공의 1차 관문을 넘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지요?
"맞아요. 한국 허가는 레이저티닙이 부작용은 줄이면서 환자를 잘 치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또 최종 관문인 미국 FDA 허가를 위해 진행 중인 글로벌 3상 임상 참여자나 주관자들에게 긍정적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어요."
다음 관문은 미국 FDA 잖아요? 물론 파트너사들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FDA 허가를 위한 향후 일정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요?
"병용투여 글로벌 3상 임상이 현재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 초 열린 JP Morgan에서 J&J CEO와 CFO가 J&J 파이프라인 중 매우 기대가 큰 스텔라(Stellar) 제품이라며 레이저티닙에 대해 기대감을 표현했어요. 2020년 ESMO(유럽종양학회) 발표와 같은 엄청난 효과가 지속적으로 나오면 조기에 FDA 허가를 받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 같습니다."
FDA 허가까지 잘 마무리돼서 레이저티닙이 대한민국 글로벌 신약 1호가 되기를 기원 할게요.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기원하면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신약개발이라는 과제는 한 개인이나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동안 제약바이오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 정부와 연구자들 그리고 기업가들의 노력이 한 데 모여 만들어낸 토양 위에서만 그 결실이 가능하다고 봐요. 대한민국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글로벌 신약 1호의 자리에 레이저티닙이 설 수 있도록 더 힘을 내겠습니다."
2008년 10월에 한국화학연구원(KRICT)을 그만두고 미국 보스턴으로 가셨어요. 그로부터 10년여이 지나 레이저티닙이라는 굵직한 성과를 내셨고요, 나에게 맞는 DNA를 살리기 위해 미국으로 가셨다고 하셨는데, 미국이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대표님이 말씀하신 DNA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저의 신약개발 DNA는 속도, 실행력, 전문가 의견(deep science)에 바탕을 둔 data driven decision(근거 기반 의사결정)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람을 모으는 DNA입니다. Korean American Bio-industry Council, KABIC(http://www.kabic.org)를 만들어 전문가 그룹이 모여 토론하고 보스턴 지역 학교 과학자들에게 신약개발 교육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이러니 미국 보스턴은 제 DNA에 안성맞춤이지요. 보스턴은 제노스코의 시약장이고 관련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반경 5마일의 아름다운 화단이에요."

대표님은 한국 신약개발의 1세대 그룹이잖아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본 우리 신약개발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세요.
"한국의 생명과학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독창적 과학을 바탕으로 용기 있는 창업이 늘어난 것도 좋은 흐름이고요. 다만, 상품화 단계까지 생각하는 경영전략 보완은 반드시 필요해요. 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경영전략에 대한 보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기술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이죠. 여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어요. 문제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상품화되지 않으면 산업의 지속적 성장이 여려운 것이지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조기 상품화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한국바이오텍은 기술 개발자인 교수가 CEO를 맡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미국의 경우 교수는 연구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신약 산업화 경험이 있는 CEO를 따로 영입하거든요. 기술과 경영이 양 날개로 함께 가야, 지금의 좋은 흐름을 더 발전시킬 수 있어요."
신약개발 측면에서 산업화라고 한다면 임상 3상이라는 한계에,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부딪힐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라이선스 아웃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거고요.
"인적자원(역량)이나 자본 측면에서 현실적 한계는 물론 있어요. 글로벌 3상을 할 역량과 자본이 부족하니 라이선스 아웃에 매달리게 되고 직접 3상에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거지요. 신약은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역량과 자본이 동시에 요구 되니까요. 그렇다고 한계에 갖혀 있을 수 만은 없잖아요. 기술과 경영전략 모두를 강조한 것은 그런 뜻이에요. 이 만큼 왔으면 이제 관점, 접근방법을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에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자본이 있는 대기업이 글로벌 인재를 영입해 3상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미국의 바이오텍은 시장에서 큰 자금을 모아 인재를 영입하고 글로벌 3상을 진행하는데, 이와 유사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신약개발에 있어 대기업의 역할은 우리 환경에서 매우 중요해요. 대기업들이 전략적 판단으로 이 분야 집중을 결정한다면 글로벌 신약을 직접 3상하는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요? 우리 바이오텍들이 신약개발에 뛰어든지 20여년이 되어가는데 흑자를 내거나 글로벌 신약을 낸 기업은 잘 보이지 않아요. K-바이오의 지속 성장을 위해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페이스북 보다 앞섰던 싸이월드의 지금을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하시고 1981년에 럭키중앙연구소로 가셨어요. 지금의 LG화학이죠? 신약개발 측면에서 LG의 기여는 참 대단했는데요. 지금은 삼성, SK 등 대기업들도 제약바이오를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무척 희망적이네요.
"혁신가인 최남석 전 LG화학 연구원장님과 같이 일하고 싶어서 입사했어요. LG는 신약개발 측면에서 훌륭한 인재 사관학교였지요. LG로서는 아쉽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창조적 파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약개발의 본질인 혁신적 생각, 열정, 격의 없는 토론문화, Data driven decision 프로세스, 상업화를 거기서 배웠거든요. 솔직히 바이오는 재벌기업의 문화와는 잘 맞지 않는 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전자, 기계 같은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요. 제약바이오에 일찍 뛰어든 LG화학, SK케미칼, CJ가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으니까요.
전통 제약기업으로 우리나라 1위였던 동아제약의 현재를 보면 패러다임을 바꿔 혁신하기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어요. LG, 삼성, SK 같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유한양행 등 전통 제약사들도 글로벌 마인드, 오픈이노베이션에 눈 뜨고 과감히 투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입니다."
렉라자(레이저티닙) 허가로 국산신약 타이틀을 2개째 갖게 되셨어요. LG 시절 개발한 당뇨치료제 제미글로(19호)에 이어서요. 신약개발에 처음부터 뜻을 두셨나요?
"제가 강원도 원주(호저면) 출신이에요. 부모님께서는 교육자가 되길 원하셨는데, 제가 워낙 화학을 좋아해서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마치고 바로 카이스트에 진학했어요. 심상철 교수님 랩(lab)에서 미국암학회(NCI) 프로젝트를 접했는데, 그 때 신약개발에 대한 꿈을 갖게 됐지요. 제 인생에 제일 귀인입니다. 여담이지만 대학 때 학과회장도 했고 운동광이기도 했어요. 부모님 뜻이라도 선생님에는 솔직히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신약개발 하면 굉장히 정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표님이 운동광이라고 하니 좀 의외인데요. 어떤 운동을 즐겨 하시나요.
"운동은 오히려 과학자들에게 필수에요. 저는 많은 과학자분들에게 운동을 권유하고 있어요. 특히 단체운동이 좋아요. 운동을 통해 이기는 법과 지고 난 후의 자세, 협력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인생이잖아요.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축구는 윙, 농구 포인트가드, 테니스, 계주는 마지막 주자까지 두루두루 즐깁니다. 체육대회 때마다 입이 부르틀 정도에요. ㅎㅎ."

신약개발 연구자로서, 제네스코 경영자로서 대표님 만의 인생 설계를 듣고 싶어요.
"레이저티닙의 FDA 허가로 폐암환자들이 새 치료 기회를 갖는 것, 레이저티닙을 개발한 제네스코가 이를 기반으로 상장(IPO)에 성공하는 것, IPO로 확보한 자금이 제 2의 레이저티닙 개발로 선순환되도록 노력하는 것, 이런 일들에 헌신한 과학자로 남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저의 3번째 신약은 제노스코 화단에서 활짝 피게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입니다.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로서는 신약개발 20년이 되는 2028년에는 제네스코가 글로벌 신약으로 매출을 올리는 명실상부한 흑자기업이 되도록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과학자이자 경영자로서 대표님이 눈여겨보는 한국의 바이오텍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요.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기대되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이유를 말씀 드리자면 김용주 대표님의 훌륭한 경영철학, 신약에 대한 열망, 개방성과 인내력, 지분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 연구 실패를 용인하는 열린 자세, CEO와 CFO의 호흡 등등 입니다. 회사의 지속성장을 가능하게 해줄 스텔라(stellar) 프로젝트를 선정해 주도적으로 개발하여 글로벌 신약으로 허가받아 장착한다면 금상첨화라는 판단이고요."
언제쯤 일지는 모르겠지만 은퇴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오실 생각인가요?
"그래요. 현업에서 은퇴하면 한국에 돌아와 다문화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려고 해요. 부모님 묘소가 있는 제 고향에는 다문화 가정이 많아요. 앞으로 더 늘어나지 않겠어요? 이 분들이 차별 받지 않고 우리 사회에 좋은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미국에서 약사로 일하는 제 딸도 결국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거잖아요. 미국에서의 이런 경험들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물론 신약개발 분야에서 제가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해야지요."
글로벌 한국인 랜선 인터뷰를 렉라자(레이저티닙) 허가에 맞춰 진행하게 된 건 저나 히트뉴스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행운이에요. 이런 식의 랜선 인터뷰는 처음이셨을텐데, 어색하지 않으셨나요? 우리 독자분들께 좋은 말씀, 끝으로 부탁드릴게요.
"좋은 일은 연이어 찾아오나 봅니다. 레이저티닙 허가에 맞춰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독자분들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저도 뜻 깊었어요. K-바이오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모든 분들께 이런 말씀을 꼭 남기고 싶어요. 심청사달(心淸事達), 마음이 맑아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저의 좌우명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신약개발에 있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data driven decision) 아닐까요? 다른 부차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되어야 해요. 그래야 성공률도 높이고 매몰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환자를 위해 오늘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 생각 만으로도 우리의 일은 보람되고 즐거울 겁니다."

고종성 대표가 추천하는 Next Interviewee는?
노바티스에서 근무하는 성무제 박사를 추천합니다. 15년이상 노바티스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노바티스 근무중에 CDK4/6를 연구하여 FDA허가를 받는 업적을 내셨지요. KASBP 및 KABIC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서 이 곳 대학생, 포스닥, 바이오텍 연구자들의 connection에도 헌신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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