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편집인의 "제약바이오, 사람이 전부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_랜선(LAN線) 인터뷰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3> 전지현 박사 (미국 NIH 임상시험센터, Manager)

얼핏 살펴봐도 외길을 걷는 천생(天生) 연구자는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센터(CC)에서 임상시험약 통제(control)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전지현 박사.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시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터전을 옮긴 전 박사는 의료기기 인허가 담당과 제약회사 마케터를 거쳐 병원임상약사에 도전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 5년 안에 또 다른 도전을 하겠다는 전 박사를 랜선으로 만났다.
이력을 살펴보면서 전 박사님은 도전과 변화에 익숙하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회사원에서 병원약사, 병원약사에서 NIH로. 생활터전도 한국, 일본, 미국 등 다양해요.
"아버지께서 무역업을 하셨어요. X세대인 탓도 있고요. 남들과 다르게 살고싶다 이런 생각이 컸어요. 약대를 갔지만 랩(lab) 생활은 맞지 않았어요. 연구는 내 길이 아니다. 다양하게, 다르게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MBA를 했고 TÜV PRODUCT SERVICE 라고 독일계 일본지사에서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로 회사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일본지사로 옮겨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지원 부서에서, 한국 지사에서는 영업, BD(사업개발)를 거쳐 미국 오기 직전까지 당뇨치료제인 아반디아 PM을 했어요."
일본과 미국 생활을 하셨다니 어학능력이 궁금해지네요. 조기유학이 쉬웠던 시절도 아니고요.
"대학 입학 즈음 미국 영어연수, 해외 배낭여행 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영어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요. 연수를 하면서 내 영어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부터 집중적으로 했던거 같아요. 일본국제대학 MBA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데 30여개 국에서 온 친구들과 공부하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에 노출됐어요.일본어 공부도 꾸준히 했는데 졸업할 때는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받았어요. 외국계 회사지만 아무래도 일본에 있는 기업이다 보니 직장동료들과 주로 일본어로 이야기했어요.”
병원임상약사를 거쳐 NIH 임상시험센터에서 임상시험약을 통제하는 부서 매니저가 되셨네요. 랩(lab)에서 나온 결과물들을 인큐베이팅(incubating)하는 일로 보면 되겠지요? 랩과 시장을 잇는 중간과정 중 하나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NIH는 세계 최대 바이오메디칼 연구기관이에요. 제가 일하는 Clinical Center는 임상연구전문병원인데 200개의 입원병동과 15개의 외래병동, 1300명의 의사 연구원과 850명의 간호사, 750명의 약사 등 헬스케어 전문가들이 근무합니다. 저는 이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연구의 시험약 전반에 걸친 매니지먼트를 통해 임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실제 임상시험약 전반에 걸친 관리를 하는 부서를 책임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백신 임상시험 관련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어요."
제약회사 생활을 접고 미국에서 병원(임상)약사로 변신했어요. 이력을 보니 2007년부터 1년간 병원에서 한 약사 인턴십이 시작이네요.
"처음 미국에 정착한 지역에는 제약회사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약사로서 전문성을 살리고 싶었는데, 당시는 임상약사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약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임상약사로 커뮤니티 종합병원에서 근무했어요. 이후 한국, 일본에서의 제약 경험과 약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병원에서 2012년부터 임상연구약사(clinical research pharmacist)가 됐어요. NIH에는 2017년에 왔고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약사의 역할은 도미(渡美) 당시만 해도 국내 환경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 자체로도 도전이라 할 수 있겠네요. NIH가 있는 메릴랜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한국사위로 잘 알려진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때문이겠지요?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모범사례로 알려지기도 했고 한국산 진단키트를 메릴랜드주가 도입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오기도 했는데, 솔직히 한국인으로 흐믓하고 자랑스운 감정이 생겼어요. 한국의 바이오텍들도 기초연구부터 전략적 마케팅까지 꾸준한 투자활동을 통해 블록버스터 신약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K-제약바이오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어떤가요? 물론 국내 계실 때에 비하면 비약적 발전이겠지요?
“맞아요. 제가 한국에서 제약회사를 다닐때만 해도 시장규모가 5~6조에 불과했던 기억이 있어요. 단순숫자로도 이제는 20조를 넘어섰으니 확실히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약개발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제약바이오에 대한 정부, 산학, 국민적 관심도 대단하고요. 다만, 이런 관심이 일시적이지 않으려면 10년 넘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비즈니즈의 특성을 사회가 정확히 이해하고 신약개발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가 반드시 자리잡아야 합니다. 또 임상시험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기업들의 윤리경영이 함께 발전되어야 성장의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신약개발의 사회적 환경 측면에서 한국과 글로벌의 핵심적 차이는 무엇인가요?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초연구에 장기전략을 세우고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요. 2019년 NIH 예산 45조 중 80% 이상을 외부연구(extramural research)에 배정해 5만개 정도의 보조금(grant)을 지원했어요. 그리고 10% 정도를 내부연구(intramural research)에 배정하는데 이 예산을 바탕으로 기초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임상으로 발전 가능한 아이템은 우리 센터에서 임상을 통해 확인하고 이를 외부 기업 등으로 이전하는 상용화 트랙을 밟습니다. 이런 인프라와 시스템에 벤처캐피털리스트, 글로벌제약사 등 다양한 인적자원이 결합하면서 '신약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 제공된다고 생각해요.
한국도 자본과 우수인력이 결합할 수 있는 이런 정책적 환경, 시스템을 정착시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글로벌에서 활동하는 고급인력과 이들의 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캘리포니아, 보스톤, 메릴랜드 등 미국 내 바이오클러스터에 진출하는 한국 바이오텍들이 늘어나는데 이런 점은 고무적이에요. 이곳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협력한다면 짧은 신약개발 경험을 상쇄할 수 있겠지요."
한국만의 장점이라고 꼽을 요소가 있을까요?
"전통적 방식의 신약개발 프로세스로만 보면 오랜 시간과 인내,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기업이 같은 방식의 경쟁만 고집 한다면, 특히 투자의 규모 면에서 어려울 수 밖에 없겠지요. 시간이 곧 돈인 기업 입장에서 임상기간을 줄이고 승인시기를 앞당기는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한국의 발전된 IT와 AI 기술이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미국으로 건너간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앞으로의 목표, 한국에서 활동하실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여러 생각이 들어요. 미국에 와서도 현장에서 임상약학교수 자격으로 여러 약학대학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임상시험 약사로서 그 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한국의 후배약사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해요. 또 한편으로는 NIH 등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과 미국의 바이오텍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구상하는 바람도 있어요. 특히 임상개발의 혁신 프로세스, 임상시험약의 유통 등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어요. 개인적 목표는 어쨌든 5년 안에는 또 한번 도전해야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전지현 박사가 추천하는 Next Interviewee?
"NIH NCATS(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 중개과학 전진을 위한 국립센터)에서 근무하시는 진학송 박사님을 히트뉴스에서 뵙고 싶어요. 진 박사님은 NIH에서 20년 이상 근무하셨는데, 랩에서 발굴한 물질을 임상 단계로 끌어올리는 인큐베이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인큐베이터 눈에 비친 K-제약바이오의 숨은 잠재력을 독자들에게 귀뜸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