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편집인의 "제약바이오, 사람이 전부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_랜선(LAN線) 인터뷰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6> 진학송 박사 (미국 NIH 산하 NCATS 치료제개발부문 팀장)

소탈하다. 진학송 박사의 랜선 인터뷰를 최종 평가하라면 여러 말 필요없이 이렇게 답할 생각이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는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메일이 쌓이고 카카오톡 대화가 늘어날수록, 그는 더 깊은 내공의 증거들을 내보였다. 나는 그 증거들을 따라 그가 살아온 삶의 길을 숏컷으로 내지르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진학송 박사님!! NIH 임상시험센터 전지현 박사님 아시죠? 히트뉴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 랜선 인터뷰 다음 주자로 진 박사님을 추천하셨어요. 자신 보다 신약개발 쪽에 더 가까운 분이라면서.
"진 박사님께서 다음 인터뷰이로 추천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인터뷰할 만한 사람인지 사실 고민했어요. 하지만 저를 포함한 NACATS 구성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어요."
NIH는 익숙한데, NCATS는 낯설어요. 제가 무지한거죠?
"아닙니다. 같은 NIH 내에서도 저희 산하기관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히트뉴스 독자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드릴게요. NIH, 미국 국립보건원은 총 27개의 Institutes와 Center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27ICs라고 부르는데 모든 IC가 전문 질병별로 구분되어 있어요. 반면, 제가 속한 NCATS(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는 모든 질병을 관할하고 정부 주도로 신약을 개발해요. NIH 산하지만 독특한 기관이라 할 수 있어요. 대학이나 스타트업들의 연구개발 과제들이 FDA 허들을 넘지 못하고 전임상 단계에서 수없이 좌절 하잖아요. 죽음의 계곡(death of valley)인 거지요. 이런 연구개발 과제들이 임상에 진입할 수 있도록 비용과 인력을 모두 지원해요."
진 박사님은 NCATS 어떤 부서에서 일하시나요?
"NCATS는 임상개발부와 전임상개발부로 나뉘는데 저는 전임상개발부의 치료제 개발부문 (Therapeutic Development Branch) 팀장으로 근무해요. 전임상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제제화영역인데, 동물실험을 끝낸 후보물질을 임상시험에 쓸 수 있는 제형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이에요. NIH 2만명 직원 중 6000명이 박사인데, 제제화 전문가는 3~4명 밖에 없어요."
제제는 신약개발 과정 뿐만 아니라 시장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NIH의 관점은 조금 다른 건가요?
"관점이 다르다기 보다 인지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제화를 연구하는 곳은 약대 안에만 있다 보니 의대나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과학자들에게 좀 생소하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약대를 가셨어요.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선교가 꿈이어서 의대를 지원했는데, 2지망으로 넣은 약대가 제 장래가 되었어요. 당시 알고 지내던 여자친구가 미국 이민 가면 약대 갈 거라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2지망으로 약대를 썼어요. 서울약대 약학과에 1982년 들어가서 1988년 석사까지 했는데, 김낙두 교수님 지도로 약리학실에서 공부했어요."

석사 마치고 사회 첫 발을 동아제약 연구소에서 시작하셨어요.
"제약 쪽에 도전하겠다는 식의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간 건 아니에요. 병역특례로 동아제약 연구소에 들어갔고 거기서 PDE3 inhibitor에 대해 연구했어요. 1년 근무지만 이때 신약개발의 맛을 봤던 것 같아요."
신약개발의 맛이라는 게 어떤 맛일까요?
"약을 이렇게 개발하는구나 하는 경험인거죠. 심장약 개발이라 실험용 개 두 마리를 대상으로 매주 한 차례씩 실험을 했는데, 관상동맥에 카눌라(cannula)를 꽂는 2시간 실험 동안 정말 아드레날린이 넘쳤어요. 이때 실험한 후보물질을 다음단계로 넘길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귀중한 추억이었고요. 개를 워낙 좋아해서 그게 힘들긴 했지만요."
연구소에 함께 근무하셨던 분들 중 기억에 남는 분들이 계신가요?
"지금은 동아ST죠? 김원배 전 부회장님, 김순회 전 부사장님, 신약개발지원센터(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지원재단)로 가신 손문호 센터장님이 저를 참 잘 지도해 주셨어요."
미국은 왜 가신거에요?
"아내가 미국 시민권자에요. 박사학위도 하고 이곳에서 살려고 왔어요. 가정 경제를 꾸려야 되니 처음엔 약사의 길을 갔지요. 메릴랜드주에 있는 Doctor’s community Hospital 약사보조원을 거쳐 Johns Hopkins 병원약국 약사로 일했어요. 이때 임상지식을 많이 접하면서 PharmD 과정을 Creighton University에서 시작했고, NIH 약국에서 소아과 암병동과 소아HIV 환자에게 임상약을 투여하는 임상약사의 길을 걷게 됐어요."
미국에서 임상약사로 방향을 잡은 것이 결국 신약개발 분야에 깊이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면 되겠네요.
"맞아요. NIH 소속 병원인 Clinical Center는 100% 임상시험 대상 환자만 받아요. 700개 넘는 임상시험 프로토콜과 500개 넘는 1~3상 실험약들을 직접 투여하고 모니터해요. 미국의 크고 작은 제약회사에서부터 의과대학에서 개발한 신약들까지 마음껏 시험하는 최대, 최고의 무대입니다. 그 한 가운데에서 일하면서 최종 승인 받은 신약이 시장에 나가는 경험을 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앞서 인터뷰하신 전지현 박사께서도 잘 설명해 주신 부분이기도 해요."
보내주신 약력을 보고 제일 눈길을 끈 부분은 NIH에서 임상약 제조책임자로 10년 넘게 일하신거에요. 미국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소아환자가 암 때문에 다리를 자르는 이런 광경을 임상약사로 있으면서 계속 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NIH 약국 내 임상시험약 제조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부서는 매우 독특한 기능을 해요. NIH 연구자들이 개발한 약들을 가지고 와서 formulation 하고 manufacturing 해서 FDA 승인 후 환자들에게 투여해요. 신약개발을 약국이 주도하는 거지요. 11년 근무하면서 1000개 넘는 배치(batch)를 생산했고 100개 넘는 formulation을 개발했어요. 이중 1건은 미국과 유럽에서 특허도 받았습니다. 주사, 액제, 연고 등 경구제 빼고 모든 제제를 경험했어요."

신약개발 프로세스 중 formulation, manufacturing에 10년간 푹 빠졌다, 이렇게 표현해도 되겠어요. 그러다 앞에서도 친절히 설명해주신 NCATS로 가셨어요.
"2015년에 NIH약국에 문제가 생겨 제조실 문을 닫게 됐어요. 말씀 처럼 제약에 이미 맛을 들였는데, 일반약사로 돌아갈 동기가 부족했지요. 이때 NCATS에서 formulation 인력을 급히 찾는다는 연락을 받아서 이직을 했어요. 옮기고 보니 신약개발 관점에서 더 의미 있는 곳이더군요."
신약개발에서 NCATS가 더 의미있다는 말의 뜻을 좀 더 자세히 부탁드려요.
"NIH에서 신약개발에 올인하는 유일한 기관이에요. 약 8만개의 compound library, 전 세계 두 곳 밖에 없는 high throughput screening machine 등 왠만한 글로벌 제약회사 보다 신약개발 능력이 더 앞서 있는 매우 이상적 환경입니다. COVID-19 치료 후보물질 10여개를 단시간에 스크린해서 찾아내기도 했어요. 근무 인력이 150여명 밖에 안되는 소규모 신생기관이지만 늘 다른 기관들을 자문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무튼 NCATS에 와서 임상시험 전체 과정을 한 눈에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너무 늦게 배우게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진 박사님께 NCATS가 준 감동이 굉장히 컸나 봅니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이 있나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든 부서가 토론한다는 거에요. 예전에는 물에 안녹는 물질을 물에 녹일 수 있게 하면 제형화에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인체 흡수와 독성 문제를 함께 검토하고 필요하면 medicinal chemist나 process chemist가 더 바람직한 제제를 만드는 기초작업에 참여해요. 반대로 새로 만들어진 물질로 약리시험을 다시 하기도 하지요. 물론 제약회사에서는 늘상 이렇게 하겠지만 NIH 에서는 보기 드문 환경이거든요."
신약개발이 협업의 예술이라는 거네요. 한국의 신약개발 플레이어들이 새겨들어야 할 팁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신약개발은 한 기업이나 기관의 힘 만으로 진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사업이에요. 서로의 전문분야를 이해하고 상호 협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독성학자, 화학자, 약리학자, 약물동력학자 등이 모두 모여 후보물질의 서로 다른 면을 같이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신약개발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있는 한인 과학자들이 이런 모임을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거죠. 좀 더 나가면 정부(financial support)와 기업(regulatory and practical support), 대학(intellectual support on new therapeutics)이 같이 힘을 모아야 신약개발을 위한 사회적 기반이 더 다져진다고 봅니다."
갑자기 궁금해지는게 있는데요, 수 없이 많은 후보물질을 formulation하고 manufacturing하셨잖아요? 그 중 성공해서 시판된 신약이 있나요?
"20년 넘게 임상약을 만들어 줬던 cystaran이라는 안약이 있어요. 결국 FDA 승인을 받고 시스틴축적병(cystinosis)이라는 희귀질환치료제로 출시됐어요. 이 약이 없으면 환자들은 3일 안에 실명합니다. 곧 시판될 걸로 보이는 멘케스증후군(menkes disease)에 쓰는 copper injection도 마찬가지로 희귀약인데 저희가 만들어 공급했어요. 제가 개발한 것도 있는데 겸상세포질환(sickle cell disease)에 바르는 sodium nitite 연고입니다. 항염, 진통, 감염예방 등 효과가 있어 현재 2상 중인데 당뇨병 상처(wound) 쪽으로 용도를 넓힐 생각이에요."
NACTS에서의 목표가 궁금해요. 은퇴는 언제쯤으로 생각하세요?
"은퇴는 7년 정도 남았어요. NACTS가 신약개발에 막대한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formulation을 전문적으로 하는 랩(lab)은 아직 없어서 항상 외부 CMO에 의존합니다. 이번에 우리 부서에서 formulation lab을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2년 안에 이 랩을 완성하는게 목표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NIH 내 임상 후보물질에 대한 모든 개발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3D 조직을 이용한 전임상 제제 실험과 3D 프린터를 활용한 임상 제제 플랫폼 개발도 기획하고 있고요. 희귀질환이 무려 7000종이나 있다는 거 아세요?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시기를 앞당기는데 기여하는게 저희들 목표입니다."

박사님 말씀을 듣다 보면 NACTS가 신약개발 연구자들에게 참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한국인(계) 과학자들은 얼마나 되나요?
"한인 박사님들이 7분 정도 계세요. 모두 젊고 유능하지요. 이곳에 근무하면서 신약개발 전 과정을 배운다면, 어떤 제약바이오 기업에 가더라도 영향력 있는 과학자로 일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NIH나 NCATS에 도전하는 별도의 방법이 있나요?
"NIH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요. 박사 과정 후 연수 과정으로 도전할 수도 있고 학계나 산업체에서 visiting fellow로 연수올 수도 있습니다. 몇년 전 일본의 정부 관계자가 저희 NCATS에 와 연수를 받은 후 일본 내에서 translational science center를 오픈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정부와 학계, 민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NIH나 NCATS의 신약개발 지원 시스템을 보면 한국의 신약개발자들이 매우 부러워할 것 같아요. 한국이 꼭 벤치마킹할 1순위 과제로 어떤 게 있을까요?
"미국 정부처럼 산학을 연결하는 공익적 신약개발의 기반이 마련되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새로운 후보물질이 있으면 충분한 심사를 거쳐 NIH나 FDA 신약개발 지원금을 받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희귀질환 분야에선 특히 가능성이 있어요."
온라인으로 주고 받는 랜선 인터뷰라는 컨셉이 익숙하지 않으셨을텐데, 친절히 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울 오실 기회가 있으면 오프라인에서도 뵙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예, 저도 신선한 경험이었고 한국에서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좋은 기회였어요. 히트뉴스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진학송 박사가 추천하는 Next Interviewee?
"테라이뮨 창업자인 김용찬 박사님을 히트뉴스에 뵙고 싶어요. 김 박사님은 NIH와 국방부 산하 의과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조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본인의 연구성과를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테라이뮨을 창업해 이끌고 있습니다. 산학을 모두 경험하고 계신 김박사님으로부터 제약바이오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