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강의 절반 이름 올려, '전직 고위 관료' 입김 작용 의혹
제약계 "다수 고위직 공무원 강사 출강은 전례 찾기 어려워"

전직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이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 약학교육연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현직 간부급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해서 강의를 계획하던 중 일부 인력을 뒤늦게 교체하는 등 소동이 일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약대 약학교육연수원은 지난 8월 7일 '바이오헬스 규제과학 아카데미'라는 주제의 강좌를 안내하고 수강신청을 받았다. 산업계 재직자를 대상으로 인당 150만원을 받고 9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규제과학 관련 전문가들이 강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강의 시작 이후 총 14개 주제 강의 절반에 달하는 강좌에 현직 식약처 과장 등 고위 간부들이 강사로 나선 점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공적 교육이 아닌 수강료를 받고 진행하는 민간 강의에 식약처 고위 관료들이 대거 강사로 활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 과장들이 '의약품 시판 후 안전 관리', '품질 자료 평가' 등에 관한 설명을 하는 것은 업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업계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과장급 고위 간부들이 대거 나서서 민간 기관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정 민간기관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시행하는 교육 과정에 다수의 고위직 공무원이 강사로 출강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4일 히트뉴스는 취재 과정에서 서울대 약학교육연수원은 이같은 논란을 인지하고 뒤늦게 식약처 강사 인력을 전부 교체한 점을 확인했다.
서울대 약학교육연수원 관계자는 "식약처 과장과 연구관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전부 교체했다"며 "강좌 시작 이후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교체 사실을 안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식약처 간부들이 평일 낮 시간에 민간 교육기관의 강사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 식약처 전직 고위 관료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식약처 전직 공무원은 "식약처 고위 공무원들이 사전에 문제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강사직을 수락한 것은 전직 고위 관료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14개 중 7개 주제 강의에 식약처 고위 간부들이 대거 이름을 올려 민간 교육 기관의 홍보에 동원된 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히트뉴스 취재 결과, 서경원 서울대 약학교육연수원 부원장이 이번 강좌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을 끝으로 동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이후 최근 서울대 약학교육연수원에 합류했다. 서 원장이 일종의 '전관'을 이용해 식약처 간부들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고위 간부들이 한꺼번에 강사로 나서는 것이 공적 영역의 연수 교육 등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라면 문제될 것은 없다"며 "그러나 이번에 식약처 간부들은 민간 기관의 강사로 대거 나서서 특정 교육기관의 홍보와 수익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례는 전직 고위 관료의 인맥과 네트워크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많은 인원, 그것도 식약처 고위직들이 대거 강사로 나선 점은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사례다. 때문에 기관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강사들을 교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경원 부원장은 관련 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서 부원장은 "식약처 현직 과장을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사용하거나 전관을 이용하지 않았다"며 "현직 과장들이 강사로 나선 점도 식약처 국장 등의 승인을 거쳤기 때문에 법적 절차적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서 부원장은 "식약처 재직시 산업계와의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 관련 강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전직장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며 "다만 강의 진행 도중 뒤늦게 문제를 깨달아 식약처 강사진 전원을 교체한 것은 맞다. 전 직장과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식약처와 산업계의 소통은 정책 설명회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업계와 소통은 정책 설명회 등 공적인 영역에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며 "설사 최신 규제 과학 등 민간에 도움이 되는 주제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업계를 대상으로 최소한의 수강료를 받고 진행해야 한다. 식약처 고위 간부들은 공직자이며 식약처는 서울대 약대의 분원이 아닌 국가기관"이라고 꼬집었다.
식약처 측도 강사 편중 문제를 인지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14일 "학회, 협회, 대학 등에서 규제과학 관련 발표 요청 시 산업계, 학계의 역량제고를 위해 식약처 공무원 행동강령에 규정된 연간 횟수 등 범위 내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 강의의 필요성 등에 대한 검토는 과 또는 부ㆍ국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직속 상급자의 결제를 개별적으로 득하도록 정하고 있어 기관 차원의 검토나 보고가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향후 강의 수락의 적절성, 기관 강사 편중 여부 등을 사전에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외부 강의 요청 처리 절차'를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