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에게 중요한 건 데이터 전문가, 의사인력 확충
유럽의약품청 EMA는 4500명의 외부 전문가 풀 활용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 감사에서 '허가 심사 인력 현황'이 도마에 올랐다. 식약처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의약품청(EMA), 일본 후생성(PMDA)에 비해 훨씬 적은 인력으로 의약품 허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허가 심사 인력의 양적 비교 못지 않게 데이터 전문가, 의사 심사관 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21일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식약처가 안전에 소통과 속도를 더하는 K- 바이오 규제 대전환을 추진해 K-바이오 심사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면 식약처 심사인력을 대폭 확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약처는 수년째 심사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식약처가 업무량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매년 조직 보강 및 인력 증원을 행정안전부에 요청했지만 가뭄에 콩나는 격으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업무량 과부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남 의원은 식약처가 제출한 '주요국 심사 인력 현황'을 근거로 선진 규제당국의 인력현황을 소개했다. 식약처(MFDS)가 369명에 불과한데 FDA는 9049명, EMA 4000명, PMDA 600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신약 한 건당 투입인력이 미국 약 40명, 유럽 약 20명에 비해 식약처는 3~5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히트뉴스 '팩트체크' 결과 남 의원이 인용한 허가 심사 인력 데이터는 실제 현황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럽 EMA 전체 심사 인력은 1013명의 사무국 직원과 약 4500명의 외부 전문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국 직원 1013명은 행정 및 절차적 지원, 과학적 평가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에 법률, IT, 행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속됐는데 이들은 외부 전문가들의 심사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4500명의 외부 전문가들은 EU 및 EEA 회원국의 규제기관과 학계 소속 전문가들로 의약학, 생물학, 약학 분야에서 의약품 허가 심사를 담당 중이다.
일본 PMDA 허가 심사인력은 1300명이다. 이들은 정부 소속 공무원이 아닌 독립행정법인의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FDA 심사관은 9000여명으로 미국 보건복지부 소속 연방 공무원으로 과학자, 통계학자,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있다.
이같은 현황과 관련해 국내 전문가들은 선진 규제 당국의 심사 인력 숫자가 아닌 인력 구성의 특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식약처 전 임상심사위원은 "식약처 허가 심사 인력의 숫자를 선진 규제 당국의 인력과 비교하는 것은 1차원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며 "과거 식약처에서 일했을 당시 신약 허가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전문가 인력 풀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식약처는 인보사의 국내 허가 자료에서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미국 FDA는 임상 데이터에서 주성분이 바뀐 대목을 먼저 발견하고 후속 조치에 돌입했다. 신약 허가를 위한 데이터의 흐름과 구조를 주목한 데이터 전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신약 허가 심사는 임상 1~3상 시험 과정에서 쌓인 '하나의 데이터'를 어떻데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신약 허가 심사관의 심사가 수월하도록 데이터 전문가가 허가 자료를 취합하고 통계적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이 갈수록 중요한 상황이지만 현재 식약처 내부에 데이터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FDA와 EMA는 다르다. 최근 2020년 이후 FDA는 데이터 과학자, AI 전문가, 통계 분석가 등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FDA 약물 평가 및 연구 센터(CDER)는 2023년 5월 공개한 발표 자료에서 "통계 모델링, 머신러닝, 컴퓨터 과학, 데이터 마이닝 지식 전문가를 찾고 있다"라며 "특히 약물 안전 데이터 분석, 잠재적 안전 신호 평가, 안전 감시 수행으로 규제 관련 의사 결정을 알리기 위한 데이터와 지침을 제공하는 일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 개발 본부장은 "FDA는 최근 5년간 데이터 전문가를 20~30% 늘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AI, 머신러닝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신약허가 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고 덧붙였다.
이는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직후 FDA 허가 심사 지원 인력 3500명을 감축한 점과도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허가 심사를 지원하는 인력이 상당수 배제됐다"며 "의약품과 백신 제품을 감독하는 검사관이나 신제품의 신청서 기록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 등이 해고됐다. 이전과 달리 FDA 신약 허가 심사가 지연됐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데이터 전문가 채용은 더욱 늘고 있다"고 밝혔다.
EMA는 2024년부터 AI, 머신러닝, 빅데이터 분석 분야 인재 수요 부족으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AI 트레이너, 프롬프트 엔지니어 등 전문 인력 채용을 확대해왔다. PMDA도 5년 전부터 데이터 분석, AI, IT 전문가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선진 규제당국과 식약처 심사 인력 또 다른 차이 '의사 심사 인력'
글로벌 빅파마 출신 약물감시 전문가(의사, 보건위생학)은 "신약 허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의사 인력의 확보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식약처 전체 직원 중 의사 인력은 10여명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신약 허가 심사에서 의사의 역할은 중요하다"며 "의약품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은 사람 몸에 약물을 주입하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인데, 의사 없이 이런 일을 잘 수행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사는 "유럽 EMA의 PRAC(Pharmacovigilance Risk Assessment Committee)과 협업을 했을 당시 약물 감시 검토 팀의 모든 직원이 의사였다"며 "EMA가 약의 효과와 위해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검토해야 하는 업무에 의사가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유다. 신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검사 결과와 동반합병증, 기저질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안전성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FDA와 유럽 EMA에서는 각각 100여명, PMDA는 70여명의 의사 인력이 허가 심사 부서에 근무하고 있다.
또다른 식약처 전 임상심사위원(의사)은 "물론 의사가 많은 것이 무조건 신약 허가 심사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며 "다만 이들이 '최신 규제과학'을 숙지하고 이를 허가 심사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 규제 당국 의사 심사관들은 신약 허가 심사를 위해 약물의 유익과 위해의 균형(밸런싱)을 규제과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를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식약처와 차이"라며 "신약이 허가 됐을 때 이것이 환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약물 투여군과 대조군에서 나온 효과와 부작용이 임상적으로 어떻게 작용할지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의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 즉 규제와 심사의 관점에서 전문성을 지닌 의사 심사관을 증원하고 육성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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