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 넘어가려면 '정책자금 지원이라는 사다리' 절실
글로벌 빅파마들, 기술이전 협상서 임상데이터 요구하는 추세

 기획 | 미정복 질환과 싸우다 고독해진 K바이오텍 

① 문제는 임상, 빅 파마도 임상 결과를 묻잖아
② 신약의 혁신성 보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돈'
③ 목적성 펀드조차 대상 기업을 외면한다면... 
④ 임상 문턱에서 멈춘 혁신, 이제는 결단할 때

멀리서 바이오 생태계를 조망하면 근사하다. 글로벌 빅파마에게 기술을 수출(L/O)하는 유망한 벤처들,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바이오나 셀트리온의 약진은 눈부시다. 비극적 요소가 존재한다.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에서 낮밤으로 들려오는 바이오벤처들의 절규다. 가설을 입증해 신약을 만들어 보겠다던 초·중기 벤처들은 투자가 끊겨 죽음의 계곡에 그간 쌓은 자산을 매몰시키고야 만다. 계곡을 넘어갈 사다리는 정책 자금인데, 정책 자금은 새 벤처를 탄생시키는데 또 쓰인다.

하플사이언스 최학배 대표(오른쪽)와 김대경 대표. 둘은 서울약대 입학 때부터 절친이었다. 사진은 히트뉴스 2019년 1월 DB.
하플사이언스 최학배 대표(오른쪽)와 김대경 대표. 둘은 서울약대 입학 때부터 절친이었다. 사진은 히트뉴스 2019년 1월 DB.

 

① 노화 질병 치료 도전하다 임상 못해 어려움에 빠진 하플사이언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혁신 신약개발의 꿈을 키웠던 하플사이언스는 판교를 떠나 안양시로 회사를 옮겼다. 한때 30명에 달했던 임직원들은 흩어지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동문이자 공동 창업자인 최학배, 김대경 대표와 소수의 연구자들만 상근하며 신약개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항노화 기능을 밝혀 노인성 질환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높인 단백질 HAPLN1을 붙잡고 투자 유치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JW중외제약과 한국콜마에서 의약품 개발업무를 이끈 최학배 대표와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에 있으면서 정부 연구지원금이 끊이지 않았던 스타교수, 김대경 대표의 공동 창업은 투자업계에 매력적이었다. 2018년 11월 법인등록을 마치고 2019 년 초 사무실을 열 무렵 통상 1~2억원이던 기술보증기금 한도를 10억원까지 늘려 인정받았다. 그 배경에는 2017년부터 5년간 총 35억원의 과학기술부 연구비를 받아 HAPLN1 단백질의 기능을 밝히며 신약 연구를 하던 김대경 대표의 탄탄한 사이언스가 있다.

기술보증기금 한도가 높아진 덕분에 지분 희석 거의 없이 시리즈 A를 시작해 95억원으로 마감한 뒤 연구소를 갖췄다. 유전자 재조합으로 HAPLN1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마스터셀뱅크(MCB)를 구축하는데 법인통장에 예치된 돈은 사용됐다.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비임상연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틀을 확립했다. 다른 말로 비임상을 위한 실탄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

시리즈 B에서 227억원을 유치했다. 두 대표는 ①골관절염 치료제와 ②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치료제 2개로 비임상을 시작했다. 비임상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임상 1상 시험에 진입할 수 있고, 임상의 결과가 있어야 기술이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으니 비임상시험은 신약개발 초기 필수적 통과 관문이다.

과제당 300억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였다. 안양 사무실에서 만난 최학배 대표는 "당시 조달금액 전부가 330억원 규모였는데 아껴서 하면 두 과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퍼스트 인 클래스 과제라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만나면 원인 분석하고 해법을 찾고 하면서 시간이 늘어나 인건비 등 필요한 비용이 계속 증가했어요. 그러던 중 2022년 투자 분위기가 싹 바뀌었어요. 투심이 약화된 것이죠. 하반기 시리즈 C를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요. 시리즈 C가 성사됐다면 자금이 남은 상태에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매우 안타깝죠."

2022년 하반기 대한민국 바이오생태계를 둘러싼 투자심리는 냉랭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신약 개발 벤처에 대한 투자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신약 벤처는 투자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2023년에도 분위기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신약개발 벤처들에게 돈 나올 구멍은 벤처캐피탈(VC)인데 안정적 투자회수처로 포커스를 옮겨가니 하플사이언스처럼 혁신신약을 타깃하는 벤처들은 속수무책,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플사이언스는 당면한 문제를 풀어내려 R&D에 관심이 높다고 평가받던 국내 제약회사를 방문해 HAPLN1의 기술과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설명하며 투자 유치를 했다. "저희가 새로운 기전의 신약개발이다 보니 미팅한 국내 제약회사 담당자들은 자신이 없어 하더군요. 기술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그 분들은 임상 결과 없이 비임상 데이터만 가지고 어떻게 윗선에 이 프로젝트가 유망하니 투자를 하자고 얘기할 수 있냐며 손사레를 쳤어요.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혁신신약 연구에 대한 콘셉트와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했어요. 이러한 가운데 다행히도 2022년 말 중소벤처기업부의 스케일업 팁스 과제에 COPD 치료제가 선정되고, 2023년 봄에 KDDF(국가신약개발재단) 과제에 안구건조증 치료제가 선정되어 우리가 개발 중인 제품들에 대한 자신감도 더 생기고, 연구 개발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플사이언스는 Johns Hopkins가 행한 연구에서 희망을 보았다. 하플과 Johns Hopkins 대학과 관계는 2021년 11월 이 대학 Biomedical Engineering 학부의 교수로 재직중이던 김덕호 교수를 만나며 시작됐다. 김 교수는 의대 COPD 연구진과 함께 폐포와 유사 조건의 오가노이드(organoid)를 개발해 COPD 연구에 활용하는 것을 추진했는데, COPD 연구진의 핵심인 Ramana Sidhaye 교수를 소개해 줘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플사이언스는 이 시기 COPD 환자의 폐 조기 재생을 목표로 개발했던 다양한 후보물질들이 동물시험에서 좋은 치료 효과를 보였으나, 임상시험에서 치료효과를 보여 주지 못했다는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글로벌 빅파마의 시선을 잡는 방법은 임상시험을 통한 입증이지만, 자금이 없어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없다면 단기간 유도된 동물실험모델보다 더 나은 실험모델이 필요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서 날아온 코멘트 '임상시험을 추천함'.
존스홉킨스 대학서 날아온 코멘트 '임상시험을 추천함'.

오가노이드 실험이었다. 하플은 개발하는 약물이 노화에 의한 퇴행성 질환을 치료하는 기전의 약물이므로 동물실험에서 급성적으로 유도한 COPD 질환은 HAPLN1 기반 약물의 특성을 잘 나타내게 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어서 만성 질환인 COPD 환자의 폐세포를 이용한 오가노이드 실험이나, COPD 환자의 폐 조직을 이용한 ex vivo 시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러한 실험 시스템을 갖추어 연구하고 있는 팀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COPD 연구팀이었다. 

최학배 대표는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실시한 결과 오가노이드 형태의 시험에서 COPD 환자의 폐세포를 이용해 조성한 조직은 완결성이 떨어져 있는데, 여기에 HS-401 (rhHAP- LN1)을 투여하면 정상인의 폐세포로 조성한 조직과 유사한 수준으로 조직의 완결성이 회복되는 것이 확인됐다. COPD 환자의 손상된 폐 조직을 회복시킬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이 시험에 이어서 실시한 폐조직 시험에서 COPD 환자의 폐와 담배 연기로 손상을 일으킨 폐조직 모두에게서 HS-401(rhHAPLN1)의 투여에 의해 폐조직이 회복되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이러한 효과는 약물을 5일간 투여한 결과로 얻어진 것으로서 COPD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적으로 사용시 짧은 기간에 확실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Ramana 교수는 COPD 환자의 인체 정밀 절편 폐 조직(PCLS) 모델에서 실험(생체밖 실험, ex vivo) 등을 마치고 "인체 세포와 조직을 이용한 결과는 rhHAP-LN1 처리가 기도 상피세포와 폐조직의 건강을 유의하게 개선함을 보여줬다. 다음 단계로는 임상에서 안전성 및 치료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rhHAPLN1 치료의 안전성, 유효성 및 치료적 이점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최 대표는 "현재 COPD 치료와 관련해 기관지 확장제나 염증치료제를 대증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데다 세계적으로 3억명이 넘는 환자에 매년 300만 명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HS-401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만성질환 치료제 신약 개발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이다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케이스들이 많아 나와서 빅파마들은 기술 이전에 앞서 임상에서 정립한 PoC(Proof of Concep, 개념증명)를 보려고 합니다. 임상시험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반드시 살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하플사이언스는 그래서 지식재산(IP)를 강화하며 비상의 꿈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② "초중기 벤처 임상시험 지원 필요" 윤채옥 진메디신 대표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 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과 제약바이오기업 대표 등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9월 10일 송도컨벤시아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돈이 없어 임상시험 을 못하고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지는 우리나라 바이오 생태계의 근원적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던 윤채옥 진메디신 대표는 그 이후 전화 통화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말 문을 연 윤 대표는 바이오 생태계가 무너졌다고 말한다. "대부분 벤처들이 임상에 들어 가지 못하거나 들어갈 상황이 못되니 독성 CRO도, 임상 CRO도 어렵고, 당연히 임상시료 생산 수요가 없어 CDMO 기업들도 어렵다. 임상시험에 들어가야 상장의 기회도 확대되고, 상장이 돼야 벤처캐피탈(VC)도 엑시트(Exit)를 한 후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다. 벤처가 기술이전(L/O)을 해보려면 최소 임상 1상 시험 결과가 필요하다. 요즘 글로벌 빅파마는 원칙적으로 임상 결과를 원한다. 한데 우리나라 벤처들은 임상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에 매몰되는 형편이다. 생태계는 순환 없이 꽉 막혔는데, 벤처들이 임상에 들어가게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교내 창업해 진메디신을 설립한 윤 대표는 벤처생태계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25년"이라는 윤 대표는 "그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바이오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성은 벤처들이 담당하고 있다. 몇몇 대기업이 잘 나간다고 벤처들이 하는 다양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다양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가 근간을 깔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는 굉장히 다양하게 발전해 왔고 지난 20년 동안 빅 히트를 친 치료제가 mRNA, ADC, 항체, 세포치료제, CAR-T 등 다양하다. 어디에서 빙고를 외치게 될 지 모른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윤 대표는 새 펀드 조성은 바람직하지만, 성과 지표는 작은 돈으로 여러 개를 창업할 수 있는 개수가 아니라 비임상에서 임상 진입 건수가 몇 개냐, 후보 물질에서 비임상 진입이 몇 개냐는 식의 질적 목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창립 이후 경과기간을 기준으로 지원 여부가 가려지는 제도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어느 나라도 창립 연도를 묻지 않는다고 했다. 이 보다 시리즈 A 투자 단계인지, B단계인지, 임상단계인지 비임상단계인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실효성 높은 지원에 대한 아쉬움으로 읽힌다.

바이오 혁신토론회에서 "모태펀드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윤 대표는 초기벤처와 중기벤처에 좀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태펀드의 역할을 되짚었다. "모태펀드는 수익률 보다 국가가 가야 될 중요한 전략 기술에 선투자해 주는 것이다. 바이오가 잘 나갈 때 모태, 민간 펀드가 다 활발했는데, 바이오 투자심리가 꺾여 민간 투자가 완전 제로일 때 모태펀드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같이 유행을 따라 간다. 이 같은 목소리가 반영돼 바이오 전용 펀드가 중기부에서 만들어진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윤 대표는 바이오 전용 펀드 조성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도 초기 벤처 창업을 장려하고, 비임상까지 지원되는 한계를 우려했다. "바이오 벤처 80프로가 무너졌다고 통계로 나오는데, 80프로 대부분은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임상에 못 들어가고 멈췄거나 문을 닫았어요. 회사의 명맥은 이어진다 하더라도 회사는 대부분 돌먼트(Dorment·휴면회사) 상태예요." 창업 이후 투자를 거듭하며 진전시 켜온 자산이 죽음의 계곡에 매몰되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윤 대표의 말처럼 풀뿌리 연구부터 시작해 시리즈 A, B, C를 통해 650억원 가량 투자를 유치한 진메디신은 30년간 윤 대표가 갈고 닦은 세계적 선도기술을 기반으로 항암바이러스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 톱 클래스 벤처기업으로 불려 손색이 없다. 

2008년 국내 전통 제약회사와 공동으로 임상 1상 시험을 완료한 파이프라인(GM101)을 비롯해 비임상시험을 마치고 임상시험 진입이 가능한 GM 102, GM 103, GM 104 등 파이프라인이 준비되어 있지만 임상시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여기에 나노플랫폼 기술에 기반한 DDS (Drug Delivery System, 약물전달)기술, 1100평 규모의 3개 생산라인을 갖춘 GMP 시설도 있다. 더불어 CDMO(바이 오 의약품 위탁연구 및 제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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