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S나 희귀질환처럼 1상 임상시험 결과가 필수적인 분야 많다"

기획 | 미정복 질환과 싸우다 고독해진 K바이오텍
① 문제는 임상, 빅 파마도 임상 결과를 묻잖아
② 신약의 혁신성 보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돈'
③ 목적성 펀드조차 대상 기업을 외면한다면...
④ 임상 문턱에서 멈춘 혁신, 이제는 결단할 때
[끝까지HIT 15호] 혁신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 벤처의 신약 R&D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 기반 지원 사업 및 모태펀드가 질환과 모달리티 별 차별을 두지 않고 나름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외 영역이 존재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 임상을 마친 상태에서 임상시험에 진입하지 못하고 자금이 고갈돼 사실상 기업활동이 중단된 벤처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KDDF, K-ARPA-H 등 다양한 국가 지원 사업 존재

정부는 2023년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기업을 배출하기 위한 포부를 드러냈다. 5년간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 창출 △글로벌 수준(TOP 50) 제약바이오 기업 3개 육성 △의약품 수출 2배 증가(2022년 대비 2027년 결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12만→15만) △임상시험 글로벌 순위 증가(6위→3위) 등을 달성할 것이라고 목표를 설정했다.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통상부 등 범부처 협력으로 출범한 국가신약개발재단(KDDF)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이행하는 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KDDF는 2011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으로 출범한 후 개발 지원 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조직을 재단으로 확대 출범했다.
KDDF는 신약 개발을 위한 전주기 연구비 지원 외에도 연구 및 인허가 단계 컨설팅을 강화해 기업이 병목구간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재단은 유효물질, 선도물질, 후보물질, 전임상~2상 임상까지의 단계에 있는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 범위는 합성의약품에서부터 유전자·세포치료제, 항체, 백신, 펩타이드, 단백질 등 바이오의약품과 천연물의약품까지 다양하다. 다만, 질환 분야에서 치매치료제와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는 제외된다.
KDDF는 △IND 승인(1상 153건, 2상 48건, 3상 12건) △국내 기술이전 80건 △글로벌 기술이전(200억원 이상 54건, 1000억원 이상 32건) △마일스톤 달성(유효·선도 75%, 후보 70%, 비임상 65%, 임상1·2상 70%) △FDA, EMA 신약 승인 4건 △연 1조원 이상 글로벌 신약 1건 △희귀의약품 지정 6건 등을 누적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걸고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된 기업들은 단계에 따라 차등 연구개발비를 지원받는다. 가장 많은 액수를 지원받는 비임상 이후 단계부터는 △비임상 20억원 △1상 45.5억원 △2상 91억원 내외의 R&D 비용을 지원받게 된다.

복지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VC와 연계해 바이오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바이오·백신 펀드가 있으며,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바이오 기업과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총 50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500억원 규모의 바이오 펀드를 포함하는 중기부의 모태펀드와 함께 과기부도 물질 발굴 및 전임상 단계를 지원한다.
2024년 정부는 보건·의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혁신형 연구개발사업인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이는 미국에서 운영중인 'ARPA-H'를 벤치마킹한 모델로, 한국에서 K-헬스미래추진단이 운영하고 있다.
각 제품별 지원 체계를 갖춘 KDDF와 달리 K-헬스미래추진단은 선정된 난제를 중심으로 대규모 혁신 모달리티 신약 개발을 추진한다. 각 난제는 △보건안보 확립 △미정복 질환 극복 △바이오헬스 △복지·돌봄 개선 △필수의료 등 5대 임무를 기반으로 설정돼 있으며, 2032년까지 약 1조6628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희귀질환, 암, 감염병 등 미충족 리스크가 크고, 유전자·세포치료, 항암백신, 신규 플랫폼 등 도전적 모달리티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부는 최근 지원 분야를 임상 전주기로 넓히기 위한 1500억원 규모의 '임상 3상 특화펀드'를 2026년 조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7월 KDDF가 공개한 '2025년 1차 국가신약개발사업 협약과제 분석'을 살펴보면 △유효물질 발굴 109개 접수(11개 선정) △선도물질 발굴 58개(14개) △후보물질 발굴 44개(22개) △비임상 25개(16개) △임상1상 23개(5개) △임상2상 14개(5개) 등 총 273개 과제가 접수됐다. 상대적으로 비임상 및 임상시험 단계(36%)의 비중이 초기 단계 과제에 비해 적은 수가 선정됐다.
모달리티 별로 살펴보면 바이오 분야에서 △항체 32개(9개 선정) △세포치료제 14개(3개) △유전자&핵산 42개(12개) △재조합 단백질 28개(4개) △기타 15개(2개) 등이 접수됐으며, 질환 분야에서는 △심혈관 1개(1개) △면역 31개(10개) △대사 23개(6개) △신경학 32개(12개) △종양학 134개(34개) △안과학 15개(2개) △호흡기 10개(2개) △기타 27개(6개) 등으로 나타났다.

KDDF는 각 단계별로 과제 선정을 위한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있다. 시장(30점), 제품(50점), 개발계획(20점) 등 총 100점으로 구성되며, 가산점 항목까지 반영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시장성에 대해서 업체는 타깃 환자군 및 미충족 의학 수요를 명확히 제시하고, 대상 시장의 규모와 성장세가 충분하고, 경쟁 약물 대비 우월한 지를 설명해야 한다.
다만 세부적으로 대상 시장의 규모와 성장률, 임상시험계획의 적절성 등이 고려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기업에는 일부 불이익으로 작용할 만한 항목들도 존재했다.
대다수의 기업들은 항체, 유전자치료제 모달리티를 가진 종양학 질환 분야의 과제에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접수 개수에 비례해 선정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많이 지원한 분야에서, 많이 선정된 것이다.
우리는 '왜' 지원 못 받나. 정부 지원 없이 임상은 '그림의 떡'

일부 업체들은 정부 지원 사업의 대상과 선정 기준이 불합리 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 주관으로 진행된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항암바이러스 신약 개발사 진메디신 윤채옥 대표는 "비임상에서 임상으로 가는 단계에서 바이오벤처 기업의 80%가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하지 못해 문을 닫는다. 현재 정부의 지원 사업은 초기 창업벤처 기업을 지원하는 데 집중돼 있고, 그것을 성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임상 1~3상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돈은 약 500억원으로,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다시 이 단계에 와서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그 때까지 지원해온 금액의 80%가 소실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어 "우리만 보더라도, 약 650억원의 투자를 받아 임상 1상에 진입을 했으나, 유효성을 잘 입증해 가고 있음에도 KDDF 신약지원 사업에 4번이나 떨어졌다"며 "자금 차원에서 임상시험을 멈추고 싶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이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1상을 진행하고 있는, 또는 진입할 회사들에게 더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한국형 ARPA-H가 지원하고 있는 난제 영역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그 영역을 넓혀 운영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바이오벤처 연구개발 책임자는 "항암 분야처럼 전임상 결과만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 이전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들도 존재하지만, CNS 질환이나 희귀질환처럼 1상 임상시험 결과가 필수적인 분야도 많다. 한국형 ARPA-H가 잘 운영되고 있지만, 그 지원 범위가 아직도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기존에는 없던 신규 기전의 약제를 위한 별도 과제 비율을 확보해주고, 초기 개발 단계부터 국내 대형 제약사, 다국적 제약사로 이어지는 협력 구조를 형성해 준다면 자본잠식이 해소되고, 긍정적인 R&D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제안했다.
'모태펀드'라도 근본은 '투자', 시장성 확보는 회사의 몫
업계의 이 같은 호소에도 VC 업계는 다소 냉담하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R&D 물꼬를 터주자는 취지의 모태펀드라고 할 지라도, 글로벌 트렌드에 맞출 수 없다면 투자금 회수부터 새로운 투자까지 막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근 ADC, 대사성 질환 등에 초점이 맞춰진 투자 경향은 어쩔 수 없는 시장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백신, 희귀·난치성 질환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비임상 데이터만으로도 기술 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VC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자사의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 하기 위해, 이름 있는 해외 회사라면 주먹구구 식으로 제안을 하고 있는 듯하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어떤 글로벌 제약사가 우리와 연구 분야가 가장 잘 매칭되는지, 어떻게 비임상시험을 진행하고, 데이터 패키지를 마련할 지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다면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기술이전이 가능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이는 곧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VC들이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KDDF 측은 현재 사업단이 선정해 운영 중인 과제들이 글로벌 제약사의 파이프라인과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그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입장이다.
KDDF 관계자는 "KDDF는 특정 모달리티나 적응증에 편중된 지원을 하고 있지 않다. 감염병 치매 등 타 사업단과 중복되는 영역을 제외한 전 적응증을 대상으로, 모달리티와 관계없이 글로벌 신약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는 우수 과제를 선정해 단계별로 지원하고 있다"며 "항암, 항체, 세포유전자 분야 비중이 높은 것은 사업단의 정책이 아닌, 국내 신약개발 과제 자체의 비중과 우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의 수요와 미충족 의료 수요를 반영한 흐름이기에 쉽게 바뀌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새로운 기전의 혁신신약은 국가 차원의 의무적 펀드 조성이 아니더라도 시장의 높은 수요와 관심에 따라 자연스럽게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과학적 근거 자료를 얼마나 확보하고, 입증할 지가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서 KDDF는 직접적인 투자를 진행해 돕기 보다는,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글로벌 진출을 촉진하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정부가 발굴한 우수 과제가 펀드 투자로 이어지고, 다시 후기 개발과 글로벌 임상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체계의 '촉매'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KDDF의 평가 결과를 보고 비정상적인 쏠림 현상 없이 비슷한 비율(선정 : 접수)로 선발한 공정한 절차였다고 옹호하고 있다. 반면, 개발하고 있는 기업 혹은 관심이 적은 분야는 소외될 수 있다고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만성 질환이나 퇴행성 질환처럼 동물 모델과 실제 사람에서 효과 차이가 나타날 수 있는 분야 파이프라인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기술이전 단계에서 임상 1상 이상의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에게는 국가 R&D 과제의 지원을 받는 게 유일한 구제책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지원 제도 속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 공간'이 없도록 정부와 산업계간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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