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수출 기록 경신, 그러나 혁신 투자는 아직 미흡

국내 바이오산업이 올 상반기 전례 없는 기술수출 성과를 거뒀다. 계약 규모만 12조원을 넘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중국은 수십조원대 거래를 성사시키며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술수출 성과가 지속적인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려면, 제도적 뒷받침과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글로벌 빅파마와 굵직한 계약 잇따라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한국이 성사한 신약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78억6000만 달러(약 11조원)로 지난해 전체 규모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 중 세 건은 1조원 이상의 대규모 거래였다.

대표적으로 GSK는 지난 4월 에이비엘바이오와 최대 27억8000만달러 규모 계약을 맺고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공동개발에 나섰다. 일라이 릴리는 2월 올릭스와 약 9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5월에는 알지노믹스의 전사체 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 플랫폼을 약 19억달러에 도입해 난청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알테오젠, 나이벡, 아리바이오, 오토텔릭바이오, 에이비온 등도 상반기 동안 해외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오필리아 찬(Ophelia Chan) 글로벌데이타 헬스케어 수석 애널리스트는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일라이 릴리와 GSK 같은 대형 제약사들과 수십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하면서 거래 규모가 크게 늘었다"며 "한국은 제네릭 생산국이라는 과거 이미지를 벗고, 정부 지원과 국제 투자 확대를 기반으로 혁신 신약을 보유한 글로벌 허브로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해 시장 압도

그러나 같은 시기 중국은 훨씬 더 큰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시장을 압도했다. 헝루이제약은 GSK와 12개 파이프라인을 일괄 이전했고, 3SBio는 화이자와 48억달러 규모 항체 계약을 체결했다. 시로낙스는 노바티스와 59억달러 규모 플랫폼 기술 계약을 맺는 등, 올해 상반기에만 100억달러를 넘어서는 거래가 이어졌다.

중국의 전체 기술수출 규모는 2023년 166억달러에서 2024년 415억달러로 급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이미 660억달러에 달했다. 특히 이중항체, CAR-T, 인공지능 기반 신약 플랫폼 등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중심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배경으로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으로 내수 기반을 넓힌 뒤 단기 수익성보다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30~50%(연간 5000억~2조7000억원)에 달하며, 이를 통해 유망 모달리티와 타깃을 동시에 공략하고 선두 약물과 직접 비교 임상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7월에는 중국 내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텍 간 인수합병이 처음으로 성사되는 등 혁신 신약 확보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정부의 임상 기간 단축 지원까지 더해져 신약 개발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 제약사, 혁신적 투자 단행할 때

반면 한국은 임상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됐다. 글로벌 임상시험 순위는 4위에서 6위로 하락했고, 지난해 의약품 임상시험계획 승인 건수는 747건으로 전년 대비 4.6% 감소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 등으로 임상시험 환경이 위축된 영향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임상시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아직 뚜렷한 개선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전통 제약사들의 느리고 보수적인 경영 기조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허 연구원은 "제품 매출과 영업 실적이 없는 코스닥 바이오텍이 R&D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오히려 수천억원 매출을 내는 전통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시장 내 위상이 뒤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R&D 투자와 보유 현금 활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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