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만들겠다"… 로슈·릴리·J&J·노바티스, 관세 피해 수십조 투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제약·바이오 산업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수입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도입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논의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미국 내 생산 및 연구 인프라 확장에 나서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단순한 정책 대응을 넘어, 미국을 새로운 제조 중심지로 삼으려는 전략적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향후 5년간 미국에 500억달러(약 6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22일(현지시각)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발표된 가장 규모가 큰 투자 중 하나다. 로슈는 켄터키, 인디애나,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 기존 제조 및 유통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체중감량 치료제 생산시설과 인디애나주에 연속혈당측정기(CGM) 공장을 새로 설립할 예정이다. 전체 1만2000개의 신규 일자리 중 약 6500개는 건설 부문, 1000개는 신규 및 확장된 시설에서 발생한다.
이번 발표는 로슈의 미국 내 전략적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회사는 2024년 기준 전체 매출의 48%를 미국에서 기록했으며, 현지에서만 2만5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로슈 측은 "이번 투자는 스위스 정부와 조율된 전략의 일환이며, 미국과의 협의 과정의 일부"라고 밝혔다.
로슈보다 앞서 미국 내 생산기지 확장을 발표한 제약사들도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지난 2월 26일 미국 내에 270억 달러(약 38조6000억 원)를 투자해 4개의 신규 제조시설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릴리는 저분자 화합물과 차세대 주사제 생산을 위한 시설을 포함해, 약 3000명의 고용과 건설 중 약 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어 3월 21일에는 존슨앤드존슨이 550억달러(약 73조원)를 들여 미국 내 제조 및 연구개발(R&D) 기반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투자 규모로, 바이오의약품 생산 확대와 주요 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된다. 회사 측은 "향후 자사 제품 대부분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제조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며,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스위스의 또 다른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 지난 10일 미국 내 5년간 총 23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10개의 생산·연구시설을 확보할 예정이며, 이 중 7곳은 새롭게 신설된다. 회사는 샌디에이고에 11억달러 규모의 바이오메디컬 연구허브를 조성하고, 플로리다·텍사스 등지에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등 핵심 치료제의 미국 내 생산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노바티스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주요 의약품을 100% 현지에서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 리제네론 역시 미국 내 제조기반 확대에 나서고 있다. 리제네론은 노스캐롤라이나 허리 스프링스에 위치한 후지필름 디오신스(Fujifilm Diosynth Biotechnologies)의 생산시설을 활용해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22일 밝혔다. 총 투자 규모는 약 70억달러(9조6000억 원)이며, 뉴욕 타리타운 본사의 36억 달러 확장 계획, 렌슬러의 완제 생산시설 신설, 사라토가 부지 매입도 포함돼 있다. 회사 측은 "미국에서 개발된 의약품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다시 세계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의 미국행 러시는 단순한 관세 회피 차원을 넘어, 미국을 글로벌 생산 허브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대응의 일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약품 수입 규모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입 의존 구조를 지양하고 자국 내 제조기반을 강화하려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조달 혜택, 신속심사 우대, 세제 지원 등의 정책 유인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이를 감안해 미국 내 투자를 장기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