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구조조정 여파로 고위 인사 절반 이상 퇴임·해임
심사 지연·희귀질환 약물 개발 우려… 케네디 장관 입장 번복도 논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기관 구조조정으로 식품의약국(FDA)이 사실상 기능 정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FDA 고위급 인사의 절반 이상이 퇴임하거나 해임됐으며, 이 과정에서 약물 심사, 승인, 가이드라인 수립 등 필수 기능이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말, 백신과 유전자치료제 규제 분야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피터 막스(Peter Marks)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 국장이 돌연 사임했다. 막스는 사임 전까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갈등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FDA 약물심사국(CDER) 소속 국장급 이상 인물 약 24명이 최근 퇴사했다는 사실도 보도됐다.
재닛 우드콕(Janet Woodcock) 전 FDA 국장대행은 "리더십이 제거됐다. 이는 다소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며 "이번 개편은 병원에서 의사만 남기고 간호사와 직원 전원을 내보낸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FDA 심사 업무가 다양한 전문 부서 간의 의견 조율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조정할 리더들이 사라지면 '원인 불명의 심사 지연'과 '예측 불가능한 실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희귀질환 약물 개발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프랭크 사시노프스키(Frank Sasinowski) 전 FDA 법률 고문은 "기술적 조율과 유연한 승인을 가능케 하던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약 가이드라인 수립을 담당하던 조직들이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FDA는 이미 4월 1일로 예정됐던 노바백스(Novavax)의 코로나19 백신 승인 결정을 마감 기한 내에 내리지 못했다. 내부 고위 인사의 개입과 자료 요구가 반복되면서, 심사 일정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케네디 장관의 입장 번복도 주목되고 있다. 백신 반대론자로 알려져 온 그는 최근 홍역 확산으로 두 명의 아동이 사망한 후 "홍역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MMR 백신"이라며 백신 접종을 장려하는 발언을 X(구 트위터)에 올렸다. 이는 과거 그가 백신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VAERS 시스템의 접근 권한 문제로 막스 국장과 충돌을 빚었던 태도와 상반된다. 정책 결정 과정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FDA 조직 내부는 혼란에 빠져 있다. 슈런(Jeff Shuren) 전 의료기기센터 국장은 "감원 이후 실무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으며, 내부 직원들은 "출근 후 출입증이 정지돼 해고 사실을 알게 됐다"는 증언까지 내놓았다. 일부 해고자는 FDA의 해외 제조시설 실사 업무 등을 위해 일시 복직 요청을 받기도 했으며, 케네디 장관은 전체 감원의 20%가 "잘못된 조치"였음을 인정했다.
현재 FDA에서는 항암제 심사를 총괄하는 리처드 파즈더(Richard Pazdur) 센터장이 잔류를 선언한 가운데, 남은 인력들이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통·홍보팀, FOIA(정보공개청구) 대응팀 등 핵심 조직 다수가 해체된 상황에서, 기관 전반의 투명성과 대외 소통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우드콕 전 국장은 "과학적 규제를 기반으로 한 기관이 과학이 아닌 메시지를 받고 있다"며 "이 조직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는 서서히 무너지는 재앙(slow-moving catastrophe)”이라고 말했다. 또 이 상황은 '지구 평면설 신봉자들이 NASA를 접수한 격이라며 현재 FDA가 더 이상 합리적 정책 설계 기반 위에 있지 않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코리 부커(Cory Booker)는 이 사태에 반발해 25시간 연속 연설을 진행했으며, 바이오 업계에서는 케네디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