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케어·무보험자 대상 인슐린 3센트·에피네프린 15달러 고정
PBM 수수료 공개·제네릭 승인 가속…브랜드약 대비 80% 절감 도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민의 약가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추기 위한 행정명령에 15일(현지시각) 서명했다.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했던 약가 인하 정책을 대폭 확대하는 이번 명령은 보건복지부(HHS)에 실질적인 약가 인하 조치를 강력히 지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명령은 크게 △메디케어 약가 협상 프로그램 확대 △무보험자 대상 필수의약품 고정가 정책 △유통구조 투명화 △제네릭·바이오시밀러 보급 촉진 등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메디케어·무보험자 대상 약가 대폭 인하

이번 조치의 핵심은 정부가 직접 개입해 약가를 조정하고, 이를 통해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겠다는 데 있다. 특히 미국의 공적 건강보험 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를 중심으로 약가 협상 구조를 개편해 제도 전반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전략이 눈에 띈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고령자와 일부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방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제도다. 전체 미국 인구의 약 20%가 가입돼 있으며, 고령 인구의 만성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 지출이 집중되는 구조다. 그동안 민간 보험사나 PBM이 가격 협상을 대행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번 행정명령은 연방 정부가 직접 가격 협상력을 강화해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점에서 방향 전환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는 병원이 실제로 약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을 기준으로 약가를 재조정하고, 약물이 투여되는 장소(입원, 외래, 가정간호 등)에 관계없이 동일한 약가를 적용하는 '사이트 뉴트럴(site-neutral)' 정책을 도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약가 협상을 통해 평균 22%의 절감 효과를 달성한 바 있으며, 이번 조치는 이보다 더 큰 절감을 목표로 한다. 일부 고가 약물의 경우 최대 60%까지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보험자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는 보다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가격 인하가 시행된다. 인슐린은 관리 수수료를 제외하고 1회 투여당 0.03달러로, 에피네프린(알레르기 응급 주사제)은 15달러로 각각 고정된다. 이는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는 취약계층에 실질적인 생명선(safety net)을 제공하겠다는 조치로, 단기 재정 지원이 아닌 구조화된 정책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또한 주 정부가 운영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 프로그램과 약가 절감 전략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을 위한 연방·주 공동 운영 의료보장 프로그램으로, 약가 협상 시 제조사가 23.1% 이상의 기본 할인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번 명령은 고가 치료제, 특히 겸상 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 치료제 등에 대해 이 기준을 초과하는 할인율로 협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수입 약물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각 주정부가 보다 저렴한 약물을 도입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할 예정이다.

 

PBM 수수료 공개, 제네릭 승인 가속…약가 구조 전면 개편 착수

이번 행정명령은 단순한 가격 인하를 넘어, 약가가 형성되는 구조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비용’을 유발해온 유통 중간단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시장 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가격 절감을 유도하겠다는 접근이다.

개혁의 첫 축은 의약품 유통 중간업체인 PBM(Pharmacy Benefit Manager)에 대한 규제 강화다. PBM은 보험사와 제약사, 약국 사이에서 약가 협상과 리베이트 조정을 대행하는 조직으로, 미국 내 약가 결정 구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PBM은 '미들맨(middleman)'으로 불리는 유통 중간자 역할을 하며, 불투명한 리베이트 체계와 수수료 구조로 인해 실제 약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행정명령은 PBM의 수익 구조를 전면 공개하도록 지시하고, 제조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 유통마진, 관리 수수료 등에 상한선을 도입할 방침이다. 또한 PBM이 특정 약물을 우선 배정하거나 의도적으로 특정 제약사의 약품을 선호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를 억제해, 유통단계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도 함께 제시됐다.

두 번째 축은 제네릭(generic) 및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는 규제 개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의 승인 지연을 최소화하고,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춤으로써 브랜드 의약품 대비 최대 80%까지 저렴한 대체 치료제를 보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 수치는 전체 약가 평균이 아닌, 대체 의약품을 사용할 경우 실현 가능한 절감 기대치에 해당한다. 경쟁이 확대되면 약가 상승 압력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FDA에 대해 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의 신속 승인 프로세스를 재정비하도록 지시했고, 승인 지연을 유발하는 행정 절차의 병목 구간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경쟁 약물이 있는 상황에서도 승인 심사가 지나치게 지연되는 사례에 대해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처방약을 일반의약품(OTC, Over-the-Counter)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된다. 이를 통해 반복적인 의사 방문 없이도 환자 스스로 약물을 구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자가치료의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안전성 검토와 복약 지침이 함께 강화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HHS 장관에게 90일 이내에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고가 약물의 해외 수입 확대, △메디케어 약가 생산 프로그램 개편안, △PBM 수수료 체계의 구조 조정안, △유통 투명화 규칙 신설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도 이번 조치는 정책 차별화의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가 인하는 의회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국민이 당장 체감해야 할 문제"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메디케어 협상 프로그램을 방치해 실질적인 절감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1기 행정부 당시 FDA의 제네릭 승인 가속, 캐나다 의약품 수입 경로 구축, 인슐린 본인부담금 상한제 도입 등 실질적 성과를 이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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