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고충보고서] 폐 이식 대기 환자의 희망 ‘타이바소 흡입액’
진단 늦어지면 생존율 급감, 폐이식 전 생명 연장 절실
PH-ILD 환자, 1년 생존율 25%...급성악화 시 생존 1개월

[환자고충보고서]는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환자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해 히트뉴스가 부정기적으로 기획 보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2023년 4월 신경섬유종 환자의 어려움을 조명한 [환자, 尹케어를 말하다]의 취지를 살리되 명칭을 2025년 3월부터 [환자고충보고서]로 변경하여 진행합니다.

서울에 사는 김모 씨(57세)는 몇 년 전부터 점차 숨이 차는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오르거나 빠르게 걸을 때만 숨이 가빴고, 마른기침도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그는 단순한 노화 현상이나 가벼운 기관지 질환일 것이라 생각하고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점점 악화되었다. 평소보다 더 쉽게 피로를 느끼고, 숨이 찬 상태가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3년 전, 호흡곤란이 심해지면서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고해상도 CT(HRCT)와 폐기능 검사를 통해 특발성 폐섬유증(IPF)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료진은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항섬유화제를 처방했고, 주기적인 폐기능 검사를 권고했다.
치료를 받으며 상태를 관리하던 김 씨는 몇 개월 전부터 또 다른 이상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호흡곤란이 더욱 심해졌고,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나 계단을 오를 때 어지럼증이 자주 발생했고, 가끔씩 가슴 통증도 동반됐다. 이러한 증상은 폐섬유증이 폐고혈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폐섬유증 환자들이 호흡곤란을 기본 증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초기 폐고혈압을 감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김 씨 역시 단순한 폐섬유증의 악화로 생각하며 적극적인 추가 검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식사를 하다 갑작스럽게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시행한 심장 초음파와 우심도자 검사 결과, 폐동맥 압력이 정상보다 훨씬 높아져 폐고혈압(PH)이 진행된 상태였다. 일반적인 약물치료만으로는 생존율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폐섬유증과 동반된 폐고혈압은 일반적인 원발성 폐고혈압보다 치료가 어렵고, 진행 속도가 빠르다. 김 씨의 경우 이미 폐기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폐고혈압까지 진행됐기 때문에, 폐이식 외에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 현재 그는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조차 쉽지 않으며 폐이식이 유일한 생존 가능성을 제공하는 방법이라는 판단이다.
폐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이상이 생겨 폐동맥 혈압이 상승하는 질환이다. 우심도자술(right heart catheterization; 카테터라는 가는 관을 팔이나 다리 표면의 대퇴정맥 등을 통해 오른쪽 심장과 폐동맥까지 밀어 넣어 폐동맥 혈압을 측정)을 통해 평가된 안정시 평균 폐동맥압이 ≥20mmHg 증가한 상태를 의미한다. 폐동맥 혈압이 상승하면 우측 심장은 좁은 혈관을 통해 혈액을 뿜어내야 하기 때문에 점차 기능이 떨어져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심장 이상 증상을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폐고혈압의 임상적 분류에 따라 5개의 군으로 나누고 있다. 간질성폐질환 연관 폐고혈압(PH-ILD)은 그 중 그룹 3에 해당한다. 폐는 호흡에 있어
서 공기교환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폐포와 이들을 연결하는 사이질(interstitium, 폐간질)로 구성되는데, 해당 부위의 증식과 함께 다양한 염증 세포의 침윤, 섬유화가 진
행돼 폐가 점차 딱딱하게 굳어가는 질환을 간질성폐질환(interstitial lung disease, ILD)이라고 하며, 폐고혈압을 동반하게 된다.
PH-ILD는 다른 유형의 폐고혈압군에서 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 보고된 1년, 3년, 5년 생존율은 PH-ILD가 각각 72~79%, 47~52% 및 37~38%로, 폐동맥고혈압(PAH, 제 1군)의 85~88%, 72~76%, 59~66%와 비교된다. 사망 위험성은 다른 유형의 폐동맥고혈압(PAH)보다 그룹3 폐고혈압 환자가 2배 더 높다. 여기에 ILD에서 PH가 발생할 경우 사망 위험성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구 자료에 의하면 PH는 ILD 환자의 이환율과 사망률에 대한 독립적인 위험 요소로, ILD에 PH가 발생하게 되면 중간 생존 기간을 0.7년으로 크게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발행된 Consensus Document of the Internatonal Society for Heart and Lung Transplantation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PH-ILD의 발생 자체는 폐 이식을 위한 대상 요건 중 하나다.
폐이식 대기시간 늘릴 수 있는 ‘타이바소’ 등장
폐이식 대기 명단은 길고, 기증자를 기다리는 동안 상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폐이식 대기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는 약제가 있다는 것이다. 간질성폐질환 연관 폐고혈압 치료제 ‘타이바소 흡입액(성분 트레프로스티닐)’이 그 주인공이다.
타이바소 흡입액은 작년 7월 허가를 획득했는데, 허가과정에서 희귀의약품에 이어 ‘글로벌 혁신제품 지원체계(GIFT)’로 지정돼 허가 과정이 단축됐다.
타이바소는 폐고혈압 중에서도 예후가 불량한 PH-ILD 환자에 대해 사용하는 것으로 허가됐다. 타이바소는 가이드라인에서 PH-ILD 적응증에 유일한 치료제이고, 간질성폐질환 환자에 폐고혈압이 발생하게 되면 기대여명이 1~2년에 불과하며, 폐 이식 대상 질환이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에도 해당된다.
이 약제는 작년 진료상 필수약제 트랙으로 급여결정이 신청됐지만 조건이 여의치 않아 취하 후 사용범위를 좁혀 다시 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특히, 이번에 진료상필수약제로 신청한 대상환자군은 ‘PH-ILD 임상연구에서 중증 단계(PVR>5) 환자’로 정했으며 환자 수가 200명 내외다.
진료상 필수약제의 경우 ‘약제의 요양급여 대상 여부 등의 평가 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6조제1호에 진료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약제의 경우 경제성평가를 면하고 등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진료상 필수약제 트랙을 밟기 위해서는 △대체 가능한 치료법이 없어야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 △희귀질환 등 소수의 환자 대상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개선을 입증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특발성페섬유증 연관 폐고혈압 환자 기대여명이 1년 미만에, 폐 이식 대상 질환이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에도 해당된다. 환자수 역시 200명 내외에다. 해외 학회 가이드라인에서 유일하게 추천하는 치료제로 환자 운동기능 개선 및 생명연장 효과가 있어 폐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인터뷰 하루 앞두고 환자 사망
환자단체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폐이식 대기자 50%만 폐 이식을 받았으며 그 중 37%는 대기 중 사망했다. 폐 이식이 필요한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은 특발성폐섬유
증으로 전체 폐 이식 환자 45%를 차지하고 1년 안에 이식 받은 비율은 50%에 불과해 이식을 받지 못한 환자의 1년 내 사망률은 31%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폐고혈압이 동반될 경우 급성악화가 발생할 위험이 현저히 높아지고 이들 환자의 1년 생존율은 25%, 2년 생존율을 15%로 현저히 낮으며 급성악화 발생 후 환자들의 중간 생존기간은 1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급성악화가 진행될 경우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이식 대기중 상태가 악화돼 이식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사망에 이르는 환자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병세가 악화돼 폐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중 언론과 인터뷰를 하루 앞두고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며 “타이바소를 처방받았다면 폐이식을 기다리는 기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타이바소는 간질성폐질환으로 인한 폐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무작위 배정, 이중 맹검, 위약 대조, 다기관 임상시험(RIN-PH-201, INCREASE)을 진행했다.
1차 유효성 평가변수는 투여 후 16주차에 6분 보행거리(6 Minute Walking Distance; 6MWD)의 baseline 대비 변화량으로, 위약 투여군과 타이바소 투여군을 비교했을 때, 위약 투여군으로 보정된 타이바소 투여군의 변화량 측정 중간값은 21.0m로 유의성 있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0.004). 2차 유효성 평가변수 중 임상적 악화 사건은 다음의 기준 중 한 가지라도 해당될 때로 정의했다. ①심폐 증상으로 인한 입원 ②최소 24시간 간격의 2회 연속 방문에서 간질성폐질환으로 인한 폐고혈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6MWD가 기준치 대비 15% 초과 감소 ③사망(모든 원인) 또는 ④폐 이식 위약 투여 대비 타이바소 투여시 임상적 악화사건 발생시간에 대한 생존분석을 해보면, 위험도가 1.64배 감소했다(HR=0.61).
암보다 생존율이 낮은 중증 폐질환 환자들이 여전히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간질성 폐질환은 폐포와 폐포 사이의 '간질' 부위에 염증이나 섬유화가 진행되어 폐가 점차 딱딱해지고 산소 교환 능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숨이 차고 운동이 힘들어지며, 병이 상당히 진행되면 폐동맥의 압력이 상승하는 ‘폐고혈압’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환자들 중 상당수가 폐이식 외에는 치료옵션이 없어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히트뉴스와 만난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박무석 교수는 치명적인 질환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나왔고 환자와 의료진을 위해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특히 폐질환으로 인해 발생한 폐고혈압은 WHO 기준 그룹 3으로 분류되며, 말기 간질성 폐질환에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다.
박 교수는 "국내 간질성 폐질환 환자 중 통계 추정이 가능한 특발성폐섬유증 환자는 약 1만 5청명에서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폐고혈압이 동반된 말기 중증 환자는 5~10% 정도로 추정돼 약 1000-2000명 정도이며, 그 중에서도 적정 나이와 동반 질환 및 재활 능력 등을 고려한 폐이식의 대상이 되는 환자는 200~300명 정도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단조차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 숨이 찬다고 생각하거나, 상태가 괜찮아지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엑스레이만 보고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으니 괜찮다고 넘기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아요. 검사 역시 여러 단계를 거쳐야 되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다행이 요즘은 건강검진이 활성화되어 있어 이상이 발견되면 대학병원으로 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폐고혈압은 일반적인 혈압측정으로 확인할 수 없고, '우심도자술'이라는 침습적 검사를 통해 폐동맥 압력을 직접 측정해야 한다.
이처럼 진단이 어렵고, 치료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최근 흡입형 혈관확장제 ‘타이바소’가 국내에서도 허가되면서 의료진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혈관확장제인 트레프로스티닐 성분의 이 약제(제품명 타이바소)는 유럽에서 이미 승인되어 사용 중이며, 간질성 폐질환과 연관된 폐고혈압에서 운동능력 향상, 폐기능 저하 속도 지연, 생존율 개선 등의 효과가 임상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이전까지 그룹 3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타이바소의 등장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급여등재가 되지 않아 한 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정작 사용이 절실한 중증 환자들은 대부분 폐이식 대기자이며, 이들에게는 생존의 시간과 직결되는 문제지만 현실에서는 약값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약이 도입됐지만 비싸서 쓸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라며 임상현장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더 큰 문제는 폐이식 대기 중 사망이다. 국내 폐이식 평균 대기 기간은 약 300일이며, 일부 혈액형은 2~3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박 교수는 "대기 중 급성 악화나 감염 등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약 30%에 이른다"며 "타이바소와 같은 치료제가 있다면, 악화를 막고 이식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치료제의 활용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급여 등재’다. 박 교수는 “환자 수가 많지 않아 재정 부담도 크지 않고, 생명과 직결된 약인 만큼 신속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약의 국내 허가권자인 안트로젠은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등재 신청을 했으나, 중증 기준 조정 등을 이유로 한 차례 자진 철회 후, 최근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다시 재도전한 상황이다.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급여 약가 등재가 시급합니다. 급여가 적용되면 환자들은 부담 없이 약을 사용할 수 있고, 의료진은 생존률 향상이라는 뚜렷한 치료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됩니다."
박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암보다도 생존율이 낮은 중증 폐질환 환자들이 여전히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정부와 심평원, 복지부는 희귀질환 치료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진료 필수 약제는 급여화에 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접근해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