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복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계약서 제대로 만들기 (6)

법률사무소 TY&PARTNERS 대표변호사 부경복
법률사무소 TY&PARTNERS 대표변호사 부경복

A사는 자신들이 독점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공급업체가 얼마 전부터 올해 10월말 A사와의 계약이 만료된다며 새로운 대리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A사는 자신들의 계약기간이 앞으로 3년이나 더 남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공급업체에 무슨 영문인지 연락을 취했다.

공급업체는 A사와 맺은 계약서의 계약기간 조항에 따르면 올해에 계약기간이 만료된다고 하였다. 2018년에 맺은 계약서에 본 계약기간은 3년으로 하고 당사자 간에 3개월 전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3년간 연장된다고 되어 있었다. 2021년에 첫 3년이 지났고 이후 자동연장으로 3년 연장된 기간이 2024년에 끝나는 것이라는 것이 공급업체의 설명이다. 3년씩 계속 연장된다고 한 것이 아니니 자동연장은 한번만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A사의 생각은 달랐다. 2021년에 계약기간이 자동 연장되면 연장된 계약에는 기존 계약과 동일한 계약조건이 적용되는데, 기존 계약조건이 3개월 전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3년간 연장된다고 되어 있으니, 연장된 계약의 기간도 3개월 전 해지 통지가 없으면 다시 3년간 연장된다는 입장이다. 연장된 계약에도 자동연장 조항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누구 말이 옳을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두 쪽의 생각 모두 계약 문구의 언어적 의미를 크게 벗어난 틀린 해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문구를 당사자들 간의 합의사항을 적는 계약조항 문구로 쓴 것이 문제다. A사가 처음부터 자동연장 조항을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매 3년씩 연장된다'고 적었으면 어떠했을까? 공급업체 입장이라면 처음부터 '1회에 한하여 3년간 연장된다'라고 적었으면 어떠했을까?

지금보다는 훨씬 서로 다른 생각의 간격이 줄었을 것이고 그만큼 법률 다툼의 발생 가능성도 낮아졌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계약서 작성에 관하여 깊이 있는 시사점을 준다.

계약은 당사자들 간의 의사(생각)의 합치에 의하여 성립한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할 때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계약서는 그러한 생각 자체가 아니라 계약조항이라는 문구(언어)를 기재한 문서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대화에서도 자주 경험하듯이 나의 생각과 언어 사이에는 필연적인 거리가 발생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책”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이 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줄 알았는데, 상대방은 저 책을 생각하는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계약서 협상과 작성 과정에서 흔히 계약 문구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같으니, 그 언어에 담긴 서로의 생각도 같을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계약서 조항 문구들이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이러한 간격을 줄이기 위하여 어떤 다른 표현들로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없이 계약서가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꼼꼼한 계약서는 회사가 재판이라는 길고 비싼 터널에 들어가야 하는 확률을 줄여준다. 법원에 가지 않게 해 주는 계약서가 좋은 계약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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