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복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계약서 제대로 만들기 (5)

법률사무소 TY&PARTNERS 대표변호사 부경복
법률사무소 TY&PARTNERS 대표변호사 부경복

A사는 최근 자신의 협력업체인 B사가 A사의 경쟁업체 C사에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B사는 A사와의 계약기간 만료일이 다가오자 A사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C사와 거래를 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하여 B사는 C사가 자신과 거래해 주면 자신이 A사와의 거래관계에서 취득한 A사의 비밀정보를 C사에 알려 주겠다는 제안을 하려 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A사는 B사에 비밀유지의무 위반의 계약위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B사는 자신이 그러한 계획을 세운 것은 맞지만 자신이 실제 C사에 A사의 비밀정보를 넘겨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C사에서도 괜히 분쟁에 얽히기 싫어서 B사와 거래할 의사가 없음을 통보하여 왔으므로, 앞으로도 A사의 비밀정보를 C사에 유출할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시도는 했지만 실제 넘겨주지 않았고 넘겨 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밀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형법에서는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관계는 형법이 적용되는 형사관계가 아니라 민사관계이기 때문에 비밀정보 유출을 시도하였다고 하여 당연히 비밀유지의무 위반행위라고 볼 수 없다.

비록 B사가 비밀정보를 유출한 것은 아니지만 B사의 이러한 시도행위는 계약 당사자인 A사와 B사 간의 신뢰관계를 중대하게 훼손한 행위이므로 신의성실에 따른 계약이행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뢰” “중대” “신의성실”과 같은 원론적인 개념은 이를 실제 사실행위에 적용할 때 개인의 주관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A사는 B사의 행위가 신의성실 위반이라고 주장하겠지만 B사는 그렇게까지 볼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법원의 판단을 구해 보면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재판이라는 길고 비싼 터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지를 미리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지극히 원론적인 개념에 의지하여 그에 대한 판단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당사자들 간에 이러한 시도행위도 금지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위반한 시도행위는 계약위반 행위로 보기로 미리 정해두면 된다. 민사관계는 형사관계와 달리 법률이 알아서 처벌할 행위를 정해 주지는 않지만, 당사자들끼리 미리 합의해서 정해 두면 그 효력이 대부분 인정되는 장점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서는 대충 작성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법원이 솔로몬의 지혜로 정의의 판단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법원의 최종 판단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법관과 판결에 대한 불신과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 판사는 이런 생각으로 대충 작성된 계약서를 보고, 자신에게 오판을 강요하는 계약서라고 표현하였다. 계약서 내용은 불문명하고 그러다 보니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생각은 서로 달라지고, 결국 자신이 어느 쪽으로 판결하든 진 쪽에서는 판결이 잘못됐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계약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고 이 속에서 당사자들의 어떠한 행위들이 금지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려는 꼼꼼한 노력없이 계약서가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비밀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이를 시도하는 행위까지 금지행위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상대방은 원론적인 계약 규정의 틈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계획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꼼꼼한 계약서는 회사가 재판이라는 길고 비싼 터널에 들어가야 하는 확률을 줄여준다. 법원에 가지 않게 해 주는 계약서가 좋은 계약서이다.

부경복 변호사는 누구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 및 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법률사무소 티와이앤파트너스(TY&PARTNERS)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매년 인하우스카운슬포럼에서 선정한 사내변호사가 추천하는 로펌에 선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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