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복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계약서 제대로 만들기 (3)
A사는 수년간 협력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 A사는 지난 해부터 협력업체가 물품 가격을 20% 높은 가격으로 공급하고 그 차액을 A사 담당 직원에게 리베이트로 지급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A사는 협력업체에 20% 높게 받은 물품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가격은 계약 당사자가 간의 합의로 정해지는 것인데, A사와 협력업체 간에 체결된 계약서에는 20% 높은 가격이 공급가격으로 합의되었다. 협력업체가 A사를 속여서 이에 속은 A사로부터 높은 가격에 대한 합의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A사 담당 직원이 이러한 사정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A사가, 자신의 직원과 협력업체가 공모하여 공동불법행위로 A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만만하지 않다. 협력업체는, 지난 해 바뀐 A사 담당 직원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에게 리베이트를 주지 않으면 다른 업체로 바꾸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A사 직원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A사가 자신의 직원에게 배상을 청구하려 해도, 개인인 위 직원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파악해서 강제집행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A사가 협력업체를 통하여 고객사에 물품을 공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A사는 협력업체와의 계약서에 반부패 조항을 두고 협력업체로부터 준법 서약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A사 담당 직원이 자신의 실적을 높이기 위하여 협력업체에 요구해서, 협력업체가 고객사 직원에게 리베이트를 주는 경우도 많다. A사는 이러한 사실이 적발되어 고객사로부터 계약해지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를 자신의 협력업체에 물으려 하니 협력업체는, A사 담당 직원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협력업체를 교체하겠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무슨 힘이 있냐고 하소연한다.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A사와 협력업체 간의 거래 계약서에 A사 직원 개인이 협력업체 부당한 요구를 하였을 경우 협력업체가 취할 조치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해 두어야 한다. 위 사례에서도 거래 계약서에 협력업체가 이러한 요구를 받으면 반드시 A의 준법 담당자에게 즉시 통지한다는 의무를 규정하고, 준법 담당자의 연락처가 명시되어 있으며, A사는 협력업체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임이 규정되어 있고, 이러한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 계약위반으로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 등이 명시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흔히 협력업체와의 거래 계약서에 준법경영이나 뇌물금지 조항을 두고 서약서까지 받아두면 협력업체가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이로 인하여 회사가 입은 손해는 협력업체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협력업체의 일탈행위에는 우리 회사 직원이 함께 관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우리 회사 직원과 협력업체와의 협업과정에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협력사가 어떠한 통지의무를 부담하는지 꼼꼼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회사들이 많다. 이러한 꼼꼼한 계약서는 소송에서 협력사에 책임을 지우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서에 협력사의 통지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우리 회사 직원들도 협력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을 주저하게 되고, 협력사는 이러한 통지의무를 근거로 우리 회사 직원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얻게 된다.
꼼꼼한 계약서는 단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회사가 소송이라는 길고 비싼 터널에 들어가야 하는 확률을 줄여준다. 법원에 가지 않게 해 주는 계약서가 좋은 계약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