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이장익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규제과학·임상약과학 교수

한국 신약개발을 어찌할 것인가 -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① 뿌리부터 혁신 막는 규제환경
신약개발 전략

<히트뉴스>는 얼마 전 기자수첩을 통해 '한국 바이오텍은 임상에 들일 자원을 비임상에 배치해 라이선스 아웃(L/O)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리얼월드와 임상 환경을 모사하는 비임상 데이터 패키지를 구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관련 기사 "한국 바이오텍, 임상 대신 비임상에 집중해 L/O 해야"

하지만 저희 주장은 어떤 거대한 화두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의 근원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L/O란 지엽적인 주제에서 한 걸음 빠져나와, '한국 신약개발을 어찌할 것인가'를 두고 다시 뿌리부터 파헤치며 본질적이고도 실천적인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히트뉴스>가 뻗어온 네트워크 안에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현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ㆍ전략ㆍ돈이라는 3가지 주제 안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눠줄 분들을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편에선 지난 ①편에서 제기한 한국 규제환경의 구조적 문제에 이어, 이장익 박사와 신약개발 전략을 논합니다.

이장익 박사 / 사진=박성수 기자
이장익 박사 / 사진=박성수 기자

 

연구와 개발은 다르다…한국 바이오텍, 개발 전략 부족

앞선 이야기에선 규제를 다뤘으니, 이젠 개발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개발 전략에 있어 한국의 바이오텍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후보물질이 약이 되려면, 근본적으로 어떤 단계와 관문을 거칠 것인지 계획이 세워진 상태로 개발이 돼야 합니다. 어떤 신약을 개발하든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계획들이 미리 세워져 있는 회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방향을 잘 모르는 채로 일단 달리는, 그런 느낌일까요?

"'일단 시작해 봐야지'하고는 무작정 숲 속을 내지르는 겁니다. 그렇게 지그재그로 달리다 보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을 지나치고, 나중에 거기로 다시 돌아가는 데 시간과 체력을 또 뺏깁니다. 다시 말해 필요한 데이터를 자꾸 빠트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실책이 일어나는 원인이 뭘까요?

"약이라는 건 단순한 화학 물질이나 분자 정도로 볼 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에서 접근해야 해요."

연구개발(R&D)에서 연구와 개발은 다르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즉 개발에 대한 이해가 아쉽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임상 시험의 목적만 놓고 봐도 그래요. 우리는 임상 1상, 2상, 3상 시험이란 단어는 곧잘 쓰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잘 모릅니다. 기자님, 임상시험 각 단계의 목적이 뭔지 알고 계신가요?"

1상은 안전성, 2상은 유효성, 3상은 대규모 통계적 근거 확보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크게 보자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정확하게 정의해야 해요. 1상의 목적은 2상에 투여할 때 안전한 최대 용량을 측정하는 것, 그리고 약물이 우리 몸에 들어와 어떻게 흡수ㆍ분포ㆍ대사ㆍ배설되는지 관찰하는 것, 이렇게 2개입니다.

그리고 2상은 2a, 2b로 나뉘죠. 2a는 흔히들 PoC(Proof of Concept) 스터디라 합니다. 1상 시험 전에 비임상 실험으로 관찰한 치료효과를 재현해 보는 거예요. 그 후 2b에선 3상 시험에서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약물을 어느 빈도로 줘야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지 보는 겁니다."

그럼 3상의 정확한 목적은 뭔가요?

"리스크-베네핏 분석(Risk-benefit analysisㆍ위험효용분석)이 핵심입니다. 약이 우리 몸에 주는 효용성이 그 위험성보다 앞서는지 확인하는 거죠."

예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한 사람은 건선에 걸렸고, 한 사람은 췌장암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회사에서 건선 치료제를 만들었는데, 이걸 투여하면 100명 중 99명은 깔끔하게 낫고 1명은 죽어요. 그리고 또 어떤 회사는 췌장암 치료제를 만들었는데, 이건 100명 중 15명은 낫고 85명은 죽습니다. 어떤 약이 더 치료 효과가 좋나요?"

건선 약이 더 좋습니다.

"그렇죠. 단순히 치료 효과와 안전성만 놓고 보자면, 99% 완치율에 1% 사망률을 보이는 건선 약이 낫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건선 환자는 어차피 방치해도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췌장암 환자는 방치하면 높은 확률로 사망해요. 이렇게 놓고 봤을 때, 과연 건선 약이 더 나은 약일까요?"

그렇진 않네요. 건선은 걸려도 죽지는 않는 병인데, 약을 맞는 바람에 1%의 사망 가능성이 생긴다면 굳이 그 약을 쓰진 않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췌장암은 어차피 방치하면 사망할 환자 100명 중에서 15명은 살리는 겁니다. 즉 위험과 효용을 함께 고려했을 때, 췌장암 약이 더 좋은 약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을 허가할 때 허가 문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내용이 위험-효용 분석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약들과 신약을 비교해 봤을 때, 위험보다 효용이 더 좋아졌는지 평가하는 거죠. 더 좋아졌으면 허가, 더 나빠졌으면 불허하는 겁니다."

'키트루다(Keytruda)'의 라벨링 도입부 / 사진=FDA 공식 문서 캡처
'키트루다(Keytruda)'의 라벨링 도입부 / 사진=FDA 공식 문서 캡처

 

신약 개발하려면 제품 설명서부터 작성…"최종 단계부터 거꾸로"
한국 신약개발 업계에 임상 전략가 부족… 의사 유입 필요

정리하자면, 신약 연구개발에 있어 한국 바이오텍은 '개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 '개발'의 핵심은 '기존 약에 비해 단순히 안전성과 효과가 좋은 게 아닌, 위험보다 효용이 더 좋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그런 신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제가 FDA 심사관으로 있을 때 배운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이 제품으로 만들어졌을 때, 제품 박스에 들어있는 라벨링(Labeling) 있죠? 다른 말로는 패키지 인서트(Package insert), 제품설명서요. 신약을 개발할 때는 그것부터 먼저 작성해야 합니다. 거기부터 거꾸로 생각해 나가야 해요."

<히트뉴스>가 기자수첩에서 주장한 바와 유사하네요. 리얼월드를 임상 디자인에, 임상 디자인을 비임상 디자인에 적용해서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ㆍL/O)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그게 정석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고요. 제품설명서를 작성하기 위해선 3상 시험에서 나온 위험-효용 분석 결과가 필요하죠. 3상에서 위험-효용 분석을 하려면 PoC를 우선 통과해야 해요. 그럼 2상 시험을 해야 하고, 2상을 하려면 1상에서 최대 내약 용량을 결정해야죠. 1상을 하려면 비임상 실험을 해야 하고요. 그렇게 비임상 디자인이 결정되는 겁니다.

즉 거꾸로 길을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부산에서 출발하면서 '서울을 가겠다'고 정해놓고 가는 것과 '그냥 걷다보면 언젠가 서울이 나오겠지'하고 가는 건 굉장히 달라요. 목적지를 정하는 일을 누군가 꼭 해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매우 부족합니다."

결국 비임상을 하던, 임상을 하던 임상 전략가가 개발 첫 단추부터 필요하다는 이야기군요. 하지만 그 수는 우리나라에 적고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까요?

"저는 아이디어는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쉽진 않을 듯해요. 임상 전략가로 활동하기 좋은 직군이 의사입니다. 신약개발의 끝단인 위험-효용 분석을 할 수 있죠. 의사들이 산업계로, 식약처로 많이 들어와 줘야 해요.

하지만 결국은 돈이 문제입니다. 대부분은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개원의를 하려 할 테니까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과 식약처는 어떤 방법을 써도 개업의가 받는 돈을 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럼 미국은 어떤가요? 같은 문제를 겪지는 않았나요?

"미국은 1992년에 '피두파(PDUFAㆍ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라는 법이 만들어졌어요. 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FDA도 신약 허가 심사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허가 서류를 제대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어요.

그래서 제약 회사들이 '우리가 돈을 낼 테니, 그 돈으로 FDA에 전문가 인원을 늘려라'라면서 제정하게 된 법이 PDUFA예요. 그렇게 모인 돈으로 FDA가 의사, 약사, PhD에게 충분한 급여를 줘서 채용을 한 겁니다."

즉 FDA는 의사, 약사 등을 대거 확보해서 '개발'의 핵심인 위험-효용 분석이 가능한 전문가들을 갖춘 것이군요. 그 역량으로 허가 심사 단계에서 좋은 신약을 골라내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산업계로 유입되면서 또 다른 신약을 만들게 된 거고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식약처에 위험-효용 분석이 가능한, 전일제로 근무하는 의사 공무원이 5명이 안 됩니다. 반면 FDA는 제가 심사관으로 근무하던 12년 전만 해도 벌써 2000명이었어요."

우리도 PDUFA같은 법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의사들을 신약개발 업계로 유입시킬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요?

"법을 만든다 해서 무언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근본적으로 법이라는 건 어떤 행위를 강제하고, 도덕의 최저선을 설정하는 거니까요. 즉 이노베이션은 법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신약 개발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산업이란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세대가 길러져야 하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가르쳐 주고, 그 학생들이 성장해서 세대가 바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장익 박사 약력 

ㆍ규제과학/임상약과학 교수 (2015년 9월 – 현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ㆍ임상약학/규제과학 교수 (2012년 3월 – 2015년 8월)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ㆍ과학조사관 (2011년 – 2012년)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ㆍ임상약리심사관/팀장 (2001년 – 2011년)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ㆍ선임연구원/임상팀장 (1986년 – 1992년) 럭키바이오텍연구소
ㆍ규제입증위원회 위원 (2023년 3월 –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ㆍ부회장 (2017년 – 현재) 한국FDC규제과학회
ㆍ부회장 (2015년 – 현재) 한국임상약학회
ㆍ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2014년 8월 –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ㆍ의약품심사 자문위원 (2014년 6월 – 현재)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ㆍ이사 (2014년 – 2022년) 한국희귀질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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