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이지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팀장

[끝까지HIT 9호] '내 삶의 쉼표' 인터뷰 제목이 바쁘다 바뻐라니 아이러니하겠지만, 해당 코너의 인터뷰이를 생각했을 때 그녀를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세포가 깨어 있는 것을 느끼는 동안은 모두 '쉼'이라고 생각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경기남부본부 심사평가1부 이지영 팀장.
심평원 홍보팀장과 출입 기자로 만난 당시 그녀가 '운동 마니아'라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던 기자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왜 그녀가 운동전도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일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쪼개 글 쓰는 부캐 '이지작가'가 탄생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에 어느새 한 걸음 더 깊이 들어선 것 같다. 그래서 '폴 댄스' 취미를 가진 보건의료인 이지영 팀장을 소개하려 했으나 범위를 조금 넓혀 '프로N잡러'인 이지영을 조명하기로 한다.
몇 번의 약속이 잡혔다 취소됐다. 인터뷰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출장과 회의로 이 팀장의 일정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감 기일은 다가오고, 원고를 펑크낼 수 없었던 기자는 그녀가 현장점검 나가 있는 병원 앞으로 향했다. 1년 6개월 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조금 더 건강해 보였다. 원주 심평원 사택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남은 잔반 처리를 도맡아 하느라 살이 조금 쪘다고 선수 쳐 얘기한다.
이날 우리의 저녁 메뉴는 코다리찜이었다.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캡사이신과 나트륨 범벅인 메인 메뉴 코다리찜을 정신없이 공략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그녀는 허여멀건 콩나물을 먹고 있었다. '혹시 코다리찜을 못 먹는 건 아닐까?' 뒤늦은 걱정에 물어보니 '채소부터 순서대로 먹으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의 젓가락은 태어나서 몇 번 먹어보지 않은 브로콜리와 허연 콩나물 접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던 걸로 기억된다.
유소년기 3번의 교통사고 그리고 척추협착증
지금은 운동 마니아인 그녀지만 어린 시절 유독 작고 마르고 잔병치레가 많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유소년기를 보낼 때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출산 당시 힘을 못 쓴 엄마로 인해 목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한 채 죽을 고비를 넘겼고, 6살 때는 생선 트럭에 치여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11살, 찻길을 건너는 작은 이 팀장을 보지 못한 트럭 때문에 또 한 번 중환자실 신세를 졌고, 그다음은 오토바이가 그녀를 덮쳤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정도면 불사신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생각해 보면 곡절이 많은 유소년기를 보냈어요. 트럭에 치여 몸이 붕 떠오르는 경험도 했었으니까. 잔병치레도 많았어요. 만성기관지염, 결막염, 구내염은 디폴트(기본값)고, 수능시험 전날에는 수액을 맞고 시험 보러 갔었어요. 집안 내력인가 보다 하고 살았죠."
콧물, 기침, 눈에 염증 정도는 그러려니 버틸 수 있었지만 척추협착증은 그녀의 삶의 질을 망가뜨렸다.
"심평원에 입사해 미래전략부 근무 당시 일이 많았어요. 퇴근길에 수술받고 바로 지방 출장을 다니던 상황이어서 아픈 티도 못 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실행 부서 설득과 교육을 해야 했어요. 다리가 저려 하지정맥류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그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다시 병원에 갔더니 척추협착증 진단이 나왔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32살이지만 60대가 가질 수 있는 퇴행성 척추뼈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죠. '무거운 것은 들지 말라', '동네 산책 정도만 해라'가 처방이었어요."
충격 요법은 있었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말에 신경 차단술을 받고 평일에는 근무하고 그러던 어느 날, 언제까지 신경 차단술로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팀장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방문했다. "40대가 돼서야 운동을 시작했어요. 헬스장 등록을 하고 3개월은 혼자 러닝머신 등 유산소 운동을 했어요. 생전 처음 오는 헬스장인데, 기구를 다루기는커녕 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죠."
모범생 DNA는 운동할 때도 나타나는 것인지, 원주에서 퇴근해 집에 오면 밤 10시에 헬스장을 갔다. 꼬박꼬박. 연간 회원권을 결제하면서 얻은 PT레슨권을 통해 PT에 입문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1년 후에는 바디 프로필도 찍었다. 통증이 사라지고, 몸도 달라졌다. 아프지 않으니, 성격도 더 밝아지고 도전 의식도 생겼다.
폴(Pole), 너는 내 운명

헬스에서 자신감을 찾은 이 팀장의 다음 도전 종목은 폴 댄스였다. 우습게도 PT 코치도, 주변 지인도 아닌 포털의 추천이었다.
"집 근처 댄스학원을 검색했는데, 가장 위에 폴 댄스가 있었어요. 발을 바닥에 대지 않고 춤을 추는 폴 댄스 매력에 빠져 4년을 했어요. 처음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어요. 강사가 시범을 보여주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실전에서 그 동작을 못하는 거에요. 그러면 집에 와서도 끊임없이 복기를 하는거죠. 왜 못했지? 어떤 동작이 잘못된 거지? 회전력이 부족한 걸까? 코어에 힘이 없었나? 계속 그 생각만 하다 보니 마치 연인한테 집착하듯 폴 댄스를 하고 있더라고요. 우스갯소리로 남자 친구 '폴'이라고 했어요. 온몸이 멍들고 폴에서 몸을 뒤집는 고난도 기술을 배우다가 양쪽 다리 햄스트링까지 찢어졌어요."
그녀는 운동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운동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3급 진급시험을 보던 때였어요. 퇴근하면 밤인데, 공부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핸드폰에 건강보험법령을 녹음했어요. 오가는 차 안에서 듣는 거죠. 공책에 쓸 수가 없으니 걸어가면서 입으로 중얼중얼 되뇌며 논술을 준비했어요. 그 기억을 되살려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죠." 이 팀장은 폴 댄스, 필라테스, 플라잉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자격증 부자다.
그러고 보니 원주 심평원 기자실에서 종종 운동을 권하던 이 팀장이 기억났다. 클라이밍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운을 뗐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미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며 클라이밍 즐거움을 설명했다. 그리고 고질병인 오른쪽 어깨 통증을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부드럽고 집요(?)하게 마주칠 때마다 운동을 하고 있는지 묻고는 했다.
부캐 '이지작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 팀장의 부캐는 작가다. 벌써 책을 2권 냈고, 잘나가는 작가만 한다는 북 콘서트도 개최했다. 운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스토리를 담은 '내 몸은 거꾸로 간다' 책에는 그녀만의 위트와 색깔이 담겨있다.
"'책을 써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기보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운동이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어요. 첫 책은 새벽 4시 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에 글을 써 내려갔죠. 이번 책은 몸에 대한 책 답게 움직임 속에서 틈틈이 글을 썼어요. 전철이나 통근버스에서도, 샤워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화장을 하다가도 운동에 대한 글감이 떠오를 때가 있으면 메모를 했죠. 그런 것들을 엮어서 책이 나왔어요."
작년 북콘서트는 이 팀장에게 더욱 뜻깊다. 책을 출간한 아버지와 함께 부녀가 진행한 북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 팀장은 그동안 갈고 닦은 폴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운동을 통해서 변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껴요. 술을 좋아하는 분이셨는데, 이제는 건강식을 더 많이 챙겨 드세요. 제가 먹는 식단을 따라 드시고, 제가 책을 쓰니 아버지도 책을 쓰시고. 아버지는 작가를 꿈꿨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쓴 '단독보도'라는 책을 내셨는데 고비가 있으셨지만 끝내 탈고를 하셨어요. 합동 북 콘서트를 했을 때는 뭉클했죠."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는 지금도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리고 유튜브에 출연하는 적극적인 운동 전도사가 됐다. 헤어지면서 그녀는 노트북 앞에 앉아 글 쓰는 직업이라 어깨가 말려가는 나에게 고양이 자세를 추천했다. 그리고 아침 찬물 샤워를 권유했다.
"아침에 일어나 찬물 샤워를 하면 에너지가 솟아나요. 세포들이 다 깨어나는 느낌이죠. 걸을 때도 자연스럽게 힙업이 되고 가슴이 열리게 되는데, 우울 지수가 낮아져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처럼요."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후 "몇 가지 동작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며 링크를 보내왔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일 것"이라면서. 여전히 숙제를 하지 못해 찜찜한 상태지만, 다음번 만남에서는 "운동 중"이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짐해 본다.
아차, 인터뷰 끝 무렵 몸 쓰는 일도, 글 쓰는 일도 좋아하는 그녀에게 밸런스 게임을 제안했다. '운동은 잘하지만 글과 말재주가 없는 이지영' vs '글을 기가 막히게 잘 써서 지인들에게 좋은 운동을 권유할 수 있지만 몸을 못 쓰는 이지영'. 그녀의 대답은, 기승전 '몸'답게 운동 잘하는 이지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