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수급 불안 해결하려면 약가뿐만 아니라 사용량 문제 동반 해결 필요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 코로나19 감염병은 '제약주권' 확립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제약바이오산업의 보건안보적인 성격을 크게 부각시켰다. 감염병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동시에 필수의약품 생산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는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그리고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낫게 해줄 치료제도 모두 갖췄지만,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는 지속되고 있어 우려스럽기만 하다.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을 경험한 국가들은 비슷한 위기만 감지돼도 '자라'인지 '솥뚜껑'인지 살펴보지 않고 필수의약품을 포함, 의약품 수출 빗장부터 걸어잠그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국 의약품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이에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을 비롯해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 의약품 생산ㆍ수입ㆍ공급 중단 보고제도, 국가 비축제도 등의 운영과 함께 '아세트아미노펜'ㆍ'슈다페드' 등처럼 증산 조건부 약가 인상, 의약품 균등공급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국가필수의약품을 국산 원료를 사용해 등재할 경우 약가를 가산(68%)하고,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신속 약가 인상 절차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의약품 자급률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정부가 발 빠르게 내놓은 '당근'이다.
하지만 의약품 공급 부족 사태의 근본 원인이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의 생산 중단', '시설 및 원료 부자재 부족 등으로 인한 제조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의약품 수급 불안정 상황은 국가필수의약품에만 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재평가와 사후관리 등으로 약가 인하에 지친 제약사들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제약사의 매출 구조는 의약품(제품) 가격과 사용량으로 결정되는데, 사용량은 그대로인 반면 약가만 지속적으로 인하된다면 결국 채산성이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겠다는 사명으로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 생산을 유지하더라도 원가 절감을 위해 국산 원료의약품은 언감생심, 더 저렴한 중국 또는 인도 등의 원료를 찾아나서고, 해외 원료를 조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에서 혁신신약의 등재와 기존 특허만료의약품, 제네릭의약품의 약가를 지속 보장해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채산성이 낮은 필수의약품은 물론 제네릭 역시 약가가 인하되더라도 사용량이 증가한다면 회사들의 매출구조는 개선될 수 있다.
의약품의 선택과 사용은 정부와 제약사, 환자들은 물론 지불제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나타나는 결과이지만, 무엇보다 처방하는 주체인 처방권자(의사)가 가장 큰 영향을 차지하고, 처방권자는 장기간의 경험을 축적해 약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퀄리티(품질)가 담보된 저가의 의약품 사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처방권자들의 의사결정을 이해하고 다른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처방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물론 이 같은 정책은 개발이 어렵고 단기간에 효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약가를 인하해 건보재정 여력을 키우고, 수급이 불안정하다고 하면 신속하게 약가를 인상하는 등 짧은 시간에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약가만 손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세파계 항생제' 생산 중단을 선언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약가를 조정하는데는 한계가 있고, 사용량 문제를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의 단면만 보지 말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갑작스러운 원료의약품 부족, 오리지널의약품의 철수 등이 불안 요소가 되지 않도록, 나아가 유한한 건보재정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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