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의 CLUE |
약가 중심 급여 정책과 한국 정부의 신뢰
환자의 신약 접근성 확대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건강보험 약제급여 제도의 변화 방향성 역시 중증 질환에 대한 약제 치료 경험의 혜택을 넓히는 쪽으로 변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신약 론칭을 꺼리는 국가로 전락해 있다. 건강보험 당국의 약가 및 급여 결정의 간섭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전락 또는 간섭이라는 두 단어의 의미는 부정적이지만 제약주권이라는 측면에서는 꼭 부정적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약의 패권을 우리 또는 우리 기업이 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새 치료법이 될 혁신신약에 대한 치료 기회를 어느 정도의 대가로 우리 국민들이 접할 수 있게 할 것이냐의 기술적 문제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속에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답답하지만 피할 길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균형점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관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2007년 선별등재제도, 일명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은 신약 약가 제도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임상적 유용성과 경제성의 상관 관계를 따져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은 돌아보면 객관이지만 주관이 교묘하게 섞일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의 영역이다. 신약의 효과와 경제성을 평가하는 비교 대상 약제를 무엇으로 정할 것이냐, QALY(질보정수명)와 현실 임상시험의 지표 차이는 어떻게 보정할 것이냐 등을 100% 객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객관에 가까운 주관을 찾아내는 학문적 노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력의 결과치 역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어 왔음을 우리는 지켜봐 왔다. 급여목록 진입의 조건으로 경제성을 평가하는 이 같은 신(新)학문의 빈틈이 경제성 평가를 생략할 수 있는 약제라는 또 다른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제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의 요구로 정비되는 것이다.

멀지도 않은 2020년, 신경내분비종양치료제를 투약 받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해외 원정 치료를 다녀온 환자들의 소식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분석한 ‘글로벌 신약 접근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평균 신약 도입률이 18%인데 반해 한국은 5%에 그쳤다. 미국 78%, 독일 44%, 영국 38%, 일본 32%였다고 한다. 이런 데이터들 역시 한국적 상황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힘든 변수들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저런 흠집을 잡을 일만은 아니다. 신약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기업들이 주장하는 약값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코리아 패싱’이라는 프레임이 약제급여 시장에서 공공연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무한 시장인 인구대국 중국 앞에서 한국은 신약 론칭의 약자일 수 밖에 없고 코리아 패싱은 어느 정도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약가 중심의 급여 등재 정책 때문에 한국 정부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글로벌 제약회사 MA 담당자들의 토로가 절실하다. 환자들이 시위를 하고, 기사가 나고, 국회가 움직여야 급여가 되는 K-약제 급여 사이클,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보건 의료 정책에 치료횟수 제한은 폐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