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스탠스' 넘어 규제혁신 보폭 넓히자 업계가 더 걱정
업계, "ADC 등 새 기술 심사 능력 확충이 산업 진흥" 지적도

최근 규제과학 분야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규제과학혁신법'과 함께 보폭을 넓히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하 평가원)의 행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가 당국 안에서도 가장 과학적 가치에 힘을 쏟아야 하는 평가원은 '코치'가 아니라 '공정한 심판'이라는 지적이다.
24일 국내 규제과학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규제혁신 2.0의 일환 속에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내 허가 지원 등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평가원의 행보에 '과학적 객관성'을 우려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가원의 보폭을 넓혔다고 평가되는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 및 제품화 지원에 관한 규제과학혁신법'은 기존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기술 진흥법'을 개정해 지난 7월 28일 통과된 새로운 법이다. 규제과학혁신법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법에는 △새로운 평가기술 등 개발 △혁신 제품의 신속한 제품화 지원(규제정합성 검토) △규제 품질과 제품화 성공률 제고의 밑거름이 되는 전문인력 양성 등에 대한 근거가 신설됐다.
당시 식약처 측은 현행 법률의 안전기술이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 사업에 국한됐으나, 이번 법률을 통해 전부 개정안은 신기술 제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안전기술과 기준을 만들어서 신기술의 발전 속도를 맞추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업계가 문제 삼는 지점은 결국 새로 만들어진 법이 기존 산업의 안전성을 확보하기보다는 기업을 지원하는 규제기관의 모습으로 희석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식약처가 식품과 의약품의 보건을 책임지는 기관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평가원의 경우 연이어 열린 식약처 전문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가장 강조했던 대목은 '규제를 통해 신산업 진출 지원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위한 IT 기업 컨설팅과 지원, 첨단기술 등을 활용한 의약품을 위한 규제지원과 가이드라인 마련, 국산 제네릭 수출 지원 등 규제보다는 산업계 진출에 맞춰져 있었다.
특히 평가원의 경우 그동안 식약처 내에서도 가장 꼼꼼한 기관으로 꼽혀왔다. 그만큼 식품 및 의료제품의 규제 분야에 힘을 쏟던 집단이다 보니 업계 내에서 불만도 있었지만, 그만큼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동안 업계 내에서는 이같은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불만이 있었지만, 이는 평가원이 처리하는 업무 부담 경감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 확대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산업 진흥이라는 콘셉트가 돼서는 안 된다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규제 분야에 정통한 한 약업계 관계자는 "식약처는 그동안 안전에 관한 국민 보건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젠 산업을 진흥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큰 그림에서 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식약처가 이야기했던 국민 안전의 파수꾼이라는 역할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평가원의 경우 산업을 따지기 이전에 국민의 안전만 보고 산업적인 것보다 객관적인 (보건 문제를) 평가해달라는 것이다. 인허가 규제를 명확히 할 것인지, 인력 양성 등 (산업 발전을) 먼저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법 하나 고쳐서 예산을 받고 조직을 늘리기 위한 이런 저런일을 하겠다는 형태로의 변환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가령 특정 회사가 내놓은, 기존에 치료하지 못했던 신약이 국내에서 신청을 받기 위해 신약 심사 자료를 제출한다면, 해당 제품의 사회적 혹은 정치적 가치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 가치 즉 안전성과 유효성이 기대했던 수준이 아니라면 규제기관 입장에서는 과학적 가치를 계산해 서류를 반려하거나 보충하는 것이 맞다. 사회적 가치 등에 함몰되면 허가 여부에만 힘을 주는 사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 지적하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재까지 소송전이 진행 중인 '인보사케이주'다. 국내는 물론 세계 첫 유전자 치료제라는 이름으로 국내 허가를 받았고 1년가량 판매됐지만, 제품 내 세포를 빠르게 증식시키게 하는 인자가 든 2액 내 들어간 TGF-베타1 유전자 세포주가 허가사항 당시의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안전성과 유효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식약처의 허가 과정에서도 독성시험 내 특이사항이 없는 등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밝혔지만, 인보사케이주의 허가는 결국 취하됐다. 의도성 여부를 떠나 '허가를 위해 밝힌 내용'이 실제 제품과 달랐기 때문이다. 업계 내 규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보사 사태가 '최초'라는 이름으로 인해 식약처가 부실 허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를 기반으로 한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인보사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그만큼 업계가 흑역사로 여길 법한 인허가 문제가 아닌, 업계 내 '마중물'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보다는 산업화에만 평가원이 초점을 둘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항체약물접합체(ADC)를 비롯한 바이오 관련 기술을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업계의 지적이 나온다"며 "새로운 방식의 신약을 우리가 빠르게 심사할 수 있도록 평가원을 튼튼히 하는 것이 산업 진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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