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권한 있는 통합형 거버넌스 아니면 도루묵"
연구부터 의료·산업까지 이어지는 거버넌스 필요

출범 앞둔 尹정부 바이오헬스혁신위와 히트뉴스의 고언(苦言) ② 끝
한 때 전 세계 경제·산업을 얼어붙게 한 코로나19가 역설적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잠재력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계기가됐다. 더욱이 사회적 현상인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제약바이오 관련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우리 정부는 제약바이오 산업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수 있도록 지원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점이다. 물론 세계 각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산업연구원(KIET)은 바이오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글로벌 바이오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바이오 산업이 사회 경제적 효과를 본격적으로 창출하는 시대가 시작되 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 '바이오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정책 효율성을 제고하고 성장동력화를 효율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본다.
시킬 힘도, 할 힘도 없었던 4차산업혁명위원회
혁신위원회(컨트롤타워)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구가 정부마다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라는 컨트롤타워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분야별 혁신 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제약·바이오·마이크로의료로봇 등 의료기기 산업 성장 생태계 구축 등의 방안도 함께 마련됐다.
4차위는 제약바이오 분야의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헬스케어특별위원회'라는 위원회 산하 조직도 만들어졌다. 정부의 반응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도 조직을 개선하고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업계 안팎으로 이들의 정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웠다는 평만 남는다. 그 이유는 태생적인 조직의 한계 문제이고, 또 논의의 결과가 혁신 보다 그 동안 나왔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그쳤다는 데 있다.
4차위는 자체적인 정책 결정 권한은 빠진 채 심의·조정 권한만을 가진 단점이 있었다. 권한이 없으니 범부처 사이의 통합적 논의와 결론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가령 헬스케어특위는 업계와 복지부 장관 및 교육부 장관 등 정부 부처간 역할을 조율할 수 있는 이들이 당연직 위원에서 빠지면서 결국 전문가 자문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결국 이들의 논의가 제언으로 끝난 상태에서 각 사안은 소관 부처로 돌아갔고, 산업계가 바라던 R&D 능력 확장과 규제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또 혁신적 전략의 부족은 역설적이게도 4차위가 발표한 대정부 권고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4차위는 당시 국내 혁신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 △글로벌 수준의 규제 선진화 △건강정보 자기결정권 강화를 위한 체계 구축 △바이오헬스 연구 성과의 상용화 역량 강화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사회수용도 제고 등을 언급했다.
이중 바이오헬스 연구 상용화 역량만 좀 더 들여다보면 이를 위해 추진해야 할 과제에 혁신 기술의 특성을 고려한 중개연구 인프라를 구축, 의료기관을 바이오헬스 산업 생태계의 핵심으로 육성한다는 내용만이 담겨 있다. 나머지 사안 역시 기존 산업계에서 나왔던 이야기에 그쳤다.
예산 등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점은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투자금 확보 등과 관련한 정책 없이 선언적 표현에 가까운 이야기만 언급해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문제는 담지못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해당 사례는 윤석열 정부의 혁신위원회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업계가 실제 필요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단순 규제가 아닌 재정과 수요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거버넌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It's a Competence, Stupid.'
지원하고 조정하지만, 간섭하지 않는 선진국들
규제 및 연구를 조정하는 주체들이 권한을 갖고 새로운 R&D를 주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 모더나와 함께 백신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더 잘 알려진 NIH는 20여개 산하 연구소와 센터가 각각 독립적인 예산을 확보해 R&D를 진행한다. 흥미롭게 볼 대목은 외부 연구 지원 정책. 이들은 지원은 하되 발주기관의 연구활동에는 관여하지 않는 이른바 '그랜트(grant) 방식'의 지원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그랜트 방식 내 Parent Announcements 형태의 지원은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내용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방식은 전체 연구비 지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10여년 전인 2011년 NCATS (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 고등중개연구센터)라는 중개연구 전담기관 내 CTSA(Clinical and Translational Science Award)을 신설해 연구의 성과를 질환 극복이라는 목표에 연계할 수 있도록 외부기관과 민간기업이 협력하는 체계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산업계와 의료기관, 정부기관을 모두 통합한 연구를 추진할 수 있었던 NIH의 배경에는 전략적 R&D를 위한 기획과 조정, 예산 배분 등의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2006년 NIH 개혁법을 통해 NIH 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며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범NIH 프로그램 기획을 통해 전략적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독립된 예산과 자율성이 확보되 니 연구 방향과 목적도 더욱 명확해졌다.
2022년 기준 이들이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은 약 480억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지원 대상, 연구 단계, 성과물 유형 등에 따라 231개 유형을 만들 만큼 지원 프로그램을 세분화해 목적성을 살리고 자율성이 낮은 계약 연구 지원은 개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며 단순히 논문이나 특허를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만들었다.
또 기초 연구 성과를 실제 질환 극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혁신 주체들이 협력할 수 있는 중개연구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미국 전역에 걸쳐 대학병원 혹은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주변의 의과대학, 제약회사, 의료기기업체, 지역 단체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인 CTSA를 증대시켜 산·학·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질환 극복이라는 병원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목적지향적 기관에 권한을 부여하면서 기초 연구부터 의료기관·산업계에 이르기까지 R&D 거버넌스를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또다른 사례는 일본의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Japan Agency for Medical Research and Developement, AMED)'다. 일본 정부는 2015년 AMED 신설 전에 해당 기구를 하나의 독립 행정법인 형태로 구성하기로 하고 2014년에는 이들의 권한과 업무, 조직 구성 등을 법률화한 '건강·의료 전략 추진 법안'과 '독립행정법인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 법안'을 먼저 신설했다. 컨트롤타워의 입지를 명확히 해야 거버넌스의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23년 기준 3316억엔에 달하는 연구비를 포함해 AMED는 주요 분야 연구를 비롯해 지적재산, 산학연계, 국제사업, 임상시험 등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지원책을 각각 연계해 산·학·연 거버넌스를 통합 구축한다. 동시에 R&D 정책을 담당하는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등의 예산을 통합해 연구자 및 기업에 나누는 통합적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AMED는 미국의 분야별 연구소 체계를 일부 활용하되 R&D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까지 한 기구에서 맡으며 거버넌스를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선진국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불사
해외 사례는 단순 형식적 혹은 행정적인 과정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아르파에이치(이하 ARPA-H)'는 제약바이오 선진국을 위해 필요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사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분야별 연구비 구조를 보면 2021년 기준 연방정부 예산의 42.1%는 국방부에 쓰이고, 그 뒤를 잇는 것이 보건부(이 중 NIH가 90%가량 차지)로 26.6%에 달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안전지수 상위 40개국에 해당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맛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NIH만으로는 어려운 보건 안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형태인 ARPA-H 설립을 구체화했다.
연구계획국(DARPA)이 했던 연구를 모델로 NIH의 연구 혁신 강화와 산업화 등을 신속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2022년 10억달러가 포함된 2022년 회계연도 예산안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하면서 이 계획은 구체화됐다.
전통적인 연구나 상업적 활동으로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획기적인 기술과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플랫폼을 연구하는 ARPA-H는 NIH 산하로 기존 인프라,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관여하는 형태로 독립적 운영을 시작했다. 여기에 최고 인재를 4~5년 임기제 PM(Project Manager)으로 영입해 자율성을 보장하고 강력한 기획·평가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ARPA-H는 이를 통해 향후 암 및 만성질환 치료에서의 비용 절감, 향후 등장할 전염병에 대응하는 백신과 투여방식 연구, 정기적인 관리 등이 필요한 이를 대상으로 한 의료형평성에 이르기까지 시장 자체를 선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다.
산학연 한데 묶고, R&D 지원 권한 갖춰야
업계에서는 우리의 혁신위도 굳건한 뿌리를 내리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먼저 각 부처에 분산된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기능을 통합하고, 지원할 수 있는 권한과 거버넌스 체계의 조정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4차위 등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처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부처별로 산업 육성 기능이 분산돼 있다. 지원을 하는 곳만 10여곳에 달해 기초 연구부터 상업화 과정까지 각 부처가 분절된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를테면 기초 연구에서는 과기부를 거쳐야 하고, 임상에서는 복지부, 이후 상업화 과정에는 산업부에 각각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처간의 효율성과 통합성을 가진 채 산업계의 발전을 도우려면 각 업무를 한데 끌어모아 적재적소에 산·학·연을 배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특히 이 과정에서 모두의 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남긴다. 그는 "성과를 보이는 곳이 있으면 각 부처가 '우리부서의 덕'이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위한 자며 "하지만 모두가 한 뜻으로 뛰어서 모두의 공으로 남기는 것이 업계의 진짜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권과 예산을 두고 다투기 보다는 부처간 협업을 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부처, 업무별로 나눠져 있는 칸막이를 없애고 중장기적이며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산업 육성 정책을 논의하고 수립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혁신위는 연내 설치 를 목표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조직화에 필요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민관 협력을 통한 '실효성 있는 산업 육성 지원 정책'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통합 협력체계를 이용해 바이오 산업 관련 중장기 지원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R&D·정책금융·세제지원·인력양성 등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정책 조정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혁신위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책과 예산 집행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특히 예산 문제 등이 정부 부처 간 힘겨루기로 귀결되지 않도록 구체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약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혁신위는 설치 자체도 중요하지만 향후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할지가 더욱 중요하다"며 "혁신위 구성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당초 취지와 목표의 기능을 시행하고,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