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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 K-백신 기술, 정부의 지속적 관심 없으면 제자리


최근 SK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제약사 머크(MSD)와 '차세대 자이르 에볼라' 백신 후보물질 위탁 생산(CMO)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빅파마인 MSD가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L하우스를 차세대 백신 생산 기지로 선정했다는 소식에, 회사 주가가 하루 만에 16% 이상 상승하는 등 국·내외 제약업계 관계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추후 이 백신은 관련 보건 당국의 허가 절차를 거쳐,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로 공급될 예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글로벌 빅파마의 위탁 생산 기지로서 주목되고 있는 중심에는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의 개발이 있다. 작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된 스카이코비원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3번째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보유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당시 아쉽다는 의견들이 즐비했다. 이 백신은 개발 과정에 △국제기구 △글로벌 빅파마 △정부기관 △연구기관 △임상기관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진정한 의미의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로 평가된 반면, 글로벌 빅파마가 개발한 '웨이브 1 백신(최초 허가 백신)'보다 1년 가량 늦어 시장 선점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백신 개발에는 많은 비용과 이해 관계자들의 노력이 투입됐다. 글로벌 임상 진입에 필요한 자금은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전염병예방백신연합(CEPI)'가 총 2억 1370만달러(약 2450억원)를 지원했으며, 미국 워싱턴대학 약학대 항원디자인연구소(IPD)는 항원 기술, GSK는 자사 면역증강제, 아스트라제네카는 자사 백신을 대조약으로 제공했다. 질병청, 식약처, 외교부, 국회 등 국내 정부 기관도 백신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에도 국내에서 유통된 '스카이코비원'은 단 61만 도즈에 불과했다. 회사는 최초 공급 이후 약 2달 만에 국내 생산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선발 백신이 선도하고 있는 시장에서 개발 및 생산이 지연된 후발 백신이 나설 수 있는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최근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의 통 큰 글로벌 백신 사업 투자 계획 발표와 MSD와의 CMO 계약 체결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스카이코비원'을 완전한 실패 사례로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스카이코비원은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그 개발 원천 기술이 고스란히 회사에 남아 새로운 성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안재용 사장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는 2027년까지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 및 바이오의약품 CDMO 확대 등에 향후 5년간 약 2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의 70%는 백신에 집중해 글로벌 대표 백신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확고히 했다.
안재용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분야에 있어서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CDMO도 그 사업 범위를 빅파마 대상으로 지속 확장해 나갈 것"이라며 "최근 백신 산업의 가장 큰 트렌드는 빅파마가 자사 핵심 제품을 'Reliable(신뢰할 수 있는)'한 회사에 CMO을 맡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인정을 받는 부분이고,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확대된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최고 품질의 빅파마 제품을 접종받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도 연결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번 팬데믹에서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에 뛰어들어 제품화에는 실패했지만, 원천 기술 확보하거나,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회사는 비단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이 기술과 그들이 겪은 개발 경험들은 고스란히 K-바이오 안에 녹아있다.
문제는 SK와 같은 대기업과 달리 이들은 그 기술을 유지하고, 확장해 나갈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를 유지시키는 것은 제품화다. R&D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회사 입장에서 제품화로 이어나갈 수 없는 기술은 타 기업에 권리를 양도하거나, 폐기하는 등 소모적인 옵션 밖에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정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들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결국 넥스트 팬데믹에서 또다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등 똑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하게 될 뿐이란 것을 말이다. 팬데믹은 시간 싸움이다. 넥스트 팬데믹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누가 구원투수가 될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별의 순간은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