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재정의 정부와 급여등재 시키려는 제약 공방 치열
특정 암종 허가아닌 적응증 확대되는 치료제...진입장벽 높게볼 수 밖에
의료·정부·산업계 전문가 제언
청구서가 따라붙은 선물, 초고가약 치료제... 그리고 과제
연간 1000만원이 투입되는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망설일 때가 있었다. 면역항암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재고 또 재던 때가 불과 3~4년 전이다. 이제는 억대 치료제가 등장했다. 백혈병치료제 킴리아는 ‘평생 한 번만 투약하면 된다’는 점을 내세워 닫혀 있던 건강보험 재정의 문을 열었다. 킴리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 접근성을 호소하며 급여화를 주장하는 신약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신약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① 고가에 초고가, 신약 약값 왜 치솟나
② 초고속 등재 킴리아에 묻힌 급여 이슈들
③ 급여밖에서 고통받는 환자들
④ 지출구조 합리화 갈림길 선 건보재정
⑤ 효과 좋은 신약을 급여검토에서 마냥 방치할 수는...
신약의 급여등재에 항상 동반되는 문제는 ̒한정된 건강보험재정̓이다. 건보재정 중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계가 있고, 급여등재를 요구하는 신약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제8기(2020년~2021년) 암질환심의위원회 위원장인 김열홍 교수(고려대학교병원 종양혈액내과)는 <끝까지HIT>와의 인터뷰에서 "한정된 건보재정을 가진 정부와 급여등재 시키려는 제약사의 공방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항암제 급여등재 첫 관문인 암질심에서 임상적 유용성 뿐만 아니라 비용효과성까지 살펴보게 된 이유는 면역항암제, 세포치료제 등 하나의 약제가 다양한 적응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A라는 항암제는 특정 암종 치료에 허가를 받았고, 해당 질환에만 급여사용이 가능했지만 최근 나오는 면역항암제, 표적치료제, 세포치료제 등은 하나의 약제가 여러 암종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며 “신약의 적응증 추가에 따른 급여확대는 진입장벽이 낮아 첫 급여진입 단계에서 깐깐하게 비용효과성을 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효과가 좋은 신약을, 마냥 급여검토 단계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료계, 산업계, 정부,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각자 입장에서 제시하는 신약 접근성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다만, 온라인 지면 한계가 있어 주요 내용을 발췌하니, 자세한 전체 내용은 끝까지HIT 3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약 약값인하? 쉽지만 현실성 없어…제도보완, 섬세하고 치열하게 고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현 암질심 위원)
건강보험은 많은 사람이 낸 건강보험료를 재원으로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의료비용을 나누어 부담하는 제도이다. 대부분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수준에서 타협해야 한다. 합리적 수준은 공정하고 정당하게 결정돼야 하고, 그 결정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현재 제도를 개선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 부족한 부분은 새로운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현재의 제도 개선과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부분으로 나눠 제안해보면, 제도 개선은 현재 운영 중인 여러 위원회를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위원회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고 있다고 보여 줘야 한다. 여기서 투명은 과정의 투명성이다. 약제가격, 환급률 등 비밀유지에 해당하는 요소를 제외하고,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논의과정에 참여해 어떤 부분을 살펴봤는지,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 논의가 적절했는지 등을 보여줘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쓰는’ 이해당사자 들보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위원들이 보다 많이 포함돼야 한다. 결정과정도 공개되어야 한다. 토론과 결정 과정이 보다 자세하게 회의록을 통하여 공개돼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다. 일반지침이 어느 정도 사전에 제시돼야 하고, 그 지침은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결정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할 수 없는 또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도 없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 결정을 마냥 미루는 것이 아니라 내려진 결정들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계속 살펴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의료비용에 따른 완충지대를 둘 수 있다. 영국 ‘Cancer Drug Fund’를 살펴보자. 비용효과가 영국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지 못하지만 그 수준이 매우 높지 않다면 일종의 완충지대로서 또는 유예기간으로서 해당 기구를 이용한다. 해당 기구는 정부가 일정 예산을 담당하지만 미리 정해진 액수만을 지원한다. 즉, 제한된 범위 내에서 예산을 운용하면서 비용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또는 미흡한 신약에 대해서 정부가 일정부분을 감당하고 나머지는 제약사가 함께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선별급여나 위험분담제도 등이 있지만 두 제도는 정률제 또는 할인제도와 비슷하다. 할인제도와 별도로 정액제도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일정 금액만큼만 지원하는 한편 나머지 부분은 제약사 또는 제약사와 환자 공동으로 부담하는 제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약마다 불확실한 정도가 다르므로 이러한 불확실성 정도를 반영할 수 있는 두 제도는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있어야 할 제도다. 이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부분이 있는지 논의돼야 한다. 제언하자면, 환자가 가진 질환 특성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약제가 가지는 불확실성을 가치평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점수화시키며, 급여단계를 세분화하는 방안을 살펴볼 수 있겠다.현재 운영 중인 제도인 총액제한제도관련 재정 상한액수를 정하는 것보다 건강보험이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하한액수를 정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제도들은 선별급여제도나 Cancer Drug Fund 제도 등과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미래가 불확실한 아픈 환자에게 마냥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제도를 통하여 많은 논란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공정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신약 급여기준 설정에 엄격하되, 신속한 급여결정으로 등재 촉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권용욱 상근평가위원
신약 접근성을 높이면서 희귀중증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신약 도입 시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급여 기준을 마련해 임상적 의미가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신약을 사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과거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 범위와 대상을 너무 엄격하게 정하면 급여기준에 해당되지 않은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척수성 근위축증을 예로 들면 스핀라자(바이오젠), 졸겐스마(노바티스), 에브리스디(로슈) 등 다양한 신약이 개발됐으며 또한 연구되고 있다. 때문에 신약의 급여 기준을 정할 때, 의료복지적인 부분을 배제한 채 임상적 치료 효과만을 고려하더라도, 어떤 환자는 A신약에 대해서는 급여 기준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지만 B신약 기준에 해당될 수 있다. 이는 환자에게 다양한 신약 중 치료 효과를 가장 높일 수 있는, 자신에게 적합한 의약품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신약 급여 기준 설정에서 정책 의사결정은 임상 근거를 토대로 다소 엄격하게 정하되, 대신 급여 결정 과정을 신속하게 하고 다양한 신약을 빠르게 급여로 등재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신약 도입으로 인한 재정 부담은 줄이면서도 환자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
신약 도입과정에서의 건보재정 건전성 유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신약 도입으로 적지 않은 재정 소요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에 신약 도입으로 인한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선 건보재정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심평원의 심사 업무의 정확성과 체계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심평원의 심사 대상은 연간 1억 여 건에 100조여 원인데 여기서 1%의 심사 오류만 발생해도 1조여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전체 의료비용에 대한 급여 비용 비율 증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는 희귀중증질환과 같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의료 수요를 충족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고 정책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질환의 진단검사 비용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치료제의 급여 확대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둔다면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도 충분히 희귀중증질환자에 대한 신약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건강보험 재정에서 희귀중증질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회구성원인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한편, 건강보험 재정 이외의 기금 등 직접적인 예산을 마련하여 환자의 고가 신약 사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환자 접근성 대안은‘첨단바이오의약품 신속등재’ 제도 신설
KRPIA 이영신 부회장
환자와 환자 가족의 목마름은 점점 커져가고 전반적인 산업경제 측면에서도 향후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 환자를 위한 해결방안 관건은 환자 치료 속도로, 기존 위험분담제와 경평면제제도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비급여 씽크홀’ 구간을 메꿔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첨단바이오의약품 신속등재’ 제도 신설에 대한 국민 및 환자의 간절함과 기대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250명 환자 대상 조사에서 96.4%(241명)가 생명에 직결되고 대체제가 없는 신약에 대하여 허가즉시 급여를 해주는 약가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첨단바이오의약품 신속등재’ 제도 신설에 대한 복지부 고려사항은 대상선정기준, 최초약가수준, 경제성평가, 그리고 약가협상력 등이다. 최근 급여가 된 킴리아의 급여모델을 그대로 벤치마킹해 볼 만하다. 먼저, 대상선정기준은 급박하고 절박한 환자들이 주요 대상인 ‘생명과 직결되고 대체제가 없는 신약’, 또는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는 ‘세포·유전자치료제’로 문을 상당히 좁히고, 해외약가를 참조하는 대안이다. 경제성평가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환자에게 이들 의약품은 생명줄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대체제가 없는 신약으로만 대상을 매우 좁혀서 한정하고 70% 내외의 효과를 본다면 비용경제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약가협상력 우려는 사후평가에서 Real World Data를 충분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한다면 합리적인 접근이라 여겨진다.
정부의 고려사항과 우려를 감안하여 ‘시범사업’을 시도해 보는 것도 사회적 합의가 될 수 있다. 조금 더 전향적인 방향의 실험정신과 사회적 숙의과정을 경험해보고 결정하는 열린 결말도 옵션의 하나이다.
덧붙여, 환자접근성의 필수사항은 재원 마련 방안이다. 환자들이 혁신의 혜택을 신속하게 누릴 수 있기 위해 건보재정에서 약제비 지출구조 효율성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 책임강화 등의 재정 다원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국정과제인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와 관련하여 암, 중증·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재정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첨단바이오의약품의 경우 건강보험의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서 사회적 합의에 많은 소모적인 갈등이 발생하고 있어, 특수하게 건강보험 이외의 국가재정 등에서 건강 취약자를 위한 별도의 국가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다. 현재 건강증진기금·담배세·복권수익금의 일부를 경제적 부담이 높은 건강 취약자를 위해 건보에 지원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신속한 법안 통과는 건강보험 보장성 우선순위에서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인 중증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환자혜택과 함께 사회 안정망 강화라는 국가적 책임에 대한 국민신뢰를 줄 수 있다.“어려운 환자일수록 더 두껍게, 더 따뜻하게!”라는 국정철학 실현을 위해 전향적인 정책 시그널과 사회적 국민 합의를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