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훈식 지엘팜텍 대표(지엘파마 대표)

"홍 기자님이 집에 가기 편하게 7호선에서 뵙죠. 확인해보니, 청담 쪽이 좋겠네요. 처음 가보는 곳인데, 평이 괜찮아요."

청담동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중식당. 김영란 법까지 생각해 그리 비싸지 않지만 적절한 음악과 소음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곳에서 왕훈식 지엘팜텍 대표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안양 소재 자회사 지엘파마였다. 늘 누군가에게 묻는 것을 업으로 삼다보니, 대부분 질문을 던지는 일을 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난 대부분의 어른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주기 보다 대부분 본인들의 경험을 이야기 하기 바쁘다. 상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소위 꼰대라는 칭호까지 받은 어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마치 정답인양 말한다.

왕훈식 대표는 소위 말하는 꼰대스러움이 없는 어른이었다. 기자의 동선과 혹여 비싼 음식이 부담스러울까봐 음식점 하나를 고르는 데도 세심했다. 지엘파마에서 첫 만남을 가졌을 당시도 기자에게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인생 선배로서 진심으로 공감해 줬지만,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는 하지 않았다. '대화'라는 행위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제약바이오를 취재하며 어려운 점들을 한참을 털어놨다.

왕훈식 지엘팜텍 대표는 인생 선배로서 진심으로 공감해 줬지만,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는 하지 않았다. '대화'라는 행위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제약바이오를 취재하며 어려운 점들을 한참을 털어놨다.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를 취재하다 보니, 대표님이 경영하시는 회사는 사실 잘 알지 못해요.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검색해 보니, 제형설계와 개량신약에 특화된 회사로 보입니다. 신약개발 회사를 꿈꾸시나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신약개발 단계 중 디스커버리(discovery)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없습니다. 때문에 당장 신약개발에 나서는 것은 합당하지 않지요. 신약을 해야 한다면, 그에 걸맞는 조직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개발 후기 단계(late stage science)에 특화된 곳입니다.

단순히 초기 임상시험 데이터를 토대로 기술이전을 염두에 둔 곳은 우리가 적합한 파트너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임상 3상을 비롯해 CMC까지 제대로 갖춰 시장 출시를 염두에 둔 곳은 우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신약개발 후기 단계를 도와주는 조력자로 보면 될까요?

"우리는 서비스 수수료(fee for service) 사업모델은 지양합니다. 즉 계약만 맺으면 그 프로젝트의 성패와 상관없이 돈을 받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업모델을 추구한다면, 저를 자르고 진행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한 적도 있죠.(웃음). 해당 프로젝트의 성패에 일정부분 관여해서, 그 성패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싶습니다. 제가 추진하는 사업의 기본적인 모토입니다."

 

국내 바이오벤처 중에는 후기 단계를 진행하는 곳이 별로 없잖아요. 지엘파마를 필요로 하는 벤처들이 많이 있나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점점 우리를 필요로 하는 벤처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특히 코로나19 치료제는 2상까지는 진행해서, 긴급승인을 받아 당장 제품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곳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제형설계 기술을 비롯해 허가를 받기 위한 CMC 자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용 제품을 생산할 여력도 됐죠. 코로나19 치료제 덕에 벤처들과 교류가 확대됐습니다. 이들에게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사업을 제안합니다."

 

신약개발은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엘팜텍은 안구건조증 신약개발을 하잖아요.

"동아에스티와 인연에서 시작됐어요. 동아에스티가 혁신신약 개발을 위해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이프라인을 완전히 폐기하기 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자는 내부 의견이 모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제안을 받고, 안구건조증과 함께 위염 적응증까지 있는 파이프라인은 우리가 도입해도 어느 정도 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입하게 됐습니다."

 

안구건조증 신약이 위염에도 쓰일 수 있다고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위 점막이 손상돼 위염이 빈번히 발생하는데요, 안구건조증 역시 안구점막 손상 과정을 거치며 악화된답니다. 저희가 위염 관련 개량신약 개발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영역으로 판단했어요.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존 제형설계의 일부분을 변경했는데, 기존 제형 대비 놀랄 만한 치료 효과를 보였습니다. 이런 비교 전임상 데이터를 통해 임상을 진행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국가에서 질환 별로 지정하는 안과질환 T2B 기반구축센터인 부산백병원에서 우리가 재설계한 제형의 약물과 일본에서 시판되고 있는 약물 2종을 비교하는 전임상 실험을 진행해 봤어요. 기대한 것보다 훨씬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서 현재 임상 2상을 진행할 계획이고, 다양한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fee for service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창업을 한 시작점은 단순 서비스를 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약을 재설계해서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약을 만들어 보고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지금 갖춰진 인력이 fee for service를 하기에 적합한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류의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국내 바이오벤처 생태계는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후기 임상까지 온전히 진행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환경에서 지엘파마와 지엘팜텍이 국내 신약개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미 SK바이오팜과 같은 사례가 나왔습니다. 이제 신약개발 후기까지, 끝까지 하는 회사가 나온 것이죠. 또한 전통 제약회사와 다른 길을 간 셀트리온 역시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언젠가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사업화 할 수 있는 사례가 점점 많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앞서 강조 드렸듯 우리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아토젯 사태를 보면, 국내 제약산업의 단면을 볼 수 있고, 서비스만 제공하는 회사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어요. 여러 CMO 회사의 핵심 가치는 퀄리티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 주기만 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어요.

우리는 신약개발 후기 단계로 가고 있는 회사의 조력자가 되고 싶지, 저가 전략으로만 CMO 사업을 영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내 약가 정책은 점점 제네릭 혹은 개량신약에 대해 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려는 없으신가요?

"고민이 많이 되는 담론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1+3 법안을 지지합니다. 국내 제약산업 유통망은 실제로 한 회사에 의해 독점된 구조는 아닙니다. 절대적인 사업자가 없는 시장 상황에서 다양한 편법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인 제약회사가 살아 남은 것이죠.

여전히 국내 제약산업은 R&D 혁신보다는, 여전히 유통 위주로 흘러가고 있어요. 영업유통에서 교섭력(bargaining power)이 현재도 상당한데, 이게 더욱 지나치게 확장돼 시장이 석권되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이 구조화 되면, 점점 R&D로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회사가 나오긴 힘들 것입니다.

일반의약품(OTC)를 제외한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가 대략 24조원 정도가 될 것입니다. CSO 거버넌스가 약 2조원 정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런 24조원 시장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내 놓을 건강한 동인을 못 찾고 있습니다.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대표님은 일찍 창업하셨잖아요.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도 많을 것 같아요.

"알려진 물질(compound)로 창업한 지 2년 차인 분이 찾아 오셨어요. 기본적으로 창업 아이템의 성공 가능성을 떠나 창업 행위 자체를 지지하는 쪽입니다. 이미 창업을 하신 분에게 지나치게 지적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과거의 저는 직설적으로 조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딱 잘라 해 주긴 참 어렵습니다. 신약개발 사업 모델이 참 다양하잖아요. 거기에 저 같이 연구자 출신의 창업자는 생각하지 못할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입니다."

기사에는 미처 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제약바이오를 취재하며 겪는 고민들을 여과없이 털어 놓았다. 어떤 고민을 털어놓아도 그는 어떤 조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들려줬다. 그와의 저녁을 마치고 7호선 지하철 역으로 향할 때, 바쁜 취재 일정으로 지쳐있던 내 발걸음이 유독 가볍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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