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수석부사장(CFO)

 릴레이 기획 벤처의 안방마님을 만나다 

"내 눈에는 벤처가 야구로 보였다. 투수가 7할이고 포수가 2할이다. 투수인 대표이사보다 안방마님 포수인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더 막역한 사이가 됐다. 기업 내부가 흔들리면 과학이고 사업이고 답이 없다."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상무는 히트뉴스 신년기고문에서 이같은 화두를 던졌다. 히트뉴스는 이번 릴레이 기획을 통해 기업 내부를 든든하게 지치고 있는 바이오벤처의 안방마님을 만나본다.

 

'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오직 신약 만이 살 길이다.'

이 문구를 마음에 품고 2006년 5월 LG화학을 나와 1987년 입사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김용주 박사(현, 레고켐바이오 대표)와 벤처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이가 있다. 대기업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연구자들과 글로벌 신약개발을 향해 묵묵히 걸어나가고 있는 박세진 레고켐바이오사언스(레고켐바이오) 수석부사장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봤다.

대기업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연구자들과 글로벌 신약개발을 향해 묵묵히 걸어나가고 있는 박세진 레고켐바이오사언스(레고켐바이오) 수석부사장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봤다.

 #1. 대기업의 연구개발 시스템을 초기 바이오벤처에 접목하다 

20년 몸 담았던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그는 구매, 예산관리, 연구기획, 인사관리, 전략기획, 사업팀장 등 신약개발 연구만 제외하고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특히 LG화학에서 후반기는 김용주 박사와 함께 해외 신약연구소에서 3년 간 일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했다.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연구개발(R&D) 관리(management)에 대한 제반 경험을 충분히 축적할 수 있었죠. 특히 김용주 박사님과 같이 한 센디에고 신약연구소 3년의 경험은 레고켐바이오 창업의 씨앗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문에 레고켐바이오가 초기 7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시스템 측면에서는 ▷인사평가 ▷회계 ▷프로젝트 원가 ▷자금관리▷특허관리 관련 시스템을 이미 초기부터 구축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 이런 노력 덕분에 레고켐바이오는 인원이 늘어나 상장까지 일관된 체계 속에서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이 늘어나도, 효율적인 자금 회사 경영관리가 가능했다.

"창업 후 6개월부터 VC들과 시리즈(Series) A 투자유치 활동을 시작했는데, 투자 실사 과정에서 초기 벤처가 체계적인 경영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던 점도 VC에게 신뢰감을 준 투자유치 성공의 한 요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2개의 신약과제 밖에 없었음에도 프로젝트별 원가관리 시스템을 통해 원가를 월별로 관리했지요. 프로젝트별 원가가 관리되면 향후 기술이전 협상 시에도 원가를 바탕으로 한 협상의 기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상장 이전부터 이런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으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자 출신 경영진만 있는 경우 관리 시스템 마인드가 부족해 창업 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 IPO를 앞두고 CFO를 영입하면서 이런 시스템을 정비하려 하면 어려움이 클 것입니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 분들이 초기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레고켐바이오의 정체성[출처=박세진 부사장 발표자료]

 

 #2. 연구자와 관리 조직의 접점을 향해 

대기업의 신약개발연구소나 바이오벤처 인력의 상당수는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고 연구소라고만은 할 수 없으니, 당연히 관리조직도 있어야 한다. 레고켐바이도 약 110명의 직원 중 10%에 해당하는 11명이 회사의 관리 조직 인원이다.

레고켐의 관리조직 인원 11명은 경영관리센터(인사, 회계, 자금, 총무, 구매)와 사업전략센터(기술이전팀, IP팀, IR팀)에서 일하고 있다. 경영관리 6명은 100명의 연구원이 마음 놓고 신약개발 연구에 전념 할 수 있도록 관리와 지원을 하고 있다. 사업전략 인원 5명은 기술이전과 특허관리 등 회사의 수익을 창출하고 기술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관리와 지원은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보통 경영'지원'팀 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는 경영'관리'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물론 지원의 기능도 중요합니다. 결국 바이오벤처의 가치는 연구원들의 손끝에서 나옵니다.

때문에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원은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정에 벗어나는 일은 엄격하게 관리 합니다. 지원과 관리의 균형추를 잡아 주는 것이 CFO의 큰 역할 중의 하나 입니다."

한 기업 안에 있지만, 연구자와 관리자의 업무는 그 속성이 다르다. 전공부터 근무환경까지 연구자와 관리조직에서 일하는 직원들과의 벽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연구자와 관리조직 직원의 벽을 허무는 것은 그의 중요한 임무다.

"연구자와 관리조직 간의 장벽을 없애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매주 월요일 팀장회의를 엽니다. 직원이 25~30명이던 시절에는 전 직원이 참석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팀장회의로 변모해 나갔습니다. 이 시간에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신약개발 프로젝트의 현황과 계획을 발표합니다.

물론 경영관리부서 직원들이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15년 간 꾸준히 듣다 보면, 전체적인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경영관리팀이나 사업전략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연구원들에게 소개도 합니다. 각 팀에서 발표를 하며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소통을 통해 서로의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시너지가 나게 됩니다."

 

 #3. 2전 3기의 기술특례상장 문턱을 넘으면서 동행한 VC 

레고켐바이오가 기술특례상장 문턱을 넘은 것은 두 번의 좌절 뒤였다. 금융위기와 앞서 10개의 기술성특례상장 기업들이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 하면서, 김용주라는 합성신약계의 대가가 중심이 된 회사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레고켐바이오가 기술특례상장을 처음 도전했던 2011년 당시는 오히려 이 제도의 폐지 분위기가 감돌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시도한 첫 번째 도전에서 기평의 문턱은 넘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보완을 전제로 자진철회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해 나름 충분히 보완 후 2차 도전은 첫 관문인 기평의 문턱조차 못 넘은 참사였다.

"두 번째로 상장에 도전했을 때, 당연히 상장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거래소 심사팀에서 요구했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 도전했거든요. 또 회사 재정 상황 상 반드시 상장이 필요했어요.

벤처캐피털(VC)로부터 받은 투자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후속 투자 여부도 불투명했거든요. 창업 초부터 투자를 해준 VC들이 후속 투자를 해 주지 않는다면 거의 파산 위기였어요."

두 번째 좌절을 겪은 그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초기부터 투자를 해온 3개 VC와 비장한 마음으로 미팅을 한다. 당시 3명의 VC 책임자들이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황창석 사장, 한국투자파트너스(한투파) 황만순 대표, KB인베스트먼트 신정섭 CIO(최고투자책임자) 등으로 한국 바이오 투자를 선두에서 이끌어 온 명장들이다.

"세분 앞에서 기평 탈락 소식을 전하며 '국내 신약개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김용주가 만든 회사가 기평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 신약연구에 내린 사형선고다. 내가 존경하는 보스가 이런 대접을 받게 만든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어떤 일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으니, 우리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세 분께 말씀 드렸죠. 세 분 모두 당혹스런 상황에서도 흔쾌히 '우린 레고켐바이오를 믿으니 같이 갑시다'라고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좋은 VC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판단 기준을 갖게 됐다. 이렇게 신뢰로 뭉쳐진 3명의 VC와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고 말하는 그는 좋은 VC는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투파 황만순 대표는 2009년부터 10년 간 우리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지금도 어느 자리에서건 레고켐바이오는 한국의 길리어드라고 늘 말씀해 주시죠. 감사한 일입니다. 황 대표는 우리 회사의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기까지 자금을 회수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당시 우리 시총은 2000~3000억원 수준이었죠. 황창석 사장님, 신정섭 CIO님도 어디서든 저희 회사를 진심으로 지지해 주십니다.

작년에 시총 1조원이 넘어가면서, 3개 VC가 성공적으로 투자회수(Exit)를 할 수 있었죠. 물론 VC 분들이 투자기간 내에 따끔한 조언과 질책도 해 주셨습니다. 창업 후 지난 15년 동안 이 분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했고 앞으로도 같이 갈 겁니다. 저는 이 세 분을 레고켐의 영원한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레고켐바이오의 2030년까지 장기 비전[출처=박세진 부사장 발표자료]
레고켐바이오의 2030년까지 장기 비전[출처=박세진 부사장 발표자료]

 

 #4. 투자자와 소통에 직접 나선 이유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그는 매주 수요일 대전에서 서울 여의도로 향했다. 상장 이후 4년 동안 여의도에서 그는 '수요일의 남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IPO 초창기에 회사의 실적(기술이전, 임상 데이터 등)이 가시화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시기에는 기술의 잠재력을 기반으로 향후 사업화 전략에 대해 여의도 증권가 분들과 소통하게 됩니다. 이런 소통 작업을 직접 했습니다. 증권가에서도 공동창업자 중 한 사람이 기업설명회(IR)을 하니 더 좋아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서울에서 6~7건의 미팅을 하니, 여의도 증권가 분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더군요."

가시적인 실적인 없는 초창기 IPO 시점을 지나 기술이전 등 실적이 쌓이면서, 투자자 소통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이제 기술의 잠재력의 말할 필요가 없어졌죠. 실적으로 우리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게 됐잖아요. 기술이전 계약으로 저희 기술의 잠재력을 결과로 입증해 냈습니다. 이제 여의도에서 레고켐을 바라보는 관점은 기술이전 이후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가는 해당 회사의 기대치에 대한 현재가 반영이다 보니, 향후 계획을 설명해야 했죠.

이런 상황에 맞춰 작년에 레코켐 2030이라는 10년의 비전을 만들었습니다. 10년 후 레고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분야 세계 최고 회사로서, 기업가치 40조원 이상이 되어 ADC 분야 최고 회사인 시에틀제네틱스를 제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세진 CFO는 공동창업자이자 CFO로 창업과 상장 그리고 상장 후에도 경영을 경험하고 있는 바이오 업계에서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그가 가진 경험을 바이오 업계와 공유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그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외부강의나 자문에도 선뜻 응하고 특히 대전 소재 20여개 회원사가 있는 '대전 바이오 CFO' 모임의 회장으로서 바이오벤처간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박세진 부사장의 Next Interviewee 추천사

 

"에이비엘바이오 이재천 전무를 추천합니다. 항체분야에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에이비엘바이오와 공동연구한 ROR1-ADC를 작년에 Upfront 1000만달러을 포함 총 계약규모 약 4100억에 크리슨(CSRIONE)에 기술이전 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바이오 벤처간 협력을 통해 세계적 성과를 낸 좋은 모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년여에 걸쳐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역량과 열정을 확인한 이재천 CFO를 기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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